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혁명은 시작됐다](5부)로봇강국으로 가는길⑩수술로봇

 마이크로 결사대(원제:Fantastic Voyage)란 60년대 SF영화를 보면 손상부위가 깊어 수술이 불가능한 환자를 살리기 위해 의료팀을 작게 축소시켜 혈관에 투입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보다는 못해도 로봇기술로 극히 미세한 수술을 성공시켜 귀중한 인명을 살리는 사례가 요즘 크게 늘고 있다.

 22일 오전 10시 신촌 세브란스 병원의 중환자 수술실. 환한 조명 아래 암환자 이모씨(58)의 전립선암 제거수술이 한창이다. 결코 쉽지 않은 수술인데도 집도의 나군호 교수와 레지던트들의 표정에는 느긋함마저 느껴진다. 암조직을 적출하기 위해 환자의 복부를 절개하거나 피를 닦는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거대한 거미처럼 생긴 로봇팔들이 환자의 복부 위에서 조금씩 들썩거리는게 수술과정의 전부다.

 모니터를 봐야 환자의 뱃속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다. 복부에 들어간 가느다란 로봇팔이 속살을 벌리자 다른 로봇팔이 레이저 광선으로 살점을 잽싸게 잘라낸다. 마치 스테이크(암덩어리)를 조금씩 썰어서 포크로 찍어먹는 장면을 보는 듯하다. 모든 수술장면은 10∼15배까지 확대되기 때문에 수술 도중 암조직이 아닌 미세신경이나 근육조직을 손상시킬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의사는 컨트롤 유닛에 앉아 3차원 수술영상을 보면서 수술칼 대신 로봇팔만 조작하면 된다. 이날 나군호 교수는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2시간 40분 만에 전립선암 수술을 깔끔하게 끝냈다.

 로봇을 이용한 수술은 인간의 손보다 뛰어난 정밀도로 여타 신체조직을 다치지 않고 수술을 해내는 장점이 있다. 로봇이 외과용 수술도구로서 임상적으로 적용된 최초의 사례는 1992년 인공고관절 수술에 로보닥(RoboDoc system) 장비가 적용된 것이다. 미국에서 개발된 로보닥은 인공관절이 삽입될 환자의 뼈를 로봇으로 가공해서 수술 성공률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두꺼운 뼈를 정확한 형상으로 깍아내는 작업에는 CAD/CAM 자료에 따라 작동하는 로봇팔이 숙련된 외과의사를 간단히 능가했다. 로보닥은 한국와 EU의 판매승인을 획득했고 결국 인공관절수술의 대세를 장악했다.

 로봇수술은 점차 발전해 90년대 후반부터는 딱딱한 뼈가 아닌 부드러운 살과 내장도 수술하는 로봇이 나오기 시작했다. 수술로봇의 기술진보는 미국방부의 지원과 미국의 높은 의료수가가 중요한 촉매로 작용했다.

 우선 복강경을 이용한 수술기법을 대체하기 위해 97년 미국 인튜티브 서지컬이 다빈치(Davinci)라는 네 개의 로봇팔을 가진 수술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듬해 컴퓨터모션이 제우스(ZEUS)라는 수술용 로봇을 내놓았다. 두 종의 수술용 로봇은 의료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지만 결과는 사용자 편의성이 앞섰던 다빈치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다. 결국 인튜티브 서지컬은 2003년 경쟁사였던 컴퓨터모션을 합병했고 세계 수술용 로봇시장의 독점체제가 시작됐다. 때맞춰 다빈치를 이용한 전립선암 수술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전 세계 종합병원에서 670대나 팔려 나갔다. 환자 처지에서 로봇수술의 장점은 수술시간이 짧고 통증과 출혈, 흉터가 적은 안전한 시술이 가능하다는 것. 의사도 수술에 따른 사고가능성과 피로를 덜어주니 대환영이다. 한 번 로봇수술에 익숙해진 의사가 다시 전통적인 수술환경에 적응하기란 쉽지가 않다. 매일 자동차를 타다가 갑자기 도보로 먼 길을 걷는 상황과도 같다.

 로봇수술의 문제점도 적지 않다. 다빈치는 대당 가격이 25억원을 호가하기 때문에 초대형 병원이 아니면 도입할 엄두도 못 낸다. 당연히 로봇수술에는 건당 700만∼1500만원의 추가비용이 든다. 의료보험도 안 되기 때문에 환자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로봇수술이 의료 과소비를 부추긴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시장독점으로 기술진보가 사실상 멈추고 다양한 제품군이 안 나오는 것도 의료로봇시장의 걸림돌로 지적된다. 전문가들은 다빈치의 로봇플랫폼이 이미 10년 전에 나왔기 때문에 일본·유럽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인튜티브 서지컬이 미국과 일본·유럽에 방대한 특허장벽을 쳐놓은 때문에 싸고 성능이 우수한 의료로봇이 좀처럼 나오지 못하고 있다. 또 다빈치의 로봇팔은 10회만 사용하면 전원이 꺼지게 세팅돼 개당 300만∼400만원씩 주고 무조건 교체해야 한다. 많은 의사가 수술용 로봇이 지금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대에 나와야 다양한 수술법이 개발되고 환자에게 혜택이 골고루 돌아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수술로봇의 국내개발과 기술전망=지난 6월 로보닥을 만든 미국 ISS사의 모든 기술특허와 산업재산권 24개가 한국의 큐렉스로 넘어왔다. 덕분에 고관절수술 로봇은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KAIST 인간친화복지로봇 연구센터도 국내 상황에 맞는 인공관절수술용 로봇을 큐렉스와 공동개발 중이다.

 미래컴퍼니는 미국대학연구소와 손잡고 올 초 래보란 수술로봇 회사를 출범했고 오는 2009년부터 다빈치와 비슷한 성능에 대당 5억원 남짓한 보급형 수술로봇을 시판할 예정이다. 다음 버전에는 수술용 로봇팔에 촉감을 느끼는 헵팁기능을 장착하고 자유도 역시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원격수술로봇도 이달 초 국내기술로 실험에 성공했다. 나군호·형우진 연세의대 교수팀은 김윤혁 경희대 공대 교수와 함께 인터넷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원격수술로봇로 동물의 장기를 자르는 실험에 성공해 관심을 끌었다. 김윤혁 경희대 교수는 “현재 인터넷으로 원격수술로봇을 작동하면 통신속도가 일정치 않아 상당히 위험하다”면서 “정부가 관심만 가지면 원격수술용 통신망을 확보해 다양한 의료서비스를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전문가들은 곧 수술할 부위를 미리 3차원 시뮬레이션으로 보여주는 수술로봇이 나오고 2010년대 중반까지 전쟁터에서 원격수술도 가능해질 것이라 예측한다. 또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 수술을 집도하는 진짜 로봇의사도 2020년대 후반에는 실용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김윤혁 경희대 교수는 “한국은 수술로봇분야에서 선진국과 경쟁할 기술력은 충분하다”면서 “이젠 수술로봇의 임상실험과 안전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시스템 구축이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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