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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인자동차의 꿈이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지난 3일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의 소도시 빅터빌에서 개최된 ‘제3회 무인자동차대회(Urban Challenge)’에서 무려 6개 팀이 가상으로 꾸며진 도심 90㎞ 구간을 완주해낸 것이다. 올해 로봇분야 최대의 성과로 기록될 어번 챌린지를 입체적으로 분석해 본다.

 “도심을 달리는 무인차 대회는 올해가 처음인데 우승팀이 나오긴 어렵겠죠.(한민홍 고려대 교수)” “보나마나 ‘엉망(big mess)’이 될 겁니다. 어번 챌린지의 완주는 내년에나 가능할 거예요.(파올로 퍼자니언 에벌루션 로보틱스 사장)”

 여러 전문가의 비관적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사막에서 무인차량이 홀로 길을 찾는 2005년 그랜드 챌린지 대회 이후 2년 만에 열린 어번 챌린지는 여러 참가팀은 물론이고 주최 측도 기대하지 못한 대성공을 거뒀다.

 무인자동차는 이제 복잡한 도심지에서도 주변 차량을 피하고 교통신호를 지키며 목적지까지 이동할 만큼 똑똑해졌다. 이번 대회를 주최한 미 국방부 산하 방위기술연구청(DARPA)은 로봇 차량의 도심지 주행성공을 100여년 전 라이트 형제의 첫 동력 비행에 견주면서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경기 개요=미국 전역에서 몰려든 35개 참가팀은 지난달 26∼31일까지 캘리포니아 남부 빅터빌 인근의 한 폐쇄된 공군기지에서 어번 챌린지 예선경기를 치렀다. 주최 측인 DARPA는 A트랙과 B트랙으로 나눠서 진행된 예선경기에서 주행안전성을 검증받은 상위 11개 팀에만 본선경기 참가 자격을 부여했다.

 마침내 본선경기가 열린 11월 3일. 새벽부터 몰려든 구경꾼과 취재진 앞에서 본선에 올라간 11개팀의 무인차량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경기장은 주변 둘레가 8㎞에 달하는 공항 활주로와 기지 곳곳에 도로망과 교차로·교통표지판·건널목 등을 설치해 미국의 소도시를 통째로 옮겨놓은 듯했다. 먼저 해병의장대가 나와 기마공연을 펼치고 나자 경기가 곧 시작됐다. 요란한 경보음을 내면서 각종 센서와 카메라를 매단 11대의 무인자동차가 속속 출발했다. 일단 경기장 트랙에 들어가면 세 가지 미션을 수행하면서 총 90㎞의 주행거리를 6시간 내 통과해야 완주한 것으로 인정된다. 무조건 결승점에 빨리 들어온다고 우승을 하는 것은 아니다. 경기 도중 다른 차량·구조물과 부딪치면 탈락이다. 다른 차선으로 넘어가거나 정지선을 위반하면 벌점이 쌓여서 순위가 내려간다.

 주최 측은 어번 챌린지는 스피드 경주가 아니라 준법운전을 하면서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가는 능력을 겨루는 대회라고 밝혔다. 경기장에는 무인차량 외에도 사람이 모는 자동차 40여대가 돌아다니면서 실제 도시의 교통흐름을 재현했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무인차량이 충돌할 기미가 보이면 뒤를 따르는 관제차량에서 즉시 비상정지버튼을 누르게 돼 있다. 이날 오후 5시까지 진행된 경기 도중 사고위험 때문에 비상정지버튼이 눌러진 상황은 단 두 차례. 코넬대학과 MIT공대 팀 간의 가벼운 접촉사고와 오시코시 트럭팀이 건물 앞에서 급정거를 한 사례 외에는 별다른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았다. 운전자가 없는 자동차끼리 서로 앞지르기를 하고 요령껏 교차로를 빠져나가는 모습은 경이적이었다.

 경기를 지켜본 한민홍 고대 교수도 “본선에 오른 무인차량은 주행능력이 기대 이상으로 안정적이고 편차도 심하지 않다”면서 놀라움을 표시했다.

 이날 결승점을 가장 먼저 들어온 팀은 유력한 우승후보였던 스탠퍼드대학의 ‘주니어(Junior)’였다. 하지만 어번 챌린지 우승컵은 몇 분 뒤에 들어온 CMU의 ‘보스(Boss)’에게 돌아갔다. 보스는 출발선에서 기기 이상으로 20분 이상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라이벌 주니어보다 주행시간이 짧았다. 이날 우승팀 보스는 약 90km의 코스를 평균시속 22.5km로 완주했다. 서울시내 자동차 도로의 평균주행속도인 시속 22km와 거의 같은 수준이다. 3위는 총기참사의 아픔을 겪은 버지니아 공대 팀에게 돌아갔다. 또 4위는 MIT, 5위는 코넬대, 6위는 유펜이 차지하면서 6시간 안에 결승점을 들어왔다. 처음 열린 도심 무인차량 대회에서 11개 참가팀의 절반이 넘는 6개 팀이 완주한 것이다. 참가팀은 물론이고 주최 측과 관람객까지 축제 분위기에 빠졌다.

