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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비싼 고급차도 운전 중에는 핸들을 꼭 잡아야 한다. 하지만 자동차와 로봇기술의 결합에 따라 운전자가 없어도 홀로 주행하는 무인자동차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무인주행이 가능한 차량이 널리 보급돼 안정성을 인정받으면 사람이 직접 핸들을 잡는 운전은 일종의 오락이나 스포츠로 변할지도 모른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조용한 소도시 빅터빌은 요즘 외지사람으로 북적거리고 있다. 이 도시의 낡은 군용비행장에서 오는 26일 미 국방부가 후원하는 제3회 무인자동차 대회(Urban Challenge)가 열리기 때문이다. 미국 전역에서 몰려든 35개 대학팀은 200만달러의 우승상금을 놓고 무인자동차의 주행성능을 겨루게 된다. 어번 챌린지의 목표는 무인자동차가 도심지의 교통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목표지점까지 이동하는 능력을 시험하는 것이다. 3년 전에 열린 제1회 무인자동차 대회(Grand Challenge)는 인적이 없는 사막지형에서 벌어졌다. 경주코스는 거친 모하비 사막을 통과하는 227.2㎞의 오프로드 구간이었다. 첫 번째 대회에서 무인자동차는 모조리 길을 잃고 모래구덩이에 처박히고 말았다. 이듬해 2회 대회에서 스탠퍼드대학의 무인자동차 ‘스탠리’가 사막코스를 완주하면서 최초로 우승을 했다. 이에 비해 다음주 열리는 제3회 무인자동차 대회는 허허벌판이 아니라 수많은 자동차와 인파가 오가는 도심 한복판을 무대로 한다. 무인자동차가 시내 교통신호를 지키면서 전후좌우의 교통흐름에 맞춰 주행속도와 방향·차선을 바꾸려면 엄청난 기술이 요구된다. 무인자동차의 시내주행이 성공을 거둔다면 세계 자동차업계에 일대 혁신이 일어날 것이다. 다만 무인자동차 수십대를 실제로 도심지에 몰아넣고 경주를 시키면 안전사고의 위험이 너무도 큰 것이 문제다. 결국 대회를 주관하는 미국국방고등연구국(DARPA)은 차선책으로 혼잡한 도심지 도로환경을 시골마을에 완벽하게 재현해 놓고 어번 챌린지 대회를 열기로 했다.

 ◇어번 챌린지의 진행규칙=미국 전역에서 몰려든 35개 팀이 이달 26∼31일까지 예선경기를 치르고 11월 3일의 본선경기에는 상위 20개 팀만이 출전할 수 있다. 본선에 올라간 20개팀이 가상도시(경기장)에 들어가면 신호등과 교통표지판·건널목 등 현지 교통법규를 완벽히 지키면서 총 96㎞의 주행거리를 6시간 내 통과해야 완주한 것으로 인정된다. 도심지의 교통흐름을 재현하기 위해서 50명의 프로 운전자가 직접 일반차량을 몰면서 가상도시를 돌아다닌다. 사람이 모는 일반차량은 갑작스러운 충돌사고에 대비해 차체강도를 크게 높였다.

 무인자동차는 주변 차량의 이동방향을 파악하면서 출발했다 멈추고 앞지르기를 반복한다. 또 최종 목적지에 가면 알아서 주차까지 해야 한다. 교통이 막히는 시간대에 도심지를 자동차로 통과하는 상황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충돌사고로 다른 차량에 심각한 피해를 주면 바로 탈락이다. 다른 팀 때문에 충돌사고를 당한 무인자동차도 30분의 수리시간 후에 움직이지 못하면 역시 탈락이다. 최종 경기코스는 대회 24시간 전에 알려준다. 참가팀들이 경기코스를 미리 답사하면 불공정한 경쟁이 되기 때문이다. 도심교통을 재현한 세계 최초의 무인자동차 대회에서 과연 완주팀이 나올지 전문가들도 쉽게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어번 챌린지는 그만큼 변수가 많고 기술적으로 흥미진진하며 자동차역사에 중요한 획을 그을 대회로 평가된다.

 ◇무인자동차의 개발역사=무인자동차는 1950년대에 제안돼 많은 연구가 수행됐다. 지난 1964년 미국 RCA사는 프린스턴대학 운동장에 유도선을 깔아 세계 최초의 무인자동차를 만들었다. 1989년 캘리포니아 운송국과 버클리대학은 여러 대의 차량군이 최소한의 차간 안전거리만 유지하며 이송하는 군집주행(platooning)이라는 개념을 선보여 관심을 끌었다. 많은 차량이 한 무리가 돼서 움직이는 과정에서 선도차를 제외한 나머지 차량들은 무인주행을 하게 됐다. 하지만 당시 이 같은 첨단기술을 구현하려면 모든 도로상에 영구자석을 일정한 간격으로 깔아야 했다. 결국 98년 미국교통성은 엄청난 도로개수비용을 이유로 군집주행을 이용한 무인차량연구를 폐기했다. 무인자동차를 위해 도로망전체를 개조하는 아이디어는 구식이 됐다. 미국교통성은 이후 개별 자동차에 지능을 부여해서 사고를 예방하는 IVI(Intelligent Vehicle Initiative) 계획으로 안전대책을 전환했다.

 2000년대에 접어 들어 일본과 독일 등의 자동차 회사는 최신 전자기술로 운전자를 편하게 해주는 안전기능을 앞다퉈 도입했다. 앞차와의 거리를 자동으로 유지하는 적응식 크루즈 컨트롤(ACC), 차선을 벗어나면 경고하는 시스템(LDWS), 차선을 자동으로 따라가는 운전보조장치(LKAS) 등은 무인자동차의 등장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무인자동차의 실용화에 불을 댕긴 또 하나의 주역은 군수산업이다. 지난 2001년 미 국방부는 전쟁수행능력을 높이기 위해 오는 2015년까지 전체 군용차량의 3분의 1을 무인화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DARPA가 우승자에게 200만달러를 지급하기로 한 어번 챌린지도 이 같은 군사적 목표를 위한 준비작업이다.

 한국도 세계 5위의 자동차 대국답게 무인자동차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차는 오는 2011년 개발을 목표로 제한적 자율주행이 가능한 무인자동차를 개발하고 있다. 각종 국방·보안전시회에는 무인자동차가 심심찮게 선보인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도 내년 여름부터 자체 개발한 무인셔틀버스를 운행할 계획이다. 문제는 무인자동차가 개발돼도 정작 도로교통법이나 관련법규는 무인주행의 개념조차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어번 챌린지처럼 무인자동차에 국민적 관심을 불러모을 대규모 이벤트가 국내에서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