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렉콤 이건수 회장(67)은 ‘사람관리학’의 대가다.
깐깐해 보이지만, 마음맞는 사람에게는 속내를 드러내고 진심으로 대한다. 마음을 남한테 드러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속내를 드러내는 화법은 듣는 이에게 마음을 온전히 전달한다. 그게 사람을 변화시킨다. 진실과 열정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을 여러 번 봤다. 그를 통해서 쩡찡훙 등 중국의 핵심 실력자, 베트남 당서기장 등 전현직 관료들이 변했다. 우리나라에서 숱한 정권이 지나는 동안 그는 많은 사람을 만났고, 지금도 만나고 있다.
‘사람관리학자’를 만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인터뷰를 하겠다고 약속을 한 후 며칠이 늦어졌다. 베트남 정보통신부 장관 방문이 겹쳐 틈이 나지 않았다.
#10억 짜리 회사 누적 매출 1조로 키워
동아일렉콤 서울사무소가 있는 대우재단빌딩에서 지난 금요일 오후 그를 만났다. 약속시간이 30분 가량 지나서였다. 소일거리로 월간지를 뒤적이고 있는데, 그는 휴대폰을 귀에 대고 나타났다. 그는 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이경숙 위원장 자문위원이 되면서 더욱 바빠졌다. 기자가 알기로 그는 인수위에서 오는 길이었다. 회의가 길어졌다고 했다. 자리에 앉으며, 앨범을 꺼내놨다. 구리에 있는 동아전기 건물사진과 공장 침수현장 등이 담긴 동아일렉콤 역사가 담겨 있다. 딱딱한 공식 행사사진들이지만, 모아놓으니 어떤 프레젠테이션보다 훌륭한 자료집이 된다. 그 속에는 세계 각국 정치인들과 정부관료들이 있었다. 신혼집 집들이 가서 깨소금 나는 앨범을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이 앨범에 동아일렉콤이 담겨 있어. 10억원짜리 회사를 누적매출 1조원이 넘는 회사로까지 키운 게 담겨 있지. 다른 것보다 외국에서 손님오면 이 앨범을 보여줘요. 그 사람들이 앨범 보고 나면 회사를 믿어. 다 그랬어.”
그의 회사는 ‘알짜배기’로 유명하다. 직원의 연간 상여금만도 1300%다. 그의 회사에 취직한 직원들은 내집 마련 기간이 5년 남짓하다. 동아일렉콤은 용인 양지면에 있다. 일단 회사에서 1300% 보너스와 다달이 나오는 월급이 종잣돈이 된다. 목돈이 마련되면 이 돈과 회사 보증으로 대출을 받는다. 집을 산 뒤 보너스와 월급으로 차근차근 갚아 나간다. 집이 생긴 직원은 이직할 생각이 없다. 당연히 생산성이 높아진다.
“공장 반장을 불러 돈 얼마 있냐고 물었더니 450만원있다고 하더라구. 그래서 ‘너 집 사라’고 했더니 미친놈 쳐다보듯 하는 거야. 오래전 방 세개 짜리가 용인에서 3000만원이었지. 내가 회사 복지기금을 한 40억원 냈거든. 5년 근무했으니 복지기금에서 1000만원 꾸고, 회사가 보증해줄테니 은행에서 1500만원 꾸고. 그러면 대충 집값되지?”
그 반장은 집을 그렇게 샀다. 집들이에서 그는 소주를 마셨다. 집들이를 통해 5년 만에 집을 산다는 것은 동아일렉콤 직원에게 현실이 됐다. 직원들은 집을 사서 좋았고, 이건수 회장은 직원들을 오래 데리고 있을 수 있어서 좋았다.
#정직 하나로 오늘의 사업 일궈
그가 과거로 들어갔다. 질문이 없어도 되는 인터뷰의 연속이다.
“중국에서 태어난거 알잖아. 중국 유모 젖을 먹고 자랐고. 해방돼서 신의주에 오니 공산당이 등장한거야. 새벽 3시에 개구멍으로 도망나왔어. 한살 터울 동생이 있는데 얼어 죽었어. 내 동생을 포대기에 둘둘 싸서 자전거 뒤에 싣고 갔어. 어렸을 때인데.”
그의 눈가가 젖어들었다. 대학에서 ROTC를 했다. 2기다. 혹독한 군사훈련은 그를 사람으로 만들었고, 국가관을 만들고,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미국에 갔다. 100달러와 가발 100개를 들고. 그게 사업의 시작이었다. 사업은 쉽지 않았고, 영어는 어려웠다. 말로 잘 설득이 안되자 다른 방법을 찾았다. 대신 행동으로 진실을 보여주기로 했다. 정직이 유일한 ‘크레디트’였다.
#20년 동안 개인 세금만 144억원 납부하기도
그는 참여정부때 수 차례 조사를 받았다.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주주명부에만 있는 체어맨이었다. 최근까지 동아일렉콤에서 공식적 직함은 없었다. 그동안 1300억원에 육박하던 매출은 반토막이 났다. 그가 서류를 내밀었다. CEO의 근로소득과 조세납부현황이 적힌 국세청 공식자료였다. 그는 86년부터 20년 동안 개인세금을 144억원이나 냈다. 같은 기간 법인세는 660억원을 냈다. 그사이 동아일렉콤은 861억원을 들여 1594개의 제품을 개발했다. 현재 전 세계 31개국에 수출하고 있는 전전자교환기(TDX) 전원, 유무선 ISDN 통합교환기 전원, WCDMA·와이브로·HSDPA용 전원 등이 그것이다. 이 전원기술은 국내 8000만 회선의 유무선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에도 큰 공헌을 했다.
