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뉴IT 정책을 발표했다. 자동차·조선·헬스 등 비IT산업과 IT산업을 융합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반면에 그 성공적 수행을 위해서는 정책의 이면에 숨어 있는 가정과 전제를 밝히고 이해당사자들 간에 치열한 토론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실제 정책개발 과정에서 이러한 분석과 토론이 충분했는지는 다소 의문이 있다.
뉴IT 정책에서 일단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IT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정부의 시각이다. IT산업계에 떠도는 얘기로서 이번 뉴IT 정책과 무관하지 않은 것은 이제 이른바 정보화는 그만하고 대신 융합에 올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뉴IT가 강조하는 융합이 IT를 적용해서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는 영역을 확대하자는 것이라면, 정보화는 이러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생산과 관리 프로세스 자체에 IT를 적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보화는 그만두고 융합만 하자는 주장은 프로세스는 무시하고 제품에만 신경 쓰자는 주장과 같다. 한마디로 경영 논리에 전혀 맞지 않는 얘기다. 제품과 프로세스는 어느 한쪽을 선택하고 포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융합과 정보화도 마찬가지다. 정보화는 싫증난다고 그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뉴IT 정책에서 또한 짚게 되는 것은 IT를 단위기술로만 보는 시각이다. IT는 분명 제품 개발과 프로세스 개선에 적용되는 단위기술이지만, 동시에 IT는 이러한 기술이 모여서 이루는 생태계기도 하다. 뉴IT 정책에서는 이러한 기술생태계로서의 IT의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단위기술 개발이 반드시 최적의 기술 생태계로 이어지지는 않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뉴IT 정책을 보면서 던지는 세 번째 질문은 정부의 역할이다. 융합이든 정보화든 또 IT 단위기술 개발이든 IT 생태계 설계든 이 과정에서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 뉴IT 정책은 IT 인력개발·기술개발·기술창업 지원 등을 정부의 역할로 제시하고 있지만 이것은 과거에도 해 왔던 사업들이다. 뉴IT 정책에서는 이런 전통적 사업의 경계를 뛰어넘는 보다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정부의 역할이 제시돼야 한다.
뉴IT 정책 추진에서 정부의 역할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다름아닌 국가 차원의 경영관리 체계 곧 엔터프라이즈 아키텍처(EA)를 구축하는 일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향후 뉴IT가 지향하는 창조적 융합을 위해 민간은 약 110조원이라는 돈을 투자할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다양한 주체의 다양한 IT 융합 노력을 하나의 조화된 전체로 엮는 틀이 바로 EA다. 중앙집중식 통제에 의존하지 않고 민간의 자발성과 창의성에 맡겨두면서도 국가 산업 전체의 조화와 최적화를 꾀하는 새로운 거버넌스 방식이 EA다.
이러한 국가 차원의 EA 구축이야말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정부가 향후 5년간 3조5000억원의 정부 재원을 가지고 해야 할 최우선 사업은 바로 국가 경영의 모든 영역과 차원에서 이러한 EA를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국가를 경영하는 일이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현재 공공부문에서 EA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모든 사업들의 전면적 재검토다. 현재의 EA 사업은 표준산출물이란 이름으로 수천장의 그림을 기계적으로 그려내는 IT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EA 사업은 IT 사업이 아니라 국가혁신 사업으로 전환돼야 한다.
뉴IT 정책이 지향하는 사업들은 명품 주택을 짓는 것과 같다. 이 명품 주택은 물론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 그러나 명품 주택이 곧 명품 도시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EA는 명품 도시를 만들어 내기 위한 도시계획과 같으며, 그래서 EA 없이 추진되는 모든 노력은 도시계획 없이 추진되는 도시의 난개발이 될 수도 있다. 과거 명품 도시를 만들어 낸 이 대통령이 국가 EA 구축을 통해 명품 국가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전성현 국민대학교 비즈니스IT 전문대학원장·한국 EA/ITA학회장 juhn@kookm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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