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정보서비스(GIS)의 전도사.’ 윤재준 선도소프트 사장(63)의 닉네임이다. 현재 GIS 개념이 기업 혹은 공공기관에 널리 확산, 활용되고 있지만 윤 사장이 우리나라에 GIS를 처음 소개할 88년 당시에는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조차 너무나 생소한 선진 정보기술(IT)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황무지와 다를 바 없던 GIS 분야를 개척한 프런티어 윤재준 사장을 디지털 가산단지 내 월드메르디앙벤터센터(2차) 본사에서 만났다. 선도소프트가 오늘날 GIS 분야의 선두주자로 발돋움하기까지 윤 사장의 기업 역정과 뒷 이야기를 소개한다.
◇다채로운 학력 뒤엔 짙게 배인 배고픔이…
1965년 3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과 졸업. 1974년 8월 미 마퀘트대학 기계공학과 석사. 1976년 8월 미 스탠포드대학 산업공학과 석사. 윤재준 사장의 학력이다. 그는 10여년 넘게 기계공학도로서 걸어온 외길을 한 순간에 훌훌 털어버리고 산업공학으로 방향을 180도 바꿨다.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윤 사장의 이러한 배경엔 민초의 고단함과 꿈이 있었다.
윤 사장은 전라남도 서남 해안가에 위치한 강진에서 3남 1녀 중 차남으로 1944년 태어났다. 어린 시절 주변엔 농부와 공무원만 있을 뿐 그가 사업가로서 꿈을 키울 환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중학교때부터 ‘내가 어른이 되면 반드시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가졌다고 한다. 재벌 기업의 총수들을 보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길은 사업뿐이란 생각을 가졌다. 그런 그가 아시아권 GIS 분야 기업 중 선두를 달리는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60년대 최고의 꿈은 취업이었습니다. 직장을 갖는 게 그야말로 최고 출세로 여겨질 때였습니다. 그래서 최고 대학, 인기학과에 입학하는 것이 학생과 부모들의 한결같은 바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취업률이 높은 기계공학과를 선택했습니다. 당시 의대는 기계공학보다 인기가 떨어졌습니다.”
◇기계 공학도의 길을 벗어나다
윤 사장은 서울 공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후 1970년 한국과학기술원에 입학, 연구원 생활을 2년간 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적성이 아닌 취업을 전제로 학과를 선택한 탓에 그는 기계공학에 대한 흥미를 크게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윤 사장은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전산 교육을 받으면서 컴퓨터에 매력을 느끼고 빠져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5년간의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컴퓨터에 대한 집착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미국 마퀘트대학에서 기계공학 석사를 마친 그는 1976년 전공을 과감히 버렸다. 그는 “향후 디지털 세상이 도래한다는 판단을 했고 그래서 컴퓨터 분야로 진로를 바꾸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계공학도인 그를 미국 대학의 컴퓨터 관련 관계자들은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가슴이 너무나 답답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못하니…” 그래서 그는 컴퓨터 분야 진출 방안을 모색했고 미국 스탠포드대학 산업공학과에 들어갔다. 이후 미국 IBM의 경쟁 기업인 암달(Amdahl)에 취직한 그는 비로서 어깨 너머로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진정한 나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1976∼1983년 8년 동안 미국 암달의 시스템 분석전문가, 미국 카이저엔지니어링의 SW 기술자, 미국 시스템즈콘트롤의 시스템 분석전문가 등으로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는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윤 사장 본인의 전문성과 경쟁력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됐다는 것이다. 그 내면엔 어릴적 부터 가슴에 품어온 꿈인 ‘사업가’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고민 끝에 윤 사장은 순수한 컴퓨터 과학보다는 그의 전공인 기계공학을 접목한 분야가 더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동시에 사업을 하기로 하고 컴퓨터와 기계공학을 접목한 CAD·CAM이란 사업 아이템을 찾아냈다. 그가 선택한 제품은 오토데스크의 CAD·CAM이었다. 지금은 오토데스크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당시 오토데스크는 고작 18명이 근무하는 작은 벤처기업이었다.
1984년 한국에서 ‘Tarsan Systm’이란 회사를 창업한 그는 사업가로서 쓰라린 실패를 경험한다. CAD·CAM이 워낙 신기술인 탓에 우리나라에서 수요가 없었을 뿐더러 사용할 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윤 사장은 “CAD·CAM 시장이 아주 초기여서 사업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빚더미에 앉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금성사 창원공장에서 CAD·CAM 75대를 주문했다. 어마어마한 구매 물량이었지만 자금력이 달려 오토데스크의 공급권을 다른 기업에 넘길 수 밖에 없었다 한다.
