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텔레마케팅](6) 해외사례- 필리핀

Photo Image
필리핀 주요 거리에서는 콜센터업체 구인 광고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사진은 현지 주요 콜센터업의 구인광고 모습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필리핀 콜센터 추이

“지금 어디 다니고 있어?”

“IBM 다녀. 근데 돈 더 주는 곳으로 옮길까 생각 중이야.”

만약, 국내에서 이와 같은 대화 내용을 엿들었다면 ‘잘나가는 글로벌 컨설턴트’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필리핀에서는 절대 아니다. 열에 아홉은 콜센터 에이전트다. 콜센터는 필리핀에서 최고 유망업종 가운데 하나다. 필리핀 정부는 기업업무외주(BPO:Business Process Outsourcing)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으며 콜센터는 BPO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전 국민 95%가 영어를 구사하고 미국 식민지였기 때문에 서구 문화에도 익숙하다. 콜센터 직원들은 전 세계인의 영어 액센트에 익숙하도록 고강도 훈련을 받고 있으며 ‘미국식 영어’ 강습학원도 급속히 늘고 있다. 필리핀 콜센터가 고학력 인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콜센터를 운영할 수 있다는 점이 글로벌 기업들로부터 주목받는 이유다.

◇일자리 창출 일등공신=‘2000년 1500석에서 2007년 12만3750석’. 콜센터 규모의 기준이 되는 ‘자리 수 현황’이다. 2000년은 필리핀 정부가 BPO산업 육성에 나선 첫해다. 8년 만에 규모가 무려 80배 이상 급신장했다. 정부 측에서는 성과로 내세우기에 충분한 수치다. 이 같은 일자리 급신장은 수익으로도 이어져 2000년 규모가 24만달러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100배를 훨씬 넘는 3600만달러를 기록했다. 일자리 창출과 함께 수익도 크게 올린 셈이다.

콜센터를 대표하는 민간단체인 필리핀 비즈니스프로세스협회(BPA)의 질리안 조이시 버리타 정보연구국장은 “한때 이곳 빌딩이 많이 비어 있었으나 지금은 오히려 임차료가 계속 오르고 있다”며 “콜센터로 인해 일자리가 창출되고 투자도 유입되는 효과를 보고 있다”고 현지 경제 살리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정부가 팔 걷고 나서=필리핀 정부는 2000년부터 콜센터를 중심으로 BPO산업을 집중 육성했다. 중국이 세계 시장에 본격 뛰어들자, 저임금 노동력으로 경쟁하던 필리핀 주요 산업의 경쟁력이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새로운 유망산업을 찾는 과정에서 BPO산업을 키우게 됐다. BPO가 꼽힌 배경에는 주변 인도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인도와 마찬가지로 필리핀도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대졸 우수 인력이 풍부하고, 미국과 유럽의 중간에 위치해 지정학적으로 유리한 것이 집중 육성하는 요인이 됐다. 여기에 필리핀 사람이 외국인과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성품이 있는 것도 육성의 배경이 됐다는 것이 현지 정부 측의 설명이다. 이 밖에 콜센터가 대표적인 서비스 업종으로 고용창출과 함께 여타 서비스 업종으로 확대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도 꼽히고 있다.

필리핀 정부는 콜센터를 육성하기 위해 외국 투자기업에 여러 혜택을 주고 있다. △설립 후 4∼8년간 법인세 면제 △법인세 면제 기간 종료 후 5% 세율 적용 △수입 자본재에 대한 세금 면제 △위탁장비 제약 없이 사용 △외국인 고용 허가 등이 대표적이다. 단지 설립요건으로 좌석(시트)당 2500달러를 PC·의자 등 장비 구입에 투자하도록 했다.

◇규제보다는 성장 우선=고객의 개인정보 유출 등 콜센터 문제는 필리핀 정부 그리고 협·단체 등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업계 자율적으로 관리를 잘하고 있는만큼 직접 나서지는 않고 있다. 무엇보다 BPO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몫이 크다는 것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제이슨 T 라오 필리핀 무역산업부 투자청 전략커뮤니케이션국장은 콜센터를 통한 정보 유출 등 부정적 사례에 대해 “글로벌 관심사로 잘 알고 있다”면서도 “법적으로 기반은 마련돼 있는만큼 크게 관여하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버리타 BPA 국장도 “협회는 교육프로그램과 콘퍼런스 등에서 정보보호에 업체들이 관심을 가질 것을 당부하고 있다”면서 “대부분 회사는 자체 시스템을 이용해 철저히 정보보호에 앞장서고 있다”고 소개했다. 버리타 국장은 이어서 “단지 일부 외국 회사가 직원의 정보 유출에 따른 제재 수위가 낮다고 지적해 규제 강도를 높이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제이슨 T 라오 필리핀 무역산업부 투자청 전략커뮤니케이션국장 인터뷰

“콜센터는 중요한 산업 분야 가운데 하나로 앞으로도 계속 진흥해 나갈 것입니다.”

