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진정한 정부의 리더십은

 싱가포르 정부가 돈을 풀기 시작했다. 42년 만이다. 지금이 바로 독립 이후 42년 동안 ‘위기상황(Emergency)’에 대비해 꼬박꼬박 저축해 두었던 자금을 풀어야 할 시점이라고 싱가포르 정부는 판단한 것이다.

 ‘싱가포르 경제가 어려웠던 적이 있었나?’라는 궁금증이 생길 만큼 싱가포르는 언제나 성장하는 국가였다.

 2003년 사스(SARS)의 공포조차 발빠른 조치로써 날려버린 싱가포르였다. 이런 싱가포르도 혹독한 세계 경제 위기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다. 쇼핑의 천국인 오차드로드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빅세일을 내걸었지만, 반응은 시큰둥하다. 스트레이트타임지 생활경제 톱 기사는 신용이 좋지 않은 고객에게 은행이 자동차론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제하의 기사였다.

 한 싱가포르 공무원은 “지금 같은 위기는 처음”이라고 할 정도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글로벌 기업의 아·태지역 본사 6000개가 싱가포르에 있다. 특정 지역의 경제로 인한 영향이야 크지 않겠지만, 지금처럼 세계 경제가 휘청하는 상황에서는 싱가포르도 어쩔 수 없었다.

 현실이 이렇게 되자 정부는 집값 폭락 때문에 길거리에 나앉을 위기에 처한 서민에게 서민아파트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고, 기업에 수출 자금을 지원해주기 시작했다. 실직자들의 재교육 비용을 모두 정부가 지원한다. 어려울 때일수록 남미·아프리카 같은 미지 시장을 개척하라고 자금까지 지원하면서 수출을 독려했다. 34년 동안 오직 미국에서만 열렸던 세계적인 그래픽 전시회 시그라프도 처음으로 아시아 행사를 개최하면서 다른 지역이 아닌 싱가포르를 선택한 것은 정부의 지원 때문이다.

 싱가포르 정부가 실천에 옮기기 시작한 것이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여기에는 어떠한 잡음도 반대도 없다. 하나가 돼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뿐이다. 아직 성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싱가포르 정부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위기 상황을 극복해 갈 것이라는 신뢰가 쌓이고 있다. 적어도 이곳 정부는 국민이 믿게끔 하는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싱가포르=문보경기자 okmu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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