◇버릴 수 없었던 사업가의 꿈
그는 40대 중반에 제 2의 창업에 나섰다. 1987년 캐드랜드란 상호로 CAD·CAM 대리점 사업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신기술 GIS 사업에 염두를 뒀다.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할 당시 샌프란시스코에 소재한 전력 회사인 PGNE가 전력 시설물 관리에 GIS를 활용하는 것을 보고 사업 아이템으로 점찍었기 때문이다. 그는 “CAD·CAM이 국내에 점차 알려지면서 이를 캐시카우 품목으로 삼고 GIS를 성장동력으로 삼는다는 경영 전략을 세웠다”고 말했다.
그는 GIS 시장 조사에 착수했다. GIS 공급업체는 인터그라프·시너컴·컨스버그 등이었다. 시너컴은 쌍용정보통신이 취급하고 있었고 인터그라프는 한국 지사를 설립 중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컨스버그 제품을 국내에 공급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컨스버그 마케팅 활동을 하던 중 뜻밖의 정보를 입수했다. 한 후배가 기술력이 탁월한 ESRI를 검토해보라고 귀띔 해준 것이다. 곧바로 미국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ESRI 잭 데이저먼드 사장과 파트너로 일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SDS·LG소프트·쌍용정보통신·현대전자 등 국내 기업이 ESRI 측에 파트너 제안을 해 놓은 상태에서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윤 사장은 “대기업을 제치고 작은 중소기업이 공급권을 확보한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한국 GIS 전도사로 변신
그는 선도소프트를 설립, 88년부터 GIS 시장 개척에 나섰다. 1984년 CAD·CAM사업을 시작할 때 처럼 GIS 사업은 녹록하지 않았다. GIS 시장 역시 초창기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GIS가 활성화되기 위해선 지리 데이터베이스, 응용 SW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 GIS 제품만으로 GIS 시장이 활성화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윤 사장은 “직원을 모집, GIS 교육을 시키면 GIS 사업을 추진하려는 대기업에 빼앗기곤 했다”며 “인력난과 자금난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GIS 인력이 대기업으로 자주 이직하다 보니 선도소프트가 ‘GIS 사관학교’란 말까지 나 돌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GIS 사업을 한 이후 99년까지 10년 넘게 자금으로 고생했다”며 “하지만 2000년 이후 조금씩 기업이 안정화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95년부터 지리DB 구축 사업(NGIS)을 진행하면서 GIS산업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재 GIS를 도입한 사이트는 1600여곳. 사용자는 9000여명에 달한다. 1989년 국토연구원이 GIS를 처음 도입한 이후 20년 만에 GIS는 시설물관리, 자원환경 관리, 토지 및 지적 관리, 공중보건, 교통물류 등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선도소프트는 올해 창업 20년을 맞았습니다. GIS 전문기업 입장에서 20년은 짧지 않은 시간입니다. 하지만 선도소프트는 지금부터 시작이란 생각이 듭니다. GIS 시장이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매출성장률을 50% 이상 높게 잡았습니다. GIS 응용기술을 바탕으로 내년엔 중국·베트남 등 해외 시장에도 본격 진출할 계획입니다. 세계를 대상으로 한 사업가가 될 것입니다.
▶윤재준 사장은
윤재준 사장은 1960년 전남 광주고를 졸업하고 1965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그 후 한국과학기술원에서 2년간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1974년 미국 마퀘트대학에서 기계공학과 석사까지 마친 윤 사장은 컴퓨터사이언스에 매력을 느끼고 전공을 변경, 스탠포드 대학 산업공학과에 입학했다. 유년 시절부터 사업가 꿈을 가졌던 그는 미국 암달에서 시스템 분석전문가로 활동하면서 선진 정보기술(IT)을 직접 경험했다.
그는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CAD·CAM, GIS 등 다양한 선진 정보기술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했다. 사업 초기에 실패를 겪기도 했지만 그는 1988년 선도소프트를 설립, 20년째 GIS만을 고집하고 있다. 그는 선도소프트를 지난해 매출 420억원, 인력 320명 규모의 탄탄한 회사로 키웠다.
안수민기자@전자신문, s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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