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가회방부터 명맥을 이어 온 가회동은 서울에서 가장 더디게 변하는 곳 중 하나다. 바로 옆 삼청동 길이 유명세를 탄 후 휴일이면 사람과 차로 붐비는 반면에 이곳은 한가로운 동네 거리와 다름없다.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로 나와 헌법재판소와 재동초등학교를 지나면 가회동길이 펼쳐진다. 길 옆으로 늘어선 소나무들이 서울 시내 여느 길과는 다른 정취를 자아낸다. 이 소나무들은 1999년 당시 종로북촌가꾸기 회장이던 이형술씨가 북촌 일대에 가로수 길을 조성하면서 안면도에서 옮겨와 심은 것이다.
한옥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길 곳곳에는 느리지만 꾸준히 흐르는 삶의 흔적이 배어 있다.
길가 언덕에 고즈넉이 자리 잡은 가회동 성당은 1949년 일제의 종교탄압에서 풀려나면서 명동성당에서 분리돼 세워졌다. 6·25 전쟁 당시 초토화된 것을 53년 재건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성당 쪽 길에 자리잡은 마음치과는 ‘이 해 박는 집’이란 간판도 걸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잇방을 연 최승용이 내 건 간판을 그대로 따 치과의 딱딱한 느낌보다는 친근함을 살렸다.
가회동 길 오른편 한옥 마을 틈에 드러나지 않게 자리 잡은 민화·매듭·종이 등 사립 박물관은 숨가쁜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쉼표 같은 공간이다.
가회박물관은 250점의 민화와 750종류의 부적을 전시하고 있다. 전통한옥 전시실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녹차는 덤이다.
동립매듭박물관은 노리개, 유소 등 매듭을 이용한 전통 공예를 무료로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머리핀, 목걸이 등 전통 매듭을 현대적으로 만든 제품을 판매도 한다.
이 외에 가회동 초입에 자리 잡은 북촌미술관, 가회갤러리등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전시회가 길을 걷다 잠시 쉬며 눈을 풍족하게 해준다. 가회갤러리 옆 카페 북촌은 세련된 외양과는 달리 국수, 단팥죽 등의 메뉴를 준비하고 있다. 참고로 가회동길 대부분의 사립박물관과 갤러리는 일요일에 휴관한다.
야트막한 가회동 언덕길을 끝까지 따라 올라서면 멀리 남산타워와 종로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 있는 갤러리 마노에서 젊은 작가들의 참신한 작품과 차 한 잔을 누리며 가회동길 산책을 마무리하는 것도 멋진 방법이다.
이수운기자 p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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