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100달러 시대에 살면서 석유가 없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지 상상해본다. 미국 지질물리학자 킹 후버트가 개발한 모형인 ‘후버트 정점(Hubbert Peak)’에서는 2004∼2008년에 세계 원유생산이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2006년 기준의 석유 가채연수(확인 매장량과 현재 연간 생산량 비율)도 40.5년(BP 통계, 2007년)에 불과한 상태다.
만일 현재 우리나라의 5∼12% 수준인 중국과 인도의 1인당 석유소비가 우리나라와 같은 수준까지 높아진다면, 위에서 언급한 가채연수는 12.3년으로 급격히 감소한다. 극단적인 가채연수 가정이 아니더라도 국제에너지기구(IEA) 보고서는 중국과 인도의 석유수요 증가 속도를 2030년까지 연평균 3.7%로 추정해 세계 원유 수요증가의 42%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대규모 신규 유전이 계속해서 발견되지 않는 한 석유 자원은 시간이 지나며 고갈돼갈 것이 뻔하다.
◇수소 경제의 도래는 필연적=그렇다고 석유시대의 종언이 바로 수소경제의 도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탄화수소의 대표격인 석유는 가스, 석탄과 대체관계에 있다. 가스와 석탄자원이 함께 고갈되지 않는 한 탄화수소경제는 지속될 수도 있다. 또 생물공학적 연료생산과 공급원료(feed stock)에 기반한 생물화학산업도 기술의 진보에 따라 경쟁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현재의 석유화학산업과 수송용 내연기관 연료의 대체 수단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석탄의 액화나 바이오연료는 나름대로 환경문제를 안고 있다. 이에 따라 대부분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에 대응하면서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에너지로 ‘수소’를 꼽고 있다. 필자가 1990년대 초 UN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ESCAP)의 에너지정책자문관 재직시절, 수송부문을 완전히 없애지 않는 한 전 세계적으로 CO 배출을 안정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연구결과를 얻은 바 있다. 다만 소재를 생산하는 석유화학산업은 생물화학산업으로 대체될 수 있다.
◇기술적 난제 산적=우선 여러 가지 수소 생산방법 중 현재로선 생산비용이 가장 저렴한 제조방법은 화석연료에서 수소를 추출하는 것이다. 때문에 사회적으로 ‘검은 수소’라는 비난도 있다.
다른 국가들도 이런 기술상 장애 요인과 높은 수소 생산비용이라는 경제적 측면을 고려해 아직 수소경제 추진에 본격적인 박차를 가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 ‘검은 수소’는 친환경적인 ‘푸른 수소’로 전환돼 나갈 것이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최근에는 수소를 값싸게 대량 생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으로 950℃ 고온을 활용한 제4세대 원자로(초고온 가스 원자로) 기술이 대안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원자력에 대한 국민적 수용성 해결이 큰 숙제로 남아 있어 가까운 시일 내에 실현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또 연료전지 자동차 상용화에는 현재의 주유소와 같은 수소 스테이션 인프라 구축이 병행돼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기존 주유소보다 6배 이상 높은 설치비용과 느린 충전속도 등으로 인해 공급 측면의 차질이 우려되기도 한다. 이 역시 관련 기술 개발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선진국 앞다퉈 프로젝트 발표=석유시대 에너지원은 산유국만이 독점했다. 하지만 수소 경제시대에는 에너지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도 우수 기술 확보를 통해 에너지 강국이 될 수도 있다. 선진국들이 앞다퉈 수소 경제시대를 선포하고 기술 개발에 매진하는 이유다.
미국은 1996년 미래수소법 제정 후, 2003년 대통령 연두교서에서 수소 경제를 선언했고, EU도 2003년 청정 수소경제체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후 기술개발과 인프라 구축에 본격적 투자(미국은 2003∼2007년까지 12억달러 투자, 일본은 2012년까지 1조원 이상 투자 등)가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에너지 자립·기후변화 대응·신성장동력 확보 등을 위해 2005년을 수소경제 원년으로 선포하고 다각적인 정책과 기술개발 및 인프라 구축을 발 빠르게 준비해 왔다. 수소연료전지 자동차·가정용 연료전지 모니터링 사업 및 수소 스테이션 설치 등 수소 경제의 도래를 착실히 준비해 나가는 단계다. 다만 아직까지는 수소 에너지의 경제성 확보에 어려움이 있어 민간이 주도적으로 시장을 만들어 나가는 데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정부, 기업, 연구소, 학계와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 기술개발과 상용화·보급 속도 제고를 위해 최선을 다해, 에너지 자립국가의 기반을 다져 나가야 할 것이다.
앞으로 상당기간 석유는 인류문명을 지탱하는 주력 에너지원의 위치를 유지할 것이기 때문에, 석유자원의 확보에 국가적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물분자 간의 수소결합 및 연료전지차 구동 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