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기후, 21세기 생존 키워드

‘지구종말시계’라는 것이 있다. 냉전시대에 핵전쟁으로 인한 인류 멸망을 경고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작년에 2분이 당겨져 현재 ‘종말 2분 전’을 가리키고 있다. 핵전쟁이 아닌 기후변화 때문이다.

인류에게 종말론은 생명력이 긴 테마다.

여러 종교서에 종말론이 등장하고, 그것을 맹신하는 사이비 광신도 집단이 저지르는 사고도 종종 일어난다. 종말론과 그 위협은 종교의 범주에 머무르지 않는다.

1798년 맬서스의 ‘인구론’으로부터 ‘다가올 미래의 전지구적 위기’를 강조하는 풍토가 학계에도 자리를 잡았고, 1970년대 한국에서도 인구 증가의 파멸적 결과를 논하며 산아제한 캠페인을 벌인 기억이 생생하다.

동서 냉전이 본격화된 이후에는 핵전쟁의 공포가 종말론적 위협이었다. 1970년대 2차에 걸친 오일쇼크 후에는 석유고갈 위기론이, 중동전쟁 후에는 중동 불안이 미소가 개입하는 세계대전으로 이어진다는 ‘3차대전 종말론’도 등장했다.

1999년이 탈없이 지나가기 전까지 노스트라다무스의 알쏭달쏭한 예언에 신경쓰지 않은 사람이 드물었다.

1980년대 말 불치의 병 에이즈 종말론이 등장했고, 1990년대엔 소행성충돌을 다룬 영화들이 나오더니, 21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기후변화 종말론이 대세다.

종말론적 위협이 세계를 움직이는 추력(driver)임은 사실인 듯하다. 그것은 돈과 권력이 움직이는 방향이다. 과거 핵전쟁 억제를 위해 상호파멸적 보복핵전력을 키운다든지, 스타워즈 계획, 현재진행형인 미사일 방어계획 등은 모두 종말론적 위기감을 자양분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반전단체나 진보진영의 반대를 살 뿐 아니라 ‘적’이 쇠락하면 위기감도 함께 줄어들고 만다.

그러나 기후변화는 온실가스를 배출한 인류 스스로가 ‘적’일 수는 있겠지만, 종말론적 위협을 가하는 진짜 상대는 바로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자연이다.

기후변화에 예민한 유럽에서조차 일부 과학자들은 “기후변화는 이미 과학의 영역을 벗어났다”고 말한다. 기후변화가 허구라거나 비과학적이라는 뜻이 아니고, 비록 과학적 관찰과 예측을 바탕으로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이 기후변화의 원인임을 기정사실화하기에는 이르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시점을 넘어 버렸다는 것이다.

또 종말을 막기에 이미 늦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수밖에”라는 말도 들린다. 기후변화는 과학이 아니라 사회현상, 국제정치현상, 심지어 이데올로기가 돼 버렸다. 과거 매카시즘과 비교할 바는 아니겠지만, 온실가스 감축에는 이견이 허용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서구에서 정치인을 검증할 때 마약, 불륜 등이 중요 이슈였지만, 요즘에는 환경친화적인지까지 따진다. 영국 보수당의 젊은 당수 데이빗 카메론은 자전거를 타고 등원하고, 기후변화의 전도사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앨 고어는 정작 방 14개짜리 저택에서 에너지를 펑펑 써대 구설수에 올랐다. 할리우드 스타들은 고배기량 스포츠카를 소유하고도 마이크 앞에서는 하이브리드카를 탄다고 말한다.

기후변화는 21세기의 신종말론이다. 이 말에 찬성하든 않든, 지구촌 트렌드는 읽어야 한다. 기후변화는 지금 세계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력 중 하나다. 사실 기후변화는 하나의 레토릭일 수도 있고, 종말론적 위협은 사람들을 움직이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다. 수백년 후 돌이켜 보면 거대한 해프닝으로 밝혀질 확률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인류가 변화해야 할 방향은 옳은 것임이 자명하므로, 이 모든 의구심은 기꺼이 묻어둘 수 있다. 우리는 현재 에너지를 지나치게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무한한 신재생에너지를 잡아 쓰려는 노력 대신 수억년 전 생물들이 장기간에 걸쳐 축적해 놓은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으니 인류의 미개함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순식간에 써 버린 탓에 지구 환경까지 바꾸어 버리는 것이 사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화석연료에서 독립하고 삶의 효율을 높이며 인류의 발전을 지속가능하게 하자는 것이 ‘기후변화 위기’의 기치를 높이 드는 본심이다.

<브라이튼(영국)=박상욱 박사. 영국 서섹스대 과학기술정책연구단위(SPRU)Sangwook.Park@sussex.ac.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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