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정보기술(IT) 산업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의견이 올 초부터 화제였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샌드위치론, 한국은행의 보고서 등이 설득력을 갖고 많은 IT인들을 고민에 빠지게 했다. 과연 IT는 지나간 산업이고 앞으로는 비전을 찾지 못하는 것일까.
본지가 주관하는 정보통신미래모임(회장 정태명 성균관대 교수)은 지난 21일 저녁 서울 논현동 브이소사이어티에서 ‘IT·BT의 현황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11월 정기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에는 회장인 정태명 교수, 오재철 아이온 커뮤니케이션즈 대표, 박계현 LGCNS 부사장, 이상은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단장, 본지 양승욱 편집국장 등 30명 가량의 IT 관련 업계 인사들이 참가해 의견을 나눴다.
발표자로 나선 이지형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IT기술전략연구단 공정경쟁연구팀장은 “앞으로는 IT 등의 개별 분야 기술보다 융합 기술 개발에 중심을 둬야 한다”며 “각 기술 분야에서 마음을 열고 전략을 짜고 연구개발을 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IT 서비스 등으로의 관심 전환=IT 산업의 위기론이 대두한 것은 하나의 산업으로서의 IT가 겉보기로는 정체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지형 팀장은 “그동안 산업 기반으로서 IT를 강조해 신산업 창출을 향해 뛰었다면, 앞으로는 수단으로서의 IT, 즉 타 산업 분야의 프로세스를 효율화하는 방법에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방송통신융합 등 컨버전스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왔지만, 이는 IT산업 내에서의 융합이다. 앞으로는 조선업, 자동차업, 보건의료 산업 등과 만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이종산업 간의 통융합을 위한 IT 서비스 등이 연구개발(R&D)의 중심에 서야한다.
조상섭 호서대학교 디지털비즈니스학부 교수는 “IT R&D가 제조 분야 등 겉으로 드러나는 분야에 집중한 나머지 IT 서비스 분야 등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고 진단했다.
◇SW 투자에 대한 인식 변화=바이오기술(BT), 나노기술(NT) 등이 잘 성장하려면 IT 부분의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참석자 대부분이 공감했다. 박능수 건국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IT가 기반으로서 잘 보이지 않는 분야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인프라(설비) 차원이 아닌 산업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소프트웨어(SW) 같은 곳에 신경을 써야한다는 것이다.
산업 현장에서 고민하는 것이 바로 훌륭한 SW를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이며, SW 공급 역량이 결국 국가의 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이다. 박계현 부사장은 “SW 분야에 깊게 들어가서 연구개발을 해야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은 단장도 “자동차, 비행기 등의 타 산업에서도 SW 비중이 연구개발의 80%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안다”며 “IT SW에 대한 투자를 고려한 융합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SW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려면 우선 연구개발 투자에 대한 시각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고가의 하드웨어(HW) 구입비는 재정 감사시 문제가 없지만, SW 개발 용역비는 많이 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또 같은 SW의 성능 개선 등도 업적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풍토가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태명 회장은 “SW 개발 인력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없는 한 SW산업 발전은 어렵다”며 “인건비 부분과 알고리듬의 업그레이드 등도 인정해줘야 SW R&D가 제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글로벌 인재 수혈 필요=타 산업과의 융합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인재 수급 부분에서도 변화가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제호 성균관대학교 의대 교수는 “바이오 산업(BT)처럼 우리나라의 경력이 일천한 분야에서는 국외의 인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BT 분야의 경우, 다국적 기업들이 많은 해외의 협력사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외를 서로 연결해줄 인재가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오재철 아이온커뮤니케이션즈 사장은 “우리가 향후의 통융합 기술을 기획할 때, 이러한 기획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연구자와 개발자 등이 국내에 충분히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며 “해외 인재를 데려올 수 있는 등의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김규태기자@전자신문, star@
<주제발표: 이지형 한국전자통신연구원 IT기술전략연구단 공정경쟁연구팀장>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의 발표와 한국은행의 보고서, IBM의 보고서 등 IT위기론이 올해 초부터 확산됐다. 모두다 근거가 있고, 수긍이 가는 얘기다.
각종 보고서에서는 △부품소재산업의 발달 미흡 등 구조적 취약성 △경제 전반의 낮은 IT 활용도 △생산고용소득 창출원으로서의 IT 역할의 저하 △주력 IT 제품의 경쟁력 약화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그렇지만, 과연 이 같은 지적이 IT 분야에만 해당되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고용률을 보면 어떤 하이테크 산업도 건축이나 조선 등에 비교하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하이테크 산업을 버리고 전통산업으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IT 산업의 성장세가 다소 둔화한 것을 사실이지만 여전히 IT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과 전망은 높다.
앞으로는 IT가 모든 부분에 소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래 사회는 이른바 ‘u소사이어티’가 될 것이다. u소사이어티는 u헬스, u홈, u의료, u농촌 등을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 IT가 타 기술에 융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IT가 다른 산업으로 흡수돼,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될 것이다.
이 같은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융합 기술 개발 전략을 세우고 집행해야 한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도 한국의 미래는 IT·BT에 달려있고, 융합기술을 바탕으로 신산업·신시장 창출이 핵심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창조적인 개발을 위한 학제적인 연구, 원천기술 확보, 활용성 강화를 위한 생산성 제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미래소비자의 요구와 미래형 서비스를 고려해볼 때, 미래사회의 먹거리 창출과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융합 기술 개발이 시급한 과제다. 분야별로 자기 분야만 고집하지 말고, 마음을 열고 합심해서 만들어야하는 단계가 오지 않았나 본다. IT 기반이든 다른 분야 기반이든 융합전략을 제시해서 국가적으로 한 방향으로 끌고나갈 수 있어야 한다.
<패널 발표: 조상섭 호서대학교 교수>
발표자가 IT·BT·NT 융합을 IT 입장에서 잘 정리했다. IT 분야가 기반기술로서 작용할 것으로 본다. 보건의료 부분만 보더라도 IT 기반으로 BT와 NT가 융합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을 것으로 본다. IT의 성장세 둔화에 대해서 너무 비관적으로 보지말고, 긍정적인 역할에 관심을 둬야 한다.
IT 산업만 봤을 때 지난 1995년부터 연평균 12% 성장했다. IT R&D가 IT성장의 23%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핀란드 다음으로 빠르게 성장한 것이고 R&D의 기여가 높은 것이다. 산업의 연관성 부분에서 IT R&D의 전후방 효과가 1998년에서 2003년 사이보다는 떨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성과가 많은 편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공공 R&D와 민간 R&D가 상보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등 정책적 효과가 크다.
IT 부분의 경쟁력이 약하다는 주장도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다. 부품 산업의 경쟁력이 취약하다고 보는데, 이는 우리의 IT 산업은 ‘모듈화된 방식’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우리가 하지 않고 특정 부분을 골라서 제품을 만들고 시장을 창출하는 방식이 고속성장의 비결이기도 하다. 다만, IT를 활용과 생산으로 나눌 때 활용 부분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이제는 IT 서비스 쪽에 역량을 투여해야 한다. IT가 눈에 보이지 않게 되고 성숙하는 방향으로 가야하다는 말이다.
BT 부분에는 많은 연구개발비를 쏟았지만 성과는 하위권이다. BT는 특성상 연속적이라서 산업 내 한 분야만 취약해도 성과가 안 나온다. 대체로 BT는 임계치를 넘는 R&D 투자가 있어야 급작스럽게 효과가 난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IT와 BT를 혼합하지 않는 한 BT에 대한 장밋빛 전망은 성급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