그는 국산 전원기술 개발과 부품 국산화 공로를 인정받아 91년에 동탑산업훈장을, 99년에 은탑산업훈장을 각각 수상했다. 동아일렉콤은 처음 정류기 개발당시 3%에 불과하던 부품 국산화율을 80%대까지 끌어올렸다.
그에 대한 루머는 많다. 그의 국적부터 정치권 연루설까지. 그의 국적은 대한민국이다. 돈을 버는 한국에 세금을 내기 위해 96년에 국적을 변경했다. 그는 89년부터 2007년 12월 31일 현재까지 총 128억원의 기부를 했다. 그 중 9억원을 과거 합법적으로 정치후원금을 낼 때, 야당에만 냈다. 여당은 많은 사람들이 지원하니, 적지만 야당만 지원한다는 그의 독특한 정치철학이다.
#100차선 IT인프라 구축해야
새 정부가 IT와 관련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물었다.
“새 정부 기업 마인드는 좋아. 부품산업과 인프라를 적극 육성하겠다고 했어.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통신 인프라 구축이지. 고속도로와 같아. 한번 깔아놓으면 주변에 주택이 생기고 도시가 생기고, 산업지구가 생겨나지. 그게 인프라 효과거든. 새로운 시대에 대비해 8차선 경부고속도로를 확장해야 하고, 대운하를 놓아야 하는 것처럼 지금 100차선의 IT네트워크를 놓아야 해.”
참여정부에서는 지난 5년 동안 통신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은 게 사실이다. 통신사업자 마저 주변 e비즈니스로 매달리려고 하는 현상이 일어났으니.
“통신회사에서 CEO들은 오너가 아니라 전문경영인이야. 그러다보니 수익을 올려야 하고, 임기보장도 받아야하니 투자하기가 어려워. 미국 통신사업자와 영국 BT가 그렇게 망했어. 연구개발에 투자하면 주주한테 욕먹거든.”
그는 100차선이 넘는 IT인프라 구축을 요구했다. 막힌 것, 기술과 정책 규제를 풀어 100차선이 넘는 세계 최고의 정보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되면 산업이 살아날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장기적인 정책방향을 잡아주고, 기업이 밀어붙이면 된다고 했다. ‘통신 하이웨이를 깔고 그곳에 마켓을 만드는 게’ 일이었다.
#뒷 얘기
그는 요즘 차세대 하이브리드카와 태양광 발전사업을 준비 중이다. 지난 5년 동안 이 분야를 준비해왔다. 동아일렉콤은 에너지 절약회사다. 자동차도 75%가 전자기기인 만큼 그 기기에 가장 전기를 작게 쓰게 하는 것이 동아일렉콤의 목표다. 이 분야는 미국정부도 핵심사업으로 꼽고 있고, 부시 대통령도 수시로 이 분야 기업들을 방문해 핵심기술 개발을 독려하고 있다.
일본 다케나카 헤이조 게이오대학 교수 이야기를 했다. 일본 고이즈미 정부의 개혁 사령탑을 했던 사람이다.
“월드컵 때 명함주니까 NTT도코모에 통신용 전원을 판 회사가 아니냐고 물어보는 거야. 나도 놀랬지. 장관이 자기 나라에 들어오는 통신시스템 핵심장비를 납품한 사람을 기억한다는 게 쉽지 않지. 나중에 경제부처 장관, 총무성 장관 등을 한 사람이지. 우리나라 장관님들도 이 정도 였으면 좋겠어.”
그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대를 했다. ‘규제를 풀고 기업이 할 수 있는 좋은 것을 한다는 점이 좋다’고 했다. 대신 요구도 분명했다. 돈을 달라는게 아니라 규제를 풀어서 시장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필요한 것은 돈이나 음식이 아니고, 일할 수 있는 시장을 주는게 가장 좋다”고 했다. CDMA와 와이브로, 초고속인터넷이 그랬다.
“말로만 하는 정책말고, 생산라인과 연구소 현장을 찾아와서 격려를 해주는 정부였으면 좋겠다.”
세시간이 넘어서자, 그가 한마디 했다.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아?” 충분했다.
◇이건수 회장은
이건수 동아일렉콤 회장은 42년생으로 경희대 정외과와 연세대 산업대학원, 고려대 언론대학원을 마쳤다. 패어레이 디킨슨(Fairleigh Dickinson) 대학에서 명예인문학 박사를, 경희대에서 명예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그가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 초·중반이다. 정부가 진행하는 통신시스템 개발 사업에 뛰어들면서, 국가 통신망 확충사업에 큰 기여를 했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정부의 핵심 실세와 돈독한 친분관계를 쌓았다. 오명 전 과학기술부총리, 양승택 전 정보통신부 장관 등 대한민국 정보통신을 이끈 사람들과도 매우 가깝다. 한번 맺은 인연을 끌고 나가는 ‘사람경영’이 탁월하다. 대통령 특사로 나설 만큼 국내외에 인적네트워크가 풍부하다는 게 장점. 최근에는 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인수위원장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김상룡기자@전자신문, sr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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