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택의 부활이 기다려진다. 이유는 단 한가지다. 팬택은 99-88로 대변되는 국내 산업 생태계의 현주소를 대변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국내 산업계는 매우 기형적이다. 기업 수의 99%, 고용 인원의 88%를 300인 이하 중소기업이 차지한다. 300인 이상 중견기업, 1000명 이상 대기업은 지나치게 적다. 불과 1%의 대기업이 22%의 고용자를 거느리고 산업계를 지배하는 구조다.
99-88은 인위적으로 형성됐다. 지난 70년대, 정부가 경공업 기반의 산업 체질을 중화학공업 위주로 바꾸기위해 소수의 대기업에게 자원을 집중시킨 결과다. 이들은 이후 재벌로 불리우며 산업계의 맹주로 군림해오고 있다.
팬택은 지난 91년, 말 그대로 창고에서 출발했다. 한 때는 굴지의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우뚝 성장했다. 삼보컴퓨터와 더불어 99-88의 장벽을 뛰어넘은 성공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끝내 대기업 반열에서 버티지 못하고 추락했다. 지난 2007년 4월 기업회생작업이 승인돼 기사회생의 기회가 주어진 것만도 다행이었다.
지금까지 적지 않은 도전자들이 99-88의 벽을 무너뜨리려 했지만 하나같이 무릎을 꿇어야 했다. 90년대 벤처 신화의 주역이었던 메디슨이 그러했다. 벤처의 효시이자 한 때 자산순위 톱 반열까지 올랐던 삼보컴퓨터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선 중소기업에서 출발해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으로 도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한때 마니아들로부터 열화와 같은 사랑을 받으며 MP3P 신화를 일으켰던 레인콤은 끝내 매출 5000억원의 벽을 넘는데 실패했다. 벤처계의 존경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휴맥스도 아직 매출 1조원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
정부조차도 이 금기의 벽을 허무는 데 실패했다. 90년대 말 IMF를 계기로 벤처 붐을 일으켰지만 거품만 잔뜩 일으키고 말았다. 정부는 99-88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소기업은 보호의 대상으로만, 대기업은 규제의 대상으로만 여겨왔다. 중소기업을 보호하면 중견, 대기업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을까. 대기업을 억누르면 중소기업들이 불거져 나올 것이라는 풍선효과도 한 몫 했으리라.
전경련도 최근 99-88의 문제점과 이를 해결할 대책을 제시했다. 중소기업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보지말고 성장 단계별 맞춤 시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중견기업에도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일리있는 말이다.
하나 상속세 폐지나 완화의 필요성은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상속세 때문에 중소기업이 중견, 대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은 확대 해석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상속세 문제는 오너십 경영 체제 유지를 전제로 했을 때에만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정작 중요한 것은 기업금융 시스템 개선에 있다. 30여년간 유지돼온 99-88의 생태계는 경영 인프라에도 똑같은 영향을 미쳤다. 그 중에서도 재벌 대기업 계열사에는 후덕하고 중견·중소기업엔 인색한 기업금융 체질이 가장 큰 원흉이다. 재벌에 속하지 않는 기업들에게는 이것이 아킬레스건이다. 국내 기업들에게 일시적인 대출회수는 사형선고와 같다. 소수의 재벌기업에 속하지 않는 기업들이 성장, 존속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그나마 팬택은 금융권 덕분에 기업회생작업의 혜택을 입었다. 하지만 성장을 지향하던 수많은 중소·중견 기업들은 자그마한 허점만 불거져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 했다. 애써 키워온, 돈으로 따지기 힘든 무형자산들도 함께 뭍혀버렸다. 팬택의 부활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기업회생작업 중인 팬택의 정상화가 그 시작이다. 그래야 제2, 제3의 팬택이 끊임없이 나올 수 있다. shyu@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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