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져라, 반응하리라.’
호주 스스로 최고라 자부하는 과학관 ‘퀘스타콘(Questacon)’은 ‘체험형 과학관’이다. 이번 시리즈의 제목인 ‘과학관이 살아있다’는 말이 어울리는 생기발랄한 과학 놀이동산이다.
호주의 수도 캔버라에 있는 퀘스타콘은 주변이 편안하다 못해 적막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모든 건물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 종로에 있는 국립과학관을 찾아갈 때 겪은 교통체증이나 인파는 없다. 이런 한적한 느낌은 캔버라가 인구 계획에 맞춰 건물과 도심, 도로 등이 건설된 계획도시인 탓이다. 이 곳은 시드니와 멜버른이 수도가 되기 위해 열띤 경쟁을 하다 어부지리로 국가 수도로 낙점됐다. 현재 퀘스타콘 위치도 계획된 장소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립도서관 옆과 정부 중앙청사 건너편에 박물관이 있다.
◇조용한 외부, 시끄러운 내부=퀘스타콘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캔버라는 생뚱맞은 과거가 된다. 퀘스타콘은 음악과 관람객의 환호, 물음으로 가득찬 과학 놀이동산이다. 손댈 수 있는 전시물에만 손을 대고 조용히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 ‘범생이’는 퀘스타콘에서는 ‘옳지 않은’ 관람객이다. 퀘스타콘에 들어서면 무조건 만지고 느끼고 타 보고 반응해야 한다. 놀이터처럼 뛰어다녀도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퀘스타코니언(퀘스타콘 직원 및 자원봉사자를 일컫는 애칭)’들이 아이들이 더욱 신나게 돌아다니고 과학을 느낄 수 있도록 독려한다.
기획 전시를 주로 하는 갤러리1부터 갤러리의7 ‘뭐든지 재고 보는 섬(Measure Island)’까지 직접 만져보지 못하는 전시는 없다. 퀘스타콘 전시의 기본 원칙은 실험을 통해 원리를 이해하고 기억한다는 점이다. 갤러리2 사이드 쇼는 원리만 따져 보면 물리 교과서다. 무중력, 순간 가속도, 저항, 원심력, 운동에너지 등 물리 교과서에 쓰인 원리들을 서커스에서 캔을 맞추는 놀이인 ‘커브 볼’, 수직으로 깎아지른 절벽에서 떨어지는 ‘프리폴’ 등을 통해서 몸으로 익힌다. 몸으로 익히며 재미만 느낀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2층으로 올라가면 보다 심도 있는 설명을 통해 자연과 우주, 수학의 세계가 펼쳐진다. 갤러리4부터 7까지 거치는 동안 번개가 치는 과정과 비, 쓰나미, 지구온난화 등 기후 변화의 원리, 화산 폭발 과정, 바다 생물 등 다양한 자연 원리를 모형 시뮬레이션을 통해 학습한다. 시뮬레이션을 작동하는 과정에는 상세한 설명이 덧붙여져 있어 관람객 스스로 읽고 실험할 수 있도록 했다. 서툴게 작동하고 있으면 퀘스타코니언이 어느새 다가와 작동법을 일러주고 원리를 설명해준다. 퀘스타코니언이라고 불리는 자원봉사자들은 실전에 투입되기 전 충분한 공부를 거친다. 여기서 일하는 자원봉사자의 수는 104명. 이들은 관람객과 만나기 전 ‘관람객-자원봉사자 역할 연습’을 통해 교육받는다. 직접 관람객이 돼 모든 걸 체험하고 스스로 흥미를 느낀 뒤에는 서로 공부하고 탐구하며 의견을 나눈다. 대학생부터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자원봉사자들끼리 진지하게 토론을 나누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모두를 위한 박물관=적어도 퀘스타콘엔 소외란 없다. 모든 이에게 과학관은 열려 있다. 심지어 영아들도 퀘스타콘을 즐길 수 있다. 갤러리3에 위치한 ‘미니 큐(Q)’를 통해서다. 미니 큐는 0∼6세 아이들을 위해 마련된 작은 퀘스타콘이다. 기어다니는 아기와 키가 작은 어린이에게 적합한 블록 운동장과 개구리, 거북이 등을 직접 만져보고 배울 수 있는 미니 수족관, 신생아를 위한 모빌존 등이 있다. 세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온 로빈 스미스씨(36)는 “세 살이지만 올해에만 벌써 세 번 왔다”며 “이곳에서는 그냥 아기를 두기만 해도 스스로 기어다니며 이것저것 체험하기 때문에 호기심을 키우고 과학을 배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소수자에 대한 배려도 눈에 띈다. 퀘스타콘은 장애인에게도 열려 있었다. 계단과 턱이 없고 모든 층간은 계단이 아닌 완만한 경사로 이뤄져 있다. 미셸 캐닝 퀘스타콘 마케팅 담당자는 “장애인에게 무리 없는 구조 및 전시 배치가 어린이들의 안전에도 더 좋다”며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모든 전시물 간격은 휠체어 하나가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여유 있었다. 아이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녀도 부딪치거나 다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기도 했다.
