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대선후보와 M&A

 아마 IMF 이후부터였을 것이다. 기업 인수합병(M&A)이 우리 경제계의 화두가 된 것은. 내로라하는 우리나라 기업이 보도 듣도 못한 해외기업에 줄줄이 M&A당했다. 수십년을 키워온 기업의 주인이 하루아침에 파란 눈을 가진 사람으로 바뀌었다. 이러다 보니 당시 M&A는 ‘센 놈이 약한 놈을 잡아먹는 먹이사슬’쯤으로 이해됐다.

 어느 약 광고가 생각난다. 알약 하나로 세 가지 기생충을 한꺼번에 박멸한다는 광고였다. 가장 작은 기생충이 약을 먹으면 다음 놈이 이 기생충을 잡아먹고 가장 큰 놈이 또 그놈을 집어삼키는 그림이었다. 기생충을 한꺼번에 없애는 약의 효능을 정말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광고였다. 우리의 M&A 정서와 너무나 딱 맞아떨어진다.

 우리 국민이 M&A라 하면 반감부터 갖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M&A가 원래의 기능이나 효과와 달리 살벌한 정글의 법칙으로 먼저 다가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M&A를 부정적으로 보게 되는 이유는 가슴 아픈 IMF의 기억 때문만은 아니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대선이나 총선 때마다 어김없이 반복되는 후보 단일화와 이합집산, 즉 정치인 간 M&A 때문이다.

 유권자는 이제 후보 단일화와 이합집산에 신물이 날 지경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려 느끼는 당혹감은 아무것도 아니다. 정책이나 신념이 서로 다른 후보들이 단일화되는 경우도 많다. 지역구를 얻기 위해 정견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치고 당을 옮기는 철새 정치인도 허다하다. 이때 느끼는 배반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아이러니하게도 후보 단일화와 이합집산은 M&A 효과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국민이 그토록 싫어하지만 선거철마다 되풀이되는 것은 다 이 때문이다. 과거 김대중 후보와 김영삼 후보는 국민의 열망을 무시한 채 후보 단일화(M&A)에 실패, 노태우 후보에게 대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이후 김영삼 야당 총재는 당시 여당과 당 대 당 M&A로 다음 정권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하이라이트는 노무현 현 대통령이었다. 이회창 후보에 비해 열세였지만 정몽준씨와의 M&A 카드로 대세를 일거에 뒤집었다. 이번 대선에서는 그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대선 후보가 무려 열두 명이나 즐비하니 오죽하겠는가. 이미 심대평 국민중심당 후보는 무소속 이회창 후보와 M&A를 단행했다. 절대 단일화를 안 하겠다던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도 정동영 통합신당 후보에게 M&A를 공개적으로 제의했다. 이에 질세라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정몽준 의원을 M&A했다.

 앨빈 토플러는 저서 ‘부의 미래’에서 속도가 부를 결정한다고 주창했다. 이 세계가 속도의 경쟁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쟁의 최일선에 있는 기업은 죽어라 100마일 속도로 달린다고 했다. 반면에 후방의 정계와 정부는 30마일의 속도밖에 못 낸다고 했다. 누구나 인정하는 지적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M&A에서만큼은 그 반대다. 정계의 M&A 실력과 속도는 국내 최고다. 이에 비해 기업의 M&A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M&A만큼 선거전에서 승리를 거두는 데에 효과적인 수단이 없다는 것은 정계에서 익히 증명됐다. 마찬가지로 기업 간 M&A도 시장경쟁에서 이기는 데 가장 효율적인 수단일 것이다. 짧은 시간 내에 더 많은 지지율(시장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다. 경쟁에서 기선을 제압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세를 굳힐 수 있다. 게다가 기업 간 M&A는 유권자(소비자)에게 반감이나 배신감을 주지 않는다. 상품과 서비스는 소비의 대상이지 신념과 철학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이 정치로부터 배울 게 있다면 바로 M&A 의지와 기술이다. 정치인이 주어진 시간 내에 선거에서 승리해야 하듯 기업도 압축성장으로 속도경쟁이 치열한 글로벌 전장에 임해야 한다.

 유성호 디지털산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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