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지만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만 해도 음악감상은 일종의 사치였다. 먹고살기도 빠듯한 때에 한가로이 음악을 들을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설령 시간이 난다 하더라도 전파사의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음악이나 가끔 듣는 라디오가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그 시절 그나마 나의 음악에 대한 갈증을 풀어 주었던 곳은 학교 앞 음악다방이었다. 그곳에는 비틀스가 있었고 사이먼과 가펑클이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드디어는 꿈에 그리던 뮤직박스 디스크자키를 하게 되면서 음악에 대한 한(恨)은 조금이나마 풀리게 됐다.
나에게 뮤직박스 안은 하나의 소우주이자 파라다이스였으며 피안의 안식처였다. 또 대하소설 분량의 사연을 몇 백자의 글자로 뭉쳐놓은 가사들과 아름다운 멜로디는 나의 감성을 일깨웠다. 대학시절, 힘들고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음악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운명처럼 하나의 노래를 만나게 됐다. 바로 아만다 맥브룸의 ‘더 로즈(The Rose)’란 곡이다. 요즘 청소년은 아마도 팝페라 가수 임형주가 부른 것쯤으로 알고 있겠지만, 당시 아마추어 작곡가였던 그녀가 전설적인 여성 록커 재니스 조플린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더 로즈’를 위해 작곡한 곡이다.
비록 불법복제음반(일명 빽판)이긴 하지만 어렵사리 맥브룸의 LP를 손에 넣었던 날 나는 소우주의 주인이자 파라다이스의 왕이었으며 피안의 절대자였다. 틈만 나면 뮤직박스 안을 온통 ‘장미(더 로즈)’로 채워 넣으며 음악다방을 찾는 이들에게 나의 음악을 강요(?)했다. ‘더 로즈’는 그만큼 나의 몸과 마음을 모두 앗아간 곡이었다.
지금은 집에 LP를 들을 수 있는 시스템이 없어서 그녀의 LP는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나의 책장 한쪽을 장식하며 20여년 전의 소우주로 안내하는 인도자 노릇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와의 만남은 MP3나 CD 덕분에 더욱 잦아지고 있다. 물론 휴대폰 컬러링으로도 ‘더 로즈’에 대한 나의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
ygson@kado.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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