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IBM 고문과 같은 연구소에 근무하고 있지만, 바쁜 일정 때문에 그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어렵게 시간을 맞춰 인터뷰한 당일에도 앨런은 스위스의 EPFL이라는 이공계 명문대학에서 연설을 하고 ‘에나 햄버거’라는 또 하나의 상을 받고 연구소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위대함은 ‘묵묵함’에서 나온다. 수상을 축하하자 그는 밝게 웃으며 “좋아하는 일을 좋아서 한 덕”이라고 말했다.
그의 나이 76세. 인생의 황혼기에서 손주들의 재롱을 받아가며 인생을 즐길 나이에 그는 아직도 도전의 고삐를 놓지 않았다. ‘인생은 끊임없는 도전’이란 말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살아있는 전설이다. 2006년 컴퓨터 과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튜링상도 수상한 그는 컴퓨터 과학자로 대성할 수 있었던 비결을 간단하지만 명료하게 말했다.
“한 가지 연구주제에 평생을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고성능 컴퓨터를 위한 컴파일러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 ‘어떻게 하면 프로그래머들이 복잡한 고성능 컴퓨터를 모르고도 쉽고 간단하게, 자동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할까’는 나의 평생 연구 주제였다. 컴파일러와 성능 최적화는 IBM360부터 슈퍼컴 ‘블루진’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컴퓨터나 나올 때마다 꼭 풀어야 하는 숙제였다. 이런 멋진 연구주제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긍정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몰입’은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물론 주위의 도움도 필요하다. 그림자처럼 인생의 동반자가 돼 준 사람은 또 한 명의 주인공이다.
“밤새도록 토론하던 훌륭한 동료 연구원도 빼놓을 수 없다. 존 콕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동료이자 컴퓨터 아키텍처의 대가였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숨기고 소유하기보다는 동료들과 공유해 더욱 발전시키는 멋있는 과학자였다. 그는 또 한 사람의 앨런이고, 나는 또 다른 존 콕이다.”
시련도 있었다. 연구하는 모든 것이 모두 성공하는 것이 아니듯, 끊임없는 시행착오가 오늘의 위대한 과학자, 공학자를 탄생시킨 것이다. 과학자가 가져야 할 뚝심에 대해 그는 “자신의 연구에 대한 열정과 실패를 두려하지 않는 용기”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50년대부터 내가 관여한 모든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1956년 시작된 스트레치 컴퓨터 프로젝트는 5년 동안 100배 빠른 고성능 컴퓨터를 개발하는 것이었지만, 결국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급기야 IBM 회장이 공식 사과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프로젝트는 컴퓨터 성능의 한계를 정의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IBM 창업자 토머스 왓슨은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가 한 말은 ‘성공을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실패를 두 배 빨리 하는 것’이었다”
이 밖에도 시련은 수없이 많았다. “컴파일러를 통한 자동적인 병렬화에 대한 연구를 위해 ‘PTRAN’이란 연구팀을 이끌고 잇었는데, IBM 내에서 저항이 많았다. 많은 다른 팀이 병렬화 자체를 믿지 않았다. 병렬화를 통한 성능향상은 너무 복잡해 폭넓게 적용하기 힘들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지금은 노트북PC를 비롯한 대부분의 PC가 멀티코어를 통해 병렬처리를 이용하고 있다. 나의 연구가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고집과 신념은 경계를 두고 자주 오간다. 자신감에 기인한 확신은 ‘신념’이고 굴하지 않는 전진은 ‘성공’이다. 그가 일흔 여섯 살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현직에서 IT의 대모로 활약하는 것은 그의 꺾이지 않은 신념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에게 한국의 ‘이공계 기피현상’을 이야기하자 고개부터 갸우뚱거렸다. 사회 분위기와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로선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에서는 과학자와 공학자의 업적이 사회적으로 충분히 인정을 못 받는 것 같다. 단지 금전적인 보상 문제가 아니다. 정부·사회·미디어가 좀더 적극적으로 과학 및 공학의 업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음으로 과학자와 공학자의 이미지 문제다. 연구실에서 혼자 밤을 새우며 일하는 외로운 직업으로 청소년의 머릿속에 박혀 있는 것 같다. 오늘날 과학 연구는 인터넷과 그리드 등을 통해서 전 세계 과학자들의 서로 협력하는 시대다. 또 컴퓨터 과학자가 생명공학 분야 과학자와 같이 일하는 통섭(interdisciplinary) 연구의 시대다. 이를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즐거운 과학’ ‘신나는 공학’의 인식이 사회 저변에 깔려야 과학이 발전한다는 사실을 재차 주문했다. 소수의 사람이 향유하는 과학·공학이 아닌 다수가 함께 나누고 즐기는 ‘행복한 작업’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과학과 공학에 대한 가치관이다.
그는 성격상 취미 역시 도전적이다. 짬짬이 극지 여행을 즐긴다는 그는 “수십년 동안 틈만 나면 극지를 탐험했다. 북극을 두번이나 갔다 왔고 티베트의 고원지대와 고비 사막도 경험했다. 극한의 환경에서 식물, 동물, 인간들이 생존하는 것을 보며 많은 지혜를 얻는다. 이는 다른 데서는 얻을 수 없는 큰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과학자는 어려운 문제와 해답을 ‘쉽게 설명한다’는 것임을 그와의 대화에서 다시 확인했다. 그는 2년 전 방한했는데 한국의 ‘미완성’과 ‘여백의 미’를 좋아한다고 했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발전의 여지가 많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여백의 미가 한국이 과학 및 공학강국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웃집 할머니 같은 인상, 그러나 불굴의 카리스마를 온화한 미소에는 배울 점이 가득하다.
뉴욕(미국)= 류경동
IBM 왓슨연구소 연구원·애리조나 주립대 겸임교수·전 재미한인정보과학회장
◆프랜 앨런은 누구
1932년 뉴욕생. 1957년 미시간대 수학과 졸업하고 뉴욕주 조그만 학교의 수학 교사를 지냈다. 그해 IBM의 문을 두드린다. 대학 재학 시절의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서 보수가 많은 직장을 택한 것이다.
컴퓨터 대과학자의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우연이었지만 여성 컴퓨터 과학 연구사를 다시 쓰는 중대한 시발점이 된 순간이었다. 프랜 앨런, 스트레치, 하비스트, IBM360, PTRAN, 블루진 등을 연구한 컴퓨터 과학의 산증인이 되는 첫걸음은 아이러니하게 ‘임시직’이었다.
1989년 IBM 펠로 임원직 임명, 2007년 컴퓨터 과학계의 노벨상인 ‘튜어링상’ 여성 최초 수상 등 그에게는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45년 동안 컴퓨터 과학자로 살아왔고 지금도 연구의 끈을 놓지 않는 ‘70세 할머니 과학자’라는 점이다. IBM은 지난해 그의 이름을 딴 ‘프랜 앨런’ 장학금도 만들었다. 주 업적은 고성능 컴퓨터 최적화 컴파일러 부문. 현재 슈퍼컴 ‘블루진’ 개발에 참가하고 있다.
▲ 튜링상(Turing Award)란?
컴퓨터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상. 컴퓨터 과학계의 노벨상이라는 별칭이 있다. ‘컴퓨터의 아버지’ ‘천재 수학자’로 불리는 앨런 M 튜링을 기념해 ACM(the Associaton for Computing Machinery)이 1966년부터 수여했다. 수상자에게는 10만달러의 상금을 준다.
뉴욕(미국)=류경동 IBM 왓슨연구소 연구원·애리조나주립대 겸임교수, 전 재미한인정보과학회장 kryu@us.ib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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