 이번 대회의 가장 큰 구경거리는 CMU와 스탠퍼드대학의 불꽃 튀는 라이벌전이었다. 지난 2005년 그랜드 챌린지에서 스탠퍼드가 CMU를 제치고 우승컵을 따냈다. 재미있는 사실은 스탠퍼드대학 팀을 이끄는 세바스찬 스론이 로봇학계의 거물이자 CMU 팀의 수장인 레드 휘태커 밑에서 한때 조교수로 재직했다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로봇기술을 배워간 세바스찬 스론에게 어이없이 우승을 뺏긴 CMU는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이번 대회에서 CMU 팀은 도심주행에 최적화된 알고리듬과 뛰어난 센싱기술로 스탠퍼드 팀을 앞질러 2년 만에 설욕하는 데 성공했다.

 MIT는 출전 팀 중에서 가장 비싼 영국제 랜드로버 SUV차량을 쓰는 등 물량공세를 취했지만 학부생이 차량개발을 주도한 3위 버지니아 공대에도 밀려 스타일을 구겼다. 주목할 현상은 본선에 오른 팀 중에서 독일의 명문공대가 주도한 두 개 팀(애니웨이·CarOLO)이 모두 완주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자동차 종주국을 자부해온 독일도 무인차량 분야에서는 미국에 한 수 뒤진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어번 챌린지의 성과와 파장=이번 대회에서 DARPA가 확보한 무인주행기술은 수년 내 미군차량에 적용되어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실전 테스트에 들어간다. 여기서 효용성이 입증되면 미 국방부는 2015년까지 전체 군용차량의 3분의 1을 무인화할 계획이다. 당연히 총탄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군수물자를 나르는 위험한 작전은 무인트럭이 선봉을 맡게 된다. 하지만 이번 대회의 가장 큰 수혜세력은 이라크에 파견된 미군부대가 아니라 미국기업이다. 군사용 무인차량에서 검증된 로봇기술은 민수용으로 전환돼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운전자가 목적지만 설정하면 방향전환은 물론이고 전방감시와 속도제어·차선변경까지 도와주는 자동주행기능이 고급차량의 옵션사양으로 등장할 시기도 몇 년 남지 않았다. 요즘 일제차와 품질격차를 눈에 띄게 줄인 GM과 포드·크라이슬러는 무인차량 기술을 내세워 2010년대 세계 자동차 시장의 판도를 뒤엎는 꿈을 꾸게 됐다.

 대기업의 자발적 대회 후원도 크게 늘었다. 구글은 CMU와 스탠퍼드 두 대학을 모두 지원했고 인텔·GM·캐터필러·폭스바겐 등도 여러 참가 팀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무인차량의 기술적 측면에서는 비전보다는 정확도가 뛰어난 3차원 레이저 센서를 이용한 항법기술이 대세를 이뤘다. 특히 벨로다인사가 개발한 3차원 레이저 센서 ‘HDL-64E lidar’는 코스를 완주한 상위 6개 팀 중에서 5개 팀이 채택해 큰 관심을 모았다. 원통형 센서는 초당 10회씩 회전하면서 64개의 레이저 광선을 쏘아 반경 150m 이내의 지형과 차량 이동을 정확히 파악한다. 문제는 이 센서의 가격이 개당 8만달러(7400만원)로 차량본체보다 비싼데도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사실이다.

 한민홍 교수는 “무인자동차의 원가비중을 계산해보니 각종 센서류가 80%를 차지한다”면서 “미래 자동차시장의 핵심기술은 엔진·샤시(근육)가 아니라 자동주행을 위한 센서모듈(두뇌)로 점차 이동할 것”이라며 국내 자동차업계의 분발을 촉구했다. 대회성과에 만족한 DARPA는 앞으로 무인차량 대회를 더 개최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당분간 무인자동차 분야에서 미국의 독주를 저지할 국가는 나오기 힘들게 됐다. 우리나라도 몇 년 뒤 사람과 로봇이 운전솜씨를 겨루는 가칭 ‘파이널 챌린지(Final Challenge)’ 대회를 개최한다면 자동차 산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로스앤젤레스(미국)=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