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부터 세계 TV 시장을 석권해온 삼성전자. 삼성전자 본사에서는 주요 거래처인 미국 베스트바이에서 지난주 몇 대의 TV가 판매됐는지 현황이 속속 집계된다. 베스트바이와 공급망관리(SCM)라는 시스템을 통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 판매 현황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삼성전자는 연말 미국의 최대 대목인 ‘블랙프라이데이’ 전략을 수립하는 데 골몰한다. 또 생산계획은 어떻게 수립할 것인지, 물류는 어떤 루트로 공급해야 효과적인지도 SCM을 이용해 결정한다. 재고 현황 파악에 수십일이 소요되는 경쟁사를 앞서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세계 철강업계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포스코는 타 경쟁사보다 앞선 지난 2005년 전사통합의 생산관리시스템(MES)을 개발해 포항과 광양제철소의 81개 공장을 마치 하나처럼 운영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췄다. ERP와 전사통합의 MES는 제품 판매·생산계획 수립기간이 기존 60일에서 15일로 단축됐고 고객들이 포스코의 생산계획을 과거에는 분기 개시일에 알 수 있었던 것과 달리 분기 개시 45일 전에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열연 제품 기준으로 납기는 30일에서 14일로 단축됐고 납기 응답시간은 2∼3시간에서 2.5초로 줄어들었다. 신제품 출시 기간도 4년에서 1.5년으로 단축됐다. 포스코에는 이러한 노하우를 배우러 오는 세계 철강기업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SKT는 지난 2004년 말부터 3000억원을 들여, 고객데이터와 접점을 하나로 통합하는 차세대마케팅(NGM)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수천만명의 데이터를 통합하고 연계하는 이 프로젝트로 기존 고객센터와 e-Station 등 각종 고객 접점의 다양한 시스템에서 분산되던 고객정보가 통합돼 기존 5분 이상 걸리던 신규 가입자 처리가 2∼3분으로 단축됐다. 4일 소요됐던 고객 요금정산 처리도 온라인 처리 방식으로 전환되면서 15시간이면 처리가 끝나 84%의 요금 정산 시간(빌링 시간) 단축을 이뤄냈다. 고객 데이터 통합을 거쳐 대리점과 콜센터는 통합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진행한다. SKT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고 대리점과 콜센터의 효율성을 크게 높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 대표기업의 경쟁력에는 명품 IT서비스가 뒤에 있다. 삼성전자의 SCM에는 삼성SDS의 치열한 고민이 담겨 있으며 포스코의 혁신적인 MES에도 포스데이타의 땀이 녹아 있다. SKT의 어쩌면 무모한 도전으로 보인 NGM 프로젝트 역시 SK C&C의 잠 못 이루는 밤이 있었다. 물론 그들만의 공로는 아니다. 여기에 SW와 최적의 하드웨어를 공급한 기업들도 있었다. 그러나 고객과 벤더 중간에서 최적의 솔루션을 선택하고 함께 고민하고 조율해온 장본인은 IT서비스 기업이다. 명품 IT서비스는 기업뿐만 아니라 국민의 삶까지 변화시킨다. 1000만명이 함께 생활하는 서울시의 교통 체계 혁신도 IT서비스가 단단히 한몫했다. 버스 업체의 경영 수지 악화, 대중 교통의 서비스 질 저하로 인해 2000년 초반까지 서울의 교통은 심각한 사회 문제였다. 불편한 대중 교통을 이용하기보다는 승용차로 출퇴근하는 시민이 많다 보니 서울시의 교통 문제는 악순환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시는 대중교통체계를 개편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모든 시민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중앙차로제를 확대 운영함과 동시에 SOC 인프라를 재편하는 사업이었다. 이러한 변화 중 대표적인 것이 IT를 활용해 버스와 지하철, 향후 택시까지 모든 교통수단을 교통카드시스템으로 묶어 운행할 수 있게 시스템화한 것이다. 교통카드 시스템 운용을 통한 각종 정보들을 바탕으로 서울시는 보다 과학적이고 효과적인 교통정책을 펼치는 한편 거리 비례 요금 등 합리적인 요금 체계도 만들었다.
이 시스템을 구축한 LG CNS 측은 “1000만명이 넘는 도시에서 이러한 교통체계시스템을 구축한 곳은 서울시가 유일하다”며 “서울시의 교통카드시스템은 국제적인 모범사례로 수많은 국가 및 도시에서 벤치마킹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가 발표한 2008년도 세계 전자정부평가 결과 우리나라가 2006년과 2007년에 이어 3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했다. 호적등본을 떼러 원적지까지 가야 했던 시절은 옛날 이야기가 됐으며 유류세 환급도 국세청 홈페이지만 접속하면 바로 알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역할을 수행해온 IT서비스 산업이 최근 들어 흔들리는 모습이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 내수 지향적인 산업 형태, 계열사 나눠 먹기 식의 부정적인 인식만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남기찬 서강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IT서비스 산업은 전통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넘어 전통산업과 융화돼 새로운 서비스 산업을 만들어내는 역할까지 발전하고 있다”며 “전 세계적으로 IT서비스 산업을 거쳐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고용을 창출하는 방안 등이 활발히 모색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 IT서비스 산업이 갖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IT서비스의 중요성은 어느 시대보다도 더욱 강조되고 있는 시점”이라며 “비전을 기업과 정부 등이 함께 만들어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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