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위대한 산업을 향해](5)글로벌 사업①영원한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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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는 누가 뭐라 해도 우리나라 대표 기업이다. 삼성전자에 반감을 갖는 사람조차 ‘국가 경제 기여도’를 인정한다. 그런데 삼성전자에 못지않게 기여해온 KT와 SK텔레콤를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통신사업자가 생활편익 면에서는 삼성전자보다 더 많은 기여을 하는데도 그렇다. 이유는 하나, ‘글로벌 입지’의 차이다. 삼성이 수조원의 이익을 내면 그만큼 외화를 많이 벌어들여 우리나라를 살찌운 것이나 통신업계의 수조원의 이익은 모두 우리 호주머니에서 나왔다는 생각을 한다.

 우물 안 개구리. 통신사업자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다. 통신사업자가 최근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은 포화한 내수 시장을 벗어나 새 수익원을 창출하려는 것이지만 ‘우물 안 포식자’로 점철된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려는 포석도 깔려 있다.

 ◇통신산업=내수산업? NO!=크게 보면 통신은 이미 내수산업이 아니다. 휴대폰 업체와 통신장비 업체가 고도로 발달한 우리나라 통신 시장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무기로 해외에서 활약하기 때문이다. 통신서비스 업체도 알음알음 솔루션과 노하우를 수출해왔다.

 해외를 봐도 서비스 역시 해외사업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보다폰과 같은 이동통신사업자는 해외매출 비중이 80%를 웃돈다. 자국 내 이동전화가입자가 160만여명에 불과한 싱가포르텔레콤도 아시아 전역에 9000여만명의 고객이 있다. 라틴아메리카 13개국에서 유무선 통신사업을 펼치는 스페인의 텔레포니카는 영국 이동통신사업자 O2를 인수하고 아일랜드·독일 등에서 사업을 한다. 물론 실패하기도 한다. 분명한 건 통신산업이 자국 내에 머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좋은 벤치마킹 대상이다.

 ◇이제 걸음마, 희망은 있다=우리 통신사업자의 세계시장 도전사는 아직까지 역동적이지 않다. 진출 역사 자체가 짧고 주로 문화적·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베트남 등 아시아 지역과 러시아·중동 등 신흥 시장을 중심으로 조심스럽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은 중국·몽골·베트남·미국 등지에 CDMA 서비스를 제공하며 KT는 러시아·몽골·베트남·중국·카타르 등에서 통신망 고도화나 초고속인터넷 사업을 진행한다. 금전적인 성과는 아직 크지 않다. 그래도 현지 분위기는 상당히 좋아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판단이다. 더딘 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 거액의 투자가 수반되는 통신산업에서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최근 와이브로가 세계 3G표준으로 선정되는 등 우리의 통신기술과 운영 노하우는 늘 전 세계적인 관심 대상이었다. 이 힘으로 현지의 문화 속에 녹아든다면 우리 통신업계가 해외사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킬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통신사업자의 해외 사업이 쉽지 않은 것은 국가 기반산업으로 인식되는 이 산업의 특성 때문이다. 어느 나라든 자국 통신산업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보다폰이나 텔레포니카가 해외사업에 성공적인 것은 과거 식민지였던 나라를 공략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해외 사업의 또 다른 애로점은 필요한 핵심 정보을 얻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통신사업자 선정 계획이나, 신규서비스 추진, 주파수 할당 계획과 같은 주요 정보를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해 사업을 추진하기 힘들었다. 문화적 장벽도 있다. 여유로운 국민성의 동남아 나라에서 일정을 맞추기가 얼마나 힘든지는 겪어 봐야 안다. 자칫 지칠 수도 있다. 그래도 사업자들은 지금까지 낸 수업료 이상의 경험을 쌓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지개를 펴고 있다.