제이슨 T 라오 필리핀 무역산업부 투자청 전략커뮤니케이션국장(42)은 콜센터 산업이 필리핀 경제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콜센터로 인해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등 부정적인 면이 있는 것은 알지만, 업계에서 자율적으로 관리하고 있는만큼 정부가 더욱 지원에 나설 것임을 명확히 했다. 특히 중국의 급성장으로 필리핀으로서는 새로운 대안 모색이 필요했다며, 필리핀에서의 콜센터 산업을 강조했다.

“외국기업의 투자가 중국으로만 쏠리면서 필리핀은 투자유치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돌파구를 창출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됐고 BPO산업은 필리핀에 가장 적합한 분야입니다.”

필리핀 정부는 2000년 본격적으로 육성에 나섰다. 2001년에는 미국 등 선진국으로 투자유치 로드쇼를 나섰으며 그 결과 미국의 IT서비스 분야 톱10 업체 상당수가 필리핀에 콜센터를 두게 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는 “필리핀에서는 영어 외에 중국어·스페인어·베트남어 심지어 한국어까지 콜센터업무를 담당할 수 있다”면서 실제로 이곳에 한국의 콜센터업무를 맡고 있는 업체가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라오 국장은 이어 “필리핀 사람들이 언어문제 해결 외에도 매우 우호적이어서 외국기업으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며 “24시간 주 7일을 근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자부하기도 했다.

 라오 국장은 “비록 콜센터가 최첨단 산업은 아니지만 필리핀이 경제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임금이 계속 오르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저임금이어서 외국기업들이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 일자리를 대거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현지 정부에 따르면 필리핀의 인건비 수준은 미국을 100으로 봤을 때 16으로 중국(21)·말레이시아(23) 등에 비해서도 여전히 낮다.

 필리핀 정부가 육성하고 있는 BPO산업은 65%가량을 차지하는 콜센터 외에 사무관리 지원, 의료기록 입력 지원, 법률문서 입력, 애니메이션, SW개발, 디지털콘텐츠 등이 있다.

◆콜센터업체 피플서포트(PeopleSupport)

미국의 세계적 콜센터업체로 나스닥에도 상장해 있는 피플서포트는 사실상 콜센터업무 대부분을 필리핀에서 진행한다. 2008년 5월 말 현재 전 세계에 7000여석의 콜센터를 관리하고 있는 가운데 이 중 대부분인 6600여석이 필리핀에 있다. 마닐라 3700석, 세부 2400석 그리고 바기오 500석 등이다. 해외 저임금 우수인력을 활용한 아웃소싱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피플서포트는 비록 필리핀에 있지만 보안이나 인력관리에는 매우 철저하다.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보안 측면에서는 법적 문제를 전담하는 부서를 두고 있다. 그리고 정보 유출 등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면 해고 처리를 하는 등 강하게 제재하고 있다. 직원(콜센터 에이전트)이 고객 정보에 접근하는 것도 매우 까다롭다. 우선 DB관리자에게 정보 의뢰를 해야 하고, 그러면 DB관리자는 내용을 확인 후 접속을 허용한다. 접속만 해서 조회만 할 수 있을 뿐 정보를 다운로드 등의 형태로 직원 PC에 가져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뿐만 아니다. 직원은 어떤 저장매체의 소유가 허락되지 않는다. 휴대폰은 물론이고 노트북PC 심지어 볼펜까지도 갖고 들어갈 수 없다. 출근하는 과정에 각자의 사물함에 넣어야 한다. PC에는 인터넷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없다. 당연히 직원이 직접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인력은 상시 채용으로 뽑는다. 그래서 날마다 회사 건물 1층 대기실과 주변은 매우 번잡하다. 입사희망자들이 서류와 면접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채용은 서류전형 후 두 번의 면접으로 이뤄지는데 무척 까다롭다. 일주일에 약 1000명이 서류를 제출하는데 이 중 최종 입사자는 5∼10% 수준이다. 기본적으로 대학 졸업자이며 발음 능력, 표현력, 친절도, 인터뷰 방법, PC 활용능력 그리고 문법·단어가 시험과목이다. 서류전형과 두 차례의 면접은 하루 동안 진행한다.

 입사 후에도 까다로운 트레이닝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 각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능력을 익힌다. 예컨대 고객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등이다. 각 직원은 일일·주·월 단위로 평가받는다. 얼마나 지속적으로 통화를 했는지 그리고 통화시간, 응대 능력, 친절도 등이 평가기준이다. 그 결과는 실적에 반영된다.

 셀 너바이즈 피플서포트 마케팅·PR 매니저는 “능력에 따라 진급을 할 수 있고 그러면 임금도 오른다”며 “기회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신입기준 월급은 1만2000∼1만3000페소(약 300달러)로 이는 은행원보다 많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