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선 기획] `변화`와 `희망`에 한껏 부푼 실리콘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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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후보가 당선이 확정된 직후 자신의 상원의원 지역구인 일리노이주 시카고 그랜트 파크에서 열린 대규모 야외 지지자 모임에 참석, 당선 연설을 하기 위해 가족과 걸어 나오고 있다.<시카고(미국)=AP연합뉴스>

 “우리는 변화를 원한다(We want to change).”

 제44대 미국 대통령을 뽑기 위한 선거가 치러진 4일(현지시각) 오전 8시 실리콘밸리 중심부에 위치한 새너제이에서는 침체된 경기 탓인지 비교적 조용한 가운데 투표가 이뤄지고 있었다. 현지 IT기업에 종사하는 엔지니어들이 많이 산다는 르네상스 거리의 스톤게이트 아파트에 마련된 투표소에는 출근 전에 투표를 마치고자 하는 새벽형 인간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누굴 찍었는지는 말해주기 어렵지만, 내가 뽑은 사람이 대통령이 돼 탁월한 리더십으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해냈으면 좋겠다.” 90년대 후반 부산 미군 부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어 한국을 잘 안다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키이스(35)는 급격히 줄고 있는 실리콘밸리의 일자리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았다. “주요 IT기업을 중심으로 해고(lay off)가 본격화되면서 이곳 엔지니어들이 좌불안석”이라며 “당선자가 실직의 위협을 줄여주길 간절히 원한다”고 말했다.

 인근의 버거 거리 투표소에서 만난 흑인 여성 유권자 엘리스(28)는 “지난 8년간 부시 정부가 벌여놓은 실책들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권이 바뀌어야 한다”면서 “오바마가 실리콘밸리에 큰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지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미국 대선을 바라보는 현지 한인 기업인들은 ‘변화가 가져올 긍정적 효과’에 기대감을 모았다.

 중소 IT기업의 현지 진출을 지원하고 있는 정보통신국제협력진흥원(KIICA)의 이기석 이사는 “오바마가 대통령이 돼도 현재의 경제·금융 위기가 당장 해결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태양광 에너지·클린 테크 등 신성장동력 육성 의지를 밝힌만큼 우리 기업들에도 새로운 기회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현지에서 10년째 컴퓨터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송영길 엔컴퓨팅 사장은 “일부에서는 1920년대 공황에 비유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상황이 그렇지는 않다”며 “다만 위축된 투자와 소비 심리를 자극할 경기 부양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송 사장은 당선자와 새 내각이 투자자와 고객을 다시 실리콘밸리로 불러들일 수 있도록 연구개발(R&D) 투자에 대한 세금 감면과 전문인 취업비자(H-1B) 확대 등 각종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에 일각에서는 진보 진영이 내세운 급진적 변화 요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내고 있다. 특히 오바마의 세제개편 정책(고소득자 과세 확대, 저소득층 재분배)은 실리콘밸리 기업인들 사이에서도 반대 의견이 상당하다. 외국계 IT기업에 종사하는 한국인 한 임원은 “오바마가 주장한 대로 한다면 종합소득세가 수입의 25%까지 늘어난다”면서 “사회주의도 아닌데 이런 식의 재분배 발상은 근로 의욕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날 또 다른 화젯거리는 바로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진 동성애자 결혼을 금지하는 ‘발의안 8’이다. 새너제이와 버클리를 비롯, 캘리포니아주의 상당수 도시에서는 동성 간 결혼 금지를 명문화하지 않도록 발의안을 부결시키자는 주장을 펴는 사회운동단체들이 투표장 인근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새너제이가 소속된 산타클라라 카운티 교육청 소속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소셜 스터디 수업 일환으로 대통령 모의 선거가 치러졌는데, 상당수의 학교에서 오바마가 다수의 표를 확보하기도 했다.

 투표가 마무리되고 오후 8시(현지시각)께 TV를 통해 오바마의 승리 보도가 흘러나왔다. 투표장 인근에서는 여기저기 함성이 터져나왔다. 세계 경제의 축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새너제이(미국)=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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