 김신배 SK텔레콤 사장은 “글로벌시장 진출은 통신산업의 미래와 직결되는 생존의 문제”라며 “규제·관습·언어 등이 다른 나라에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어렵기 때문에 그만큼 더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전방위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기업 차원에서 풀 일도 있지만 정치적으로 풀 일이 더 많다. SK텔레콤은 2000년 베트남 업체인 SPT와 협력계약을 한 후 사업권을 획득하는 데 11개월이나 걸렸다. 막판에 베트남 수상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 정부가 긴밀히 협조를 요청하면서 급진전했다. 정보통신부는 SK텔레콤이 베트남에 진출할 때 유효 경쟁체제 구축을 위한 후발사업자 보호 정책의 필요성을 베트남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베트남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후발사업자가 유리하도록 상호접속 요율 정산 방식을 바꿨고 일정 정도의 요금 경쟁우위도 보장했다.

 해외에 우리 통신산업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려는 정부의 전방위 지원과 더 맛있는 먹거리를 찾아 우물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우리 통신업계의 의지를 합치면 머지않은 미래에 전 세계 곳곳에서 ‘통신 한류’를 일으킬 수 있다. 그때에는 통신사업자를 보는 우리 국민의 시각도 지금과는 사뭇 달라질 것이다.

 정진영기자@전자신문, jychung@etnews.co.kr

◆해외 벤치마킹 대상인 후발 통신사업자들

 프랑스 2위 이동통신사업자인 SFR은 지난 3월 휴대폰으로 10유로만 내면 집에서 무제한 통화가 가능한 상품을 출시했다.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서비스명은 해피존.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름이다. 바로 LG텔레콤의 기분존 서비스를 벤치마킹한 서비스다. SFR은 휴대폰 소액결제 서비스를 추진하기 위해 지난 6월에 LG텔레콤을 방문했다. 이 회사의 도미니크 부사장은 “LG텔레콤의 서비스 중에는 혁신적인 것이 많아 서비스를 구상할 때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한국의 통신서비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특히 후발사업자의 혁신적인 서비스는 해외 2, 3위 사업자에도 벤치마킹 대상이다. 기분존·항공마일리지 등의 톡톡 튀는 서비스를 선보인 LG텔레콤과 프리IPTV 서비스로 방송통신 컨버전스 시장을 주도한 하나로텔레콤에는 해외 사업자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하나로텔레콤은 최근 1년 동안 미국·유럽·일본·중국 등에서 10여차례나 손님을 맞느라 분주했다. 대부분 하나TV 서비스를 향한 관심이다. 7월에는 일본 엔터테인먼트 포털 업체인 츠타야온라인 임원진 17명이 다녀갔다. 같은달 프랑스텔레콤 임원진도 방문했다. 지난 봄에는 노르웨이 미디어 네트워크 대표단·EU 방문단과 일본 소프트뱅크 자회사 야후BB의 관계자들이 여의도 본사를 둘러봤다. 중국 통신사업자 차이나넷컴 임원진 8명이 방문하기도 했으며 노르웨이 NRK(공영방송)·덴마크 DR(국영방송)·핀란드 YLE(공영방송) 등 방송사의 취재와 벤치마킹도 줄을 이었다.

 LG텔레콤은 올해 들어 일본·유럽 등지에서 여러 차례 임원진이 다녀갔다. 7월 중순에는 일본 KDDI 구매팀 및 시설기획팀 4명이 방문해 망구조와 협력업체 관리 방안 등을 배워 갔다. 5월에는 일본 소프트뱅크모바일의 야마우치 켄 부사장·도미타 가츠우치 부사장을 비롯한 21명의 경영진이 대거 방문했다. 신규서비스 개발 프로세스, 요금제 전략 및 개발 사례, 소매 중심의 유통전략과 ‘폰앤펀’ 구축 배경 등을 놓고 ‘수업’을 진지하게 들은 이들은 여러 차례 감탄을 자아냈다는 후문이다.

 조인혜기자@전자신문, ih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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