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진정한 IT강자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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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을 IT강국이라고 한다. 과연 진정한 강자일까. 긍정보다 부정이 앞선다. 비록 IT인프라나 하드웨어의 강국일지언정 정보윤리, 규범 등 정보 인프라는 후진국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고속도로에 허위, 불건전 정보가 범람하고 버릇없는 네티즌에게서는 네티켓을 찾아보기 어렵다. 인터넷 중독자는 수를 더해가고 정보 격차의 골은 깊어지고 사이버테러, 온라인 사기 및 절도, 악성 댓글로 사이버 공간은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후진적 정보문화의 편린으로서 비신사적이며 배타적인 댓글 문화는 국제적으로 악명 높고 온라인게임에서 한국의 게이머들의 욕설과 폭언 등은 외국 게이머들의 지탄 대상일 정도로 일그러진 정보화가 IT강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자유와 권리만 주장하고 있으니 성숙하지도 않다.

 이처럼 정보문화가 빈곤한 까닭은 정신없이 정보화에 매진했기 때문이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슬로건 아래 양적 정보화 성취를 이루었지만 질적으로 미성숙한 정보문화로 인해 정보화 불균형을 초래했다. 단적으로 세계 최초의 컴퓨터 바이러스 침해 사고나 사상 최대의 개인정보 유출 등으로 얻은 IT 역기능 왕국의 불명예는 정보산업과 기술 편향의 일차원적 정보화의 귀결이다. 그동안 정보문화 진흥 노력이 없었던 게 아니지만 역부족이었다. 가령 통신사나 게임업체, 인터넷기업들마다 가입자 확보 및 이익 극대화를 앞세울 뿐 올바른 정보이용과 건전한 정보문화 활동은 뒷전이었다.

 정보화 정책도 산업 육성, 망 고도화, 기술개발 진흥 일색이었다. 으레 정보문화는 정보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수요 창출의 수단으로 이해됐다. 범국민 1인 1PC 갖기, 1인 1ID 갖기 운동 등으로 세계에서 가장 컴퓨터를 잘 쓰는 국민이지만 정작 생산적이고 건전한 정보 이용에는 소홀했다. 심지어 정보통신기기 활용이나 정보화 편익 홍보의 방편으로 정보문화가 확산됐지만 정보윤리나 규범이 생활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면서 빚어진 불균형이 심화됐다. 여기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보문화는 가시적 성과물로 측정되기 어려운 문화사업 질적 특성이 구조조정의 올무가 돼 사업 축소나 폐지 대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면서 공공 부문 구조조정과 개혁의 단골 메뉴로 푸대접받았다.

 정보문화가 홀대받는 틈을 타고 급속히 번진 역기능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와 여당을 중심으로 윤리교과 신설, 계몽운동 등 대책들이 쏟아졌지만 역기능 법제도 방안은 아직도 정쟁에 묻혀 있다. 그러나 정보문화는 일회성 이벤트에 의해 창달되거나 강력한 규제에 의해 길들여지는 단속 대상이 아니다.

 진정한 IT강국을 위해서 산업기술, 인프라에 조화로운 건전한 정보의식과 성숙한 규범, 생산적 정보 형태가 정립돼야 한다. 현 정보문화 수준으로는 IT강국의 앞날을 기약하기 어렵다. 기술 못지않게 중요한 게 철학이다. 이런 맥락에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의 정보문화진흥 정책이 수립돼야 한다. 지식정보사회 이후 창조시대에서는 성장 엔진이 정보, 지식에서 이미지로 옮겨가면서 인간적 정보문화에 바탕을 둔 상상력과 창조성이 국가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늦기 전에 정보화 불균형을 넘어 창조적 정보문화의 토양에서 진정한 IT 강자의 위상과 면모를 일신해야 한다. 한세억 동아대 행정학과 교수(정보정책 전공) sehan@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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