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지배하면서 나에게 의무를 부과하고 내가 받을 수 있는 권리와 정해진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가 두 개 이상 있어서 내가 원하는 때 언제든지 바꿀 수는 없을까.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여러 현상을 연구하다가 해낸 공상이다.
‘IT의 발전으로 인해 다양한 기술의 디지털 융합이 이뤄지면 미래의 경제 생태계는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할까’ ‘인터넷의 폭발적인 이용확장으로 지식권력이 소수의 전문가 그룹에서 다수의 아마추어로 이동하면’ ‘문화시장이 생산자에서 수용자 위주로 바뀐다면’ 등 여러 분야의 변화를 예측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준비하는 것이 미래연구의 목적이다. 이러한 미래연구의 한 분야로 정부의 변화모습을 전자정부 고도화 차원에서 그려 보고 가상정부라는 개념으로 소개한 적이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선거를 통해서 일정 기간 동안 정부를 대표하는 대통령을 뽑는다. 임기가 끝나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새로운 대표자를 선거로 선출한다. 정해진 기간 선거로 구성된 정부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익숙해진 정치제도요, 정부의 모습이다.
자본주의와 시장원리에 의해 우리는 주어진 한도 내에서 우리에게 최고의 만족을 제공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선택해 소비한다. 정부 서비스 또는 정부 그 자체는 이러한 방법으로 선택돼 사용될 수 없을까 하는 것이 질문의 요점이다. 지방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감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가족의 생활조건 및 주거환경, 이사비용 등 적지 않은 거래비용이 발생할 것이다. 이주함으로써 얻는 만족의 크기가 발생하는 거래비용보다 크다면 이주할 것이고 이는 정부를 원하는 때 바꾸는 것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중앙정부도 이러한 선택, 즉 다음 선거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지금 당장에 ‘나의 정부’를 바꾸는 방법은 없을까. 지금처럼 정당이 대통령 후보를 내고 선거일에 국민의 선택을 받는 것이 아니고 아예 각 정당이 각각 정부를 구성한다. 국민은 대통령 선거 대신에 자기가 원하는 정부를 선택하고 거기에 세금납부 등 자기의 의무를 다하고 또 권리를 주장한다. 다수의 정부는 더 많은 고객(국민)을 붙잡기 위해 서로 경쟁한다. 국민은 한 번 선택한 정부가 싫증나면 다른 정부로 이동한다.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이러한 정치제도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제도적인 문제는 정치학 이론이 설명할 수 있을 것이고 두 개 이상의 정부를 운영하는 데 따른 거래비용 등 비효율성 문제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분석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IT가 발전하고 웹2.0으로 대표되는 인터넷의 새로운 이용이 거래비용 문제를 해결한다면 이러한 날도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그 단초가 가상정부 이야기에서 가능하다. 가상정부는 ‘IT 발전에 따라 정보공유와 시스템 연계가 자유로워지면서 다양한 조직의 연관업무가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필요에 따라 통합됨으로써 조직 간의 경계가 무의미해지는 상태’에 출현이 가능하다. 이런 상태에 이르면 정부의 모습이 어떻게 변할까. 지금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정부의 모습과 기능은 사라지고 완전히 다른 모습의 정부를 보게 될 것이다.
현실의 정부는 하나지만 국민은 ‘나의 정부’를 웹상에서 구축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대리인이 나타나 현실 정부의 여러 가지 기능과 서비스를 다양하게 묶고 원하는 국민에게 정부의 역할을 대신할 수도 있다. 국민은 다수의 대리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정부를 선택하는 효과를 누린다. 이런 현상이 IT가 발전하고 현재의 인터넷 이용이 고급화되면서 일반화할 날이 멀지 않았다. 이러한 제도가 더욱 발전하면 정치제도·경제적 문제가 해결됨으로써 정말로 두 개 이상의 정부가 구성돼 정부는 경쟁하고 국민은 선택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정국환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미래전략연구실장 khjeong@kis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