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중반 대기업이 비로소 정보시스템을 활용한 업무 혁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내가 대표로 재직했던 딜로이트컨설팅도 선경(현 SK)·삼미 등에 정보시스템 전략계획 수립 프로젝트를 ‘4 Front’ 방법론을 적용해 수행했다. 이때 한국 컨설턴트가 본사 인력과 함께 일하면서 체계적인 방법론에 기반한 수준 높은 컨설팅을 경험했다. 이는 자질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됐다.
그러나 딜로이트가 각국 컨설팅사업을 수행하면서 프랜차이즈 형식으로 운영, 여러 문제를 낳았다. 첫째, 국내에 수준 높은 인력이 부족하고 시장 개척에 많은 노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일정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투자가 필요했지만 본사에선 투자에 냉담했다. 이는 한국의 컨설팅 시장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둘째, 대기업은 미국 경험 있는 컨설턴트만을 요구했는 데 본사에 요청하면 반응이 없거나 자격 미달인 컨설턴트를 보내 프로젝트 수주는 물론이고 수행도 어려웠다. 또 수주가 안 돼도 출장비·시간당 비용 등 영업 비용을 청구해 비용 부담이 컸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IT컨설팅 서비스산업은 기업· 공공기관 등 모든 경제 단위의 효율성·투명성을 계속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중요한 지식산업이란 신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솔루션 개발, 유능하고 경험 많은 컨설턴트의 양성 등에 막대한 투자가 이뤄져 규모와 전문성을 갖춘 국내 컨설팅기업이 많이 배출돼야 한다.
당시에는 딜로이트컨설팅 한국법인은 물론이고 국내 컨설팅기업도 생존에 급급한 실정이었다. 사정이 이렇자 1996년 딜로이트컨설팅 본사는 철수를 결정했다. 결국 글로벌 회계법인인 언스트영의 멤버펌인 영화회계법인이 지분 100%를 인수해 언스트영컨설팅코리아로 새로이 출범했다.
이때 삼일회계법인도 IT서비스 컨설팅사업을 거의 중단했다. 다만 세계적으로 재정적으로 한 회사 형태를 유지하던 앤더슨컨설팅은 사업을 유지하고 있었고 PwC컨설팅이 새로이 뛰어들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국내 최초로 ‘SAP’ ERP를 적용, 업무 혁신 및 정보시스템에 대규모 투자를 시작했다. 당시 SAP 컨설턴트는 국내에 전무했다. 외국 SAP 컨설턴트를 고용해 국내 컨설턴트와 같이 프로젝트를 수행했는 데 이것이 컨설팅업계가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삼성전자 SAP 프로젝트를 시발점으로 삼성·LG 등 그룹사에 SAP가 많이 도입되었다. 이 외에도 포스코 등이 도입한 오라클 ERP와 SCM·CRM 등이 경쟁적으로 소개돼 대기업이 선진국의 솔루션을 적용, 내부 업무 프로세스 혁신에 투자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컨설팅업계의 발전을 가져온 또 하나의 계기는 IMF 경제 위기다. 국내 대기업이 양적 성장에서 질적인 업무 효율성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이에따라 글로벌 컨설팅사나 솔루션사에서 요구 사항에 적합한 글로벌 베스트 프랙티스와 스탠더드를 찾게 됐다.
그 때까지도 국내에는 이를 구현할 전문인력이 전무한 상황인 터라 앤더슨컨설팅·언스트영·PwC 같은 글로벌 컨설팅사의 컨설턴트를 초빙, 국내 컨설턴트가 배워가며 프로젝트를 했다. 이 과정에서 국내 컨설팅업계는 프로젝트 기간이 늘어나면서 해외 인력 초빙 비용을 과다하게 부담한 데다 경험 미숙으로 프로젝트에 실패하는 등의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이 같이 IMF 이후 한국기업도 경영 투명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원가절감·업무 관리수준 향상·관리수준 향상·생산성 향상 등에 힘쓰게 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 할 수 있다. IT컨설팅업계도 외국 제휴사와의 협력으로 선진 기법 도입에 적극 나서 한국기업의 경영 혁신을 선도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khchang@frontier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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