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기운이 완연하다. 나에게는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아련한 추억을 담은 한 장의 소중한 사진이 있다.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지 얼마 안 돼 우리 집은 큰 화마를 겪었다. 집 안에서 불이 나는 통에 세간살이가 대부분 타버렸는데, 재산이 소실된 피해도 컸지만 그 당시 가지고 있었던 추억의 사진들이 모두 재로 변해 버렸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도 기적적으로 한 장의 사진만이 온전히 남았는데, 내가 돌 무렵 어머니와 찍은 사진이었다.
돌을 갓 지난 시기의 어느 날 집 앞에서 촬영한 사진인데 어머니는 나를 당신의 무릎에 앉힌 채 꼭잡고 있다. 어렸을 때 사진 찍기를 싫어했던 나는 뭐가 못마땅했던지 사진을 찍던 아버지에게 손을 들어 뭐라고 찡얼거리는 모습이 재미있다. 나도 이런 시절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사진 속의 돌쟁이 아이는 귀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집 꼬마하고도 닮은 구석이 있다.
이미 몇 군데에 구겨진 자국도 남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선명함도 떨어졌지만 나는 이후에 이 사진을 마치 내 유년시절의 초상처럼 소중하게 생각해 왔다. 줄곧 사진첩에 고이 간직해 오다가 노트북PC를 갖게 되면서는 스캔파일로 저장해 놓았다.
요즘도 해외출장을 장기간 가 있거나 가족이 그리워질 때면 이 사진을 열어보곤 한다. 숨가쁜 사회생활에서 나 스스로에게 소홀하다는 느낌이 들 때도 이 사진을 열어보게 된다.
누구에게나 유년시절은 소중하고 추억이 많은 순수의 시기다. 나에게는 돌 무렵에 찍은 이 사진 한 장이 나의 유년시절 기억을 간직한 거의 유일한 물건이다. 여기저기 구겨지고 빛바랜 사진이지만 내가 가장 아끼는 애장품이 아닐 수 없다.
stevenk@srslab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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