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하나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텔레비전, 일본에서 만들어진 자동차는 미국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이다. 동유럽의 엔지니어들이 개발한 인터넷 전화 ‘스카이프’를 전 세계 사람이 쓴다. 직장에서도 세계 여러 국가 기업들과 협력하는 일이 일반화됐다.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과 만나고 일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고위 중역만의 일이 아니다.
실리콘밸리의 세계화는 훨씬 더 고도화돼 있다. 실리콘밸리 엔지니어의 해는 지지 않는다. 이른 아침, 유럽 부서와 영상회의를 하고 오후에 아시아사무소와 연락을 한 뒤 한밤중에 인도의 개발 부서와 전화회의를 한다. 여러 국가에 걸쳐 일하다 보니 신기술 개발은 24시간 진행된다. 유럽에서 쓰인 코드를 실리콘밸리에서 완성해서 인도에서 검증하고 다시 유럽팀에 피드백하는 식이다. 상품화 이후 사후 서비스 역시 국제 간 협력 때문에 24시간 제공된다.
어쩌면 실리콘밸리 자체가 지구촌의 축소판일지도 모른다. 사내 일반회의는 마치 유엔회의를 방불케 한다. 불과 몇 명이 모인 소규모 회의에도 대륙·종교·인종·언어가 다양한 민족이 옹기종기 앉아 있다. 회의 참가자 중 미국 태생이 단 한 명도 없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실리콘밸리에서 세계화는 이미 일상 생활이다. 이는 실리콘밸리의 가장 큰 장점일 수 있다.
그러나 지구촌 곳곳에서 세계화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처럼 실리콘밸리 내에서도 세계화를 반기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실리콘밸리의 많은 기업이 인도와 중국 등지에 개발팀을 두고 실리콘밸리 내의 팀을 축소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를 한 명 뽑는 대신 인도나 중국에서 서너 명을 뽑을 수 있다는 사실은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진에게는 큰 매력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정부가 외국인에게 주는 취업비자 수를 대폭 삭감한 이후 외국인 직원들을 뽑는 일이 힘들어지면서 이런 현상은 더 많아졌다.
인도와 중국의 교육 인프라와 산업은 아직 낙후돼 있다. 신입 사원의 수준도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 그러나 실리콘밸리 본사팀과 몇 번의 프로젝트를 하고 나면 사정은 달라진다. 수준이 현저하게 올라가는 것이다. 실리콘밸리 본사 직원의 심정을 헤아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자신이 가르쳤던 인도·중국 현지 직원들이 몇 년 뒤 자신의 자리를 위협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세계화의 물결은 기술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닷컴 거품, 엔론 등의 스캔들 이후 미국 금융시장의 회계가 강화되자 금융 자금은 유럽과 아시아로 흘러갔다. 잡지 구독 요청과 상품 판매 권유 등 실리콘밸리 사무실로 걸려오는 숱한 전화도 대부분 지구 반대편 인도에서 걸려오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대만·동남아를 휩쓸었던 한류가 실리콘밸리에도 있다. K-팝(K-POP)으로 불리는 한국 가요 마니아들이 실리콘밸리에 확산되고 있다. 실리콘밸리 동료들 중에는 한국인 동료보다 더 한국 드라마를 꿰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의료 관광(Medical Tourism)’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많은 미국인이 미국에서 비싼 수술을 받는 대신 태국 등지에서 수술을 받고 휴양지에서 회복기를 보내고 온다.
세계화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다. 세계화의 물결에서 살아남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실력을 기르는 것이 최우선이다. 자기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갖춰야 한다. 좋은 학벌과 지역 연고를 이용해 자리를 잡았다고 안심하고 있다면 착각이다. 세계 최고의 전문가가 되지 않으면 회사나 부서가 통째로 인도나 중국, 동유럽의 인력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영어도 중요하다. 미국인이나 영국인 같은 억양을 갖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자신의 논리를 펼 수 있는 도구로서 영어의 중요함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최근 한국의 KAIST가 글로벌 대학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모습은 매우 고무적이다. 준비된 사람들에게 이미 세계는 하나다. 세계 어디에서든지 누구와도 일을 할 수 있고 전 세계가 그들을 반긴다.
실리콘밸리(미국)=오관석 주니퍼네트웍스 엔지니어 kwan.o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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