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녹색성장기본법,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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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과시욕이다.” “시기상조다.” “졸속행정이다”“협상카드를 미리 다 내보이면 나중에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하위법령을 갖춰가면서 건건이 의견 충돌을 일으킬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대운하의 또 다른 추진 방식이다.”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기본법 제정작업이 가속도를 내자 산업계와 NGO 쪽에서 나오는 목소리들이다. ‘그린’ ‘신재생에너지’ ‘저탄소 녹색성장’이 전 세계적인 화두라고는 하지만 법안에 적시된 ‘총량제한 배출권거래제도(Cap & Trade)’ ‘탄소세 도입’ ‘온실가스 배출량 및 에너지 사용량 보고 의무’ 등은 너무 앞서간다는 지적이다. 총량제한 배출권거래제도만 해도 의무 감축국 중에 EU 회원국이나 노르웨이만 시행하고 있다. 일본·미국은 아직 시행 전이다. 선진국도 안 하는데 의무감축국도 아닌 우리가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가며 먼저 해야 할 이유를 찾기는 힘들다.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그린이나 환경이슈는 비관세 장벽의 소재로 그만이다. 다자간 협상이 무력화된 상황에서 국가별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험난한 파도를 넘어야 한다. 자국 기업의 이익을 옹호하는 요즘 세상에 환경 이슈는 하나의 협상카드가 될 수 있다. 히든카드로는 못 쓸망정 손에 든 패를 상대방에게 미리 보여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튼튼한 체질을 갖추지도 못한 상태에서 OECD에 가입했다고 축배를 드는 모습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이제 걸음을 뗀 어린 아이가 성큼성큼 뛰어가는 어른들을 향해 “우린 이미 환경 선진국이 됐다”고 외쳤을 때 그들로부터 돌아오는 반응이 어떤 것일지 생각해봐야 한다.

 일부 공무원들은 녹색성장기본법 제정은 기업하기 좋게 먼저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좀처럼 이해가 안 간다. 물론 업계는 그린이나 환경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이미 자체적으로 온실가스 인벤토리 국제인증을 취득하기도 하고 탄소공개프로젝트(CDP)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환경기준을 적용한 기업도 다수 있다. 자기가 생산한 제품을 수출하는 데 필요한 내용에서는 나름의 기준에 맞춰 국제수준에 대응하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시점에 정부가 나서서 기업에 부담을 줄 수 있는 법안을 서둘러 마련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절차상의 문제도 있다. 지난달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입법예고를 한 뒤 2주일 만에, 그것도 설 연휴 끝나자마자 공청회를 열어 서둘러 마무리지으려고 했던 것에 대해 업계나 NGO 사이에서는 말이 많다. 업계 관계자는 “어떤 공무원은 ‘사안이 너무 중요해서’라는 이유를 들어 통상 3주 정도의 기간을 두던 것을 입법 예고 후 2주 뒤에 공청회 일정을 잡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각계의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쳐 법을 제정한다 해놓고 공청회 패널에는 몇 명을 제외한 상당수가 정부의 녹을 받는 공무원이나 산하 공공기관 관계자로 채운 상황을 보면 쓴웃음만 나온다. 말로만이 아닌 충분한 의견수렴이 필요하다. 속전속결은 제2의 부안 방폐장 사태나 미국산 쇠고기 사태로 인한 촛불시위를 재연할 수도 있다. 급할수록 사회적 합의를 고려해서 풀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오랜만에 찾아온 녹색성장이라는 신시장을 제대로 준비해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시간이 필요하다.

주문정 그린오션팀장 mjj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