사카모토 유키오 일본 엘피다 사장이 11일 대만에 도착했다. 대만 반도체 업체 3사와 통합 합의 서류에 도장을 찍기 위해서다. 엘피다 경영진은 이날 대만 산업개발부 장관을 만나 대만 메모리 칩 업계의 합병안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대만 정부가 구조조정안을 승인하면 자금난에 숨통이 트여 국내 기업과 재격돌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파급력은 미지수다.
◇왜 지주회사인가=엘피다와 대만 3사의 통합 안의 핵심은 지주회사 형태를 통해 4개 회사가 경영권을 공동 소유하고 영업망도 통합하는 것이다. 대만 정부의 가이드 라인을 반영했다. 대만 정부는 공적 자금 투입의 조건으로 조인트 벤처 형태의 합병을 지난해 권유한 바 있다.
그렇지만 국적도 다른 4개 회사가 합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각자 공적 자금을 받을 명분도 사라진다. 대만업체를 하나로 합쳐 엘피다와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방안은 이 점에서 절묘한 선택이다. 한 울타리로 규모의 경제도 이루면서, 공적 자금도 지원받을 길도 열리기 때문이다. 대만 정부의 승인이 변수다. 대만 첸차오이 경제부 산업국장은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며 일단 부인했다. 하지만 지주회사 안이 대만 정부의 합작 권유를 어느 정도 수용했기 때문에 승인을 받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너지 효과는 미지수=엘피다와 대만 3사의 D램 시장 점유율은 22%로 통합 시 업계 2위로 등극한다. 하지만 시너지 효과는 의문시된다.
현대전자와 LG반도체가 통합할 당시인 1999년 양사 D램 시장 점유율은 23.5%로 마이크론(17.6%)·삼성전자(16.8%)를 제치고 1위를 기록했으나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단순한 시장 점유율만으로 시장 지배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을 입증한다.
일·대만 기업은 한국 업체에 비해 기술 경쟁력과 원가 경쟁력에서 뒤져 있다. 프로모스는 80나노 D램 공정이 주력이다. 엘피다·파워칩·렉스칩 역시 60나노 공정에 머물러 있다. 삼성전자·하이닉스는 올해 60나노 공정에서 50나노 공정으로 전환, 한 세대 이상 격차를 벌려 놓고 있으며 올해 40나노대로 옮겨간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대만 기업이 현물 거래 시장을 흐려왔고 이로 인해 고정거래 가격도 악영향을 받아왔다”며 “대만 D램의 구조조정은 반도체 공급 안정화를 불러올 것으로 기대돼 결국 경기 회복 시 원가경쟁력을 갖춘 국내 기업이 시장 지배력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메모리 업계 구조조정 가속도=지난달 세계 5위 D램 업체인 독일 키몬다가 파산신청을 한 데 이어, 세계 1위 노어플래시메모리업체인 스팬션도 최근 자회사인 스팬션재팬이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고 발표했다. 키몬다는 정부 자금이 제때 유입되지 못해 퇴출됐으며, 스팬션도 자금난으로 무너졌다.
일본 대만업체 간 통합까지 가시화하면서 2년여 동안 지속된 반도체 장기 불황에 후발업체들이 하나둘씩 정리되는 모양새다. 매분기 계속되는 손실에 막대한 투자가 동반되면서 업체들은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재무상황이 악화된 기업들은 끝내 파산이라는 종지부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에드 달러 뉴모닉스 부사장(CTO)은 “2∼3년간 메모리 반도체 회사들이 손실을 경험한데다 세계 경제위기까지 겹치면서 통폐합 등 구조조정이 연초부터 일어나고 있다”면서 “지금 상황에선 계속 투자를 집행하는 회사들만이 경기 회복 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대만 통합지주회사는 양국 정부와 금융권의 획기적인 지원을 받지 않는 한 투자 여력이 많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업계 일각에선 통합 지주회사가 ‘생산량 조절과 가격 담합을 위한 위장 통합’이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안수민·설성인기자 sma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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