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계 반도체 산업은 가격 급락으로 설비 투자가 상당 부분 위축된 한 해로 기록될 듯하다. 가트너는 올해 반도체 설비투자가 지난해 비해 25.7% 감소하고 새해에는 올해 대비 12.8% 위축될 것으로 예측, 소자·장비·소재 등 반도체 기업은 혹독한 시련기를 보냈다. 특히 가트너는 2010년께 반도체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반도체 기업들은 사실상 생존 게임에 돌입했다.
주요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이 공급가 하락을 막고자 올해 감산과 감원에 착수했다. 생산성 효율을 위해 200㎜ 웨이퍼 생산 라인을 폐쇄하고 300㎜ 웨이퍼 전환을 속속 단행했다. 메모리 반도체 기업 간의 전략적 제휴도 활발했다. 일본 엘피다와 키몬다가, 미국 마이크론과 대만 난야가, 하이닉스와 대만 프로모스가 각각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치킨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한 승부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금융발 위기는 반도체 기업의 손발을 꽁꽁 묶었다. 금융 위기에 이은 실물 경기 침체는 거품이 잔뜩 낀 반도체 수요를 일거에 벗겨냈다. 반도체를 생산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던 독일 키몬다를 비롯한 난야, 파워칩 등의 기업은 정부 내지는 금융기관에 지원을 요청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치킨게임 종착역에 달했다. 심지어 세계 시스템 반도체 기업들도 자동차 산업 불황으로 매출 하락에 시달렸다. 전방 산업 불황이 심한 탓에 장비·소재 업체들은 매출이 적지 않게 줄었고 태양광 등 신사업 개척에 나섰다.
경기 침체 속에도 반도체 기업들은 미세 공정 기술 개발과 생산 원가 절감에 노력을 기울여왔다. D램에선 50나노급, 낸드 메모리에선 40나노급 공정을 고기능 제품 개발·상용화에 주력함으로써 반도체 경기 회복에 맞춰 체력을 다지는 데 주력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개척에 나서는 한편 파운드리 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올해 뜻깊은 날이 생겼다. 10월 29일이다. 40여년 만에 처음 ‘반도체의 날’이 제정됐다. 반도체 업계 상호 간 공조협력을 거쳐 위기 극복을 도모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특히 시스템 기업과 시스템 반도체 기업이 윈윈하는 전환점을 마련했다.
인텔이 가장 빠른 PC성능을 낼 수 있는 ‘코어 i7 프로세서’를 4분기에 발표하면서 PC 수요 진작에 기대를 부풀게 했다.
LCD 패널 업계는 말 그대로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경험했다. 불과 지난 5월 말까지만 해도 삼성전자·LG디스플레이 등 LCD 패널업체들은 물론이고 장비·부품·소재 등 관련 후방 산업군도 사상 초유의 호황을 누렸다. 상반기 동안 LCD업계에 ‘사상 최대 실적’이라는 표현이 식상했을 정도다. 하지만 미국발 금융 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한 하반기 들어 시장 전반이 갑작스럽게 얼어붙었다. 불과 몇 달 전 차세대 LCD 라인 신증설 투자에 나섰던 주요 LCD 패널 업체들은 하반기 시황이 심상찮게 돌아가자 잇따라 투자계획을 연기했다. 4분기 들어 감산 규모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수혜를 누리던 후방 산업군도 돌변한 상황에 직격탄을 맞아 생존을 염려해야 할 지경으로 추락했다. 하지만 시장의 급격한 침체는 세계 양산 경쟁을 주도하는 우리 업계에 그동안 바짝 추격해오던 대만을 완전히 따돌릴 수 있는 기회도 제공했다.
삼성전자는 삼성SDI PDP 모듈 사업의 위탁 경영을 단행했다. 새해엔 양사의 중소형 LCD 사업과 차세대 능동형(AM)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사업을 합쳐 가칭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라는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한 것이 업계의 가장 큰 이슈였다. 비록 전 세계 경기 침체의 여파가 출발부터 걸림돌인 게 사실이지만 삼성이 LCD에 이어 차세대 AM OLED 분야의 세계 시장 주도권을 확고히 거머쥐겠다는 의지기 때문이다. PDP 모듈 업계는 지난해 혹독한 구조조정에 이어 올해도 체질 개선을 위한 노력을 집중했다. 시장 전반의 불황이 짓누르는 상황에서 적어도 지난해보다는 뚜렷한 실적 호전의 성과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발광다이오드(LED) 시장은 칩 휘도 향상에 힘입어 향후 일반 조명시장에 대중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한 해였다. 칩 단계 밝기가 100루멘(㏐/W) 안팎까지 높아져 세트 업체들이 상용 조명제품을 대거 출시했다. 삼성전기·LG이노텍·화우테크놀러지 등은 해외 유수업체에 양산 공급하는 실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LCD 백라이트유닛(BLU)용 LED 시장도 의미 있는 성장세를 이어갔다. 특히 노트북 BLU용 LED 시장이 급성장하는 한편, TV용 LED BLU도 일부 출시됐다. 삼성·LG가 새해 LED BLU를 탑재한 노트북 제품군을 50% 이상 선보일 것으로 예상돼 당분간 이 분야의 성장은 지속될 전망이다.
안수민·서한기자 sma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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