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이른 더위를 삭이는 비가 그친 지난 22일.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와 거세게 부는 바람 사이로 신설동 서울풍물시장은 26일 정식 개장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에 한창이었다.
12일 동대문 운동장에 있던 동대문 풍물시장이 이곳으로 옮기게 된 지 열흘 남짓. 짧은 시간 동안 정비도 되지 않은 곳을 임시 개장해 말도 많았고 동대문 풍물시장 철거에 반대하는 상인들을 폭력 진압해 탈도 많았다.
상인들의 아픔과 떠남을 뒤로 한 채 옛 숭의여중 터에 자리를 잡은 서울풍물시장은 허전함을 안은 채 안팎으로 어느 정도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었다.
2호선 신설동 역에서 내리자마자 깃발들을 따라 걸으면 황학동 벼룩시장, 동대문풍물시장을 잇는 새 둥지의 깔끔한 외관을 볼 수 있다. 내부에 들어서자 입주한 상인들은 개장을 앞두고 물건을 정비하고, 간간이 들르는 손님들을 맞이하는 등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20년째 상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한 상인은 “황학동 시절부터 같이 장사하던 사람 몇몇이 뿔뿔이 흩어져 마음이 안 좋지만 그래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물건들을 정리했다. 그의 말에서 동대문 풍물시장보다 좁아진 장소가 왠지 휑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짐작됐다.
서울시는 서울풍물시장 조성 목적을 1200만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고 침체한 도심 동북부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라고 밝힌 바 있다. 이곳이 초행인 사람도 둘러보기 편하도록 하기 위한 배려인지 상점을 초록동, 노랑동, 빨강동 등 색깔별로 나누고, 번호를 붙여놨다. 통일된 진열대 속 각자의 사연을 가진 중고물품들이 왠지 모르게 부조화스러워 보인다.
게다가 그 탓에 가게 내부에 진열된 상품을 꼼꼼히 따져보지 않으면, 첫 내부 풍경은 여느 쇼핑센터와 크게 달라보이지는 않는다. 명소로 만들기에는 벼룩시장만의 특색을 못 살린 셈이다.
과거 황학동 벼룩시장을 찾던 이들은 진짜 원하는 물건을 찾기 위해 어느 상점 옆 몇 번째 집 식으로 찾아간 기억이 있을 것이다. 앞으로 서울풍물시장에서 무언가를 구하는 이들은 노랑동 135호, 초록동 41호와 같은 식으로 추억의 장소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두 방식 모두 숫자를 통해 추억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아직은 전자의 기억이 더 애틋하고 따뜻하게 다가온다. 이수운기자 p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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