◇부대 사업도 눈길 끌어=퀘스타콘 관람의 마지막 코스는 기념품 가게다. 이곳은 퀘스타콘 관람의 마지막인 동시에 호기심을 끝까지 잡아 두는 또 하나의 전시관으로 불린다. 과학 관련 서적을 파는 서점과 화산 폭발 시뮬레이터, 모빌, 퍼즐 등 과학 관련 실험 도구와 퀘스타콘 기념품을 파는 곳으로 분리돼 있다. 특히 기념품과 다양한 과학 관련 실험 도구 및 장난감을 파는 곳은 고무공 하나에도 과학적 원리를 설명해 둬 관람객이 물건을 고르면서도 자연스럽게 과학적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했다. 퀘스타콘을 떠나기 전, 지나가는 아이들과 퀘스타코니언들에게 퀘스타콘을 한 단어로 정의해보라 했다. 1초도 망설임 없이 돌아온 대답은. ‘영감을 주고(inspiring)’ ‘재밌고(fun)’ ‘환상적(fantastic)’
◆퀘스타콘
퀘스타콘이라는 이름은 ‘탐구’라는 뜻의 ‘quest’와 ‘학교’라는 뜻의 ‘conservatory’라는 영어단어를 조합해 만들어졌다. 퀘스타콘은 지난 1980년 9월 호주국립대학교(ANU)의 물리학 교수인 마이크 고어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과학체험관(Exploratorium)을 방문한 뒤 영감을 받아 계획한 과학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설립 초기에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에인슬리 공립학교에서 15개 전시관으로 문을 열었다. ‘만지는 과학’이란 모토로 전시물과 프로그램을 기획한 결과, 지금은 1년 총관람객만 140만명을 넘는다. 세계 각지에서 이곳의 전시물을 빌려갈 만큼 과학관에서는 세계 최고라 자부한다.
지금과 같은 모습은 1988년 11월 호주-일본 수교 200돌을 기념해 양국 정부와 기업의 후원금으로 만들어졌다. 20년 전 준공 당시부터 대형 유리를 통한 자연 채광 및 온도 유지 등 친환경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특히 지난해 8월에는 에너지 관리 시스템을 새롭게 도입해 매년 전체 소모량의 약 10%의 에너지를 절약하고 있다.
퀘스타콘은 찾아가는 과학관도 운영한다. ‘과학서커스’는 ANU 과학커뮤니케이션 과정 학생들이 커다란 트럭에 다양한 과학전시물을 싣고 다니며 50여종류의 과학시범을 보이는 프로그램이다. 호주뿐 아니라 전 세계를 돌며 과학의 즐거움을 전파한다. 지난해까지 전국 2000여개 학교에서 30여만명이 과학서커스를 접했다.
캔버라(호주)=이성현기자 argos@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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