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T이슈 진단]미국 IT 대장주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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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공, ‘구글국’의 세력이 심상치 않사옵니다. IBM의 시가총액까지 제쳤다는 소식입니다.”(스티브 발머)

 “드디어 교룡(蛟龍)이 삼일우를 만났구나. 중원의 패권을 넘겨주지 않으려면 한 판의 적벽싸움을 준비할 밖에.”(빌 게이츠)

 지난 8일(현지시각) 정보기술(IT) 업계는 구글의 주가 600달러 돌파로 경악했다. 2004년 상장, 아직도 신출내기 냄새 풀풀 풍기는 구글이다. 이보다 시가총액이 높은 IT 기업은 마이크로소프트(MS)·AT&T·시스코 단 3개뿐이다. 멀리 동방의 IT강국 한국에서는 NHN이 통신 기업 KT 시총을 넘겼다는 전갈이 날아들었다. 소식을 전해들은 경쟁업체 사령탑의 속내는 가상으로 꾸민 앞의 대화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구글의 급부상은 중원의 새로운 질서를 강력히 예고하는 것인가. 미래를 알기 위해 역사책을 뒤지듯, 지난 20년간의 ‘IT 대장주’들의 시가총액을 모조리 뒤져 정리해봤다. 기운은 왔으되, 하늘은 준비된 자를 찾고 있었다.

 ◇80·90년대 중원의 두 강자 IBM과 AT&T=초와 한이 중원의 패권을 두고 다투었듯 IBM과 AT&T가 IT 패권을 두고 겨루었다. IBM은 80년대, AT&T는 90년대 미국 시가총액 1위를 대표했다. IBM은 일본 기업의 역습에 허를 찔린 80년대 미국의 자존심을 살린 유일한 기업이었다. 89년 세계 시총 10개 기업 중 7개가 일본 기업이었는데, 그 틈을 비집고 IBM이 6위를 기록했다. 이듬해 IBM은 세계 시총 2위까지 올라섰다. 그러나 ‘관료주의’에 젖어 있던 IBM은 93년 8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적자를 기록하고 시총 상위 리스트에도 사라졌다.

 그 자리를 메운 것은 컴퓨터와 함께 IT의 다른 한 축을 구성하고 있는 거대 통신기업 AT&T였다. AT&T는 92년부터 96년까지 IT 기업 시총 1위를 달렸다. 84년 미국 독점 당국의 규제로 시내 전화사업을 분사시킨 AT&T는 급격히 시장 지배력을 잃었으나, 10년간의 눈물겨운 구조조정으로 마침내 시총 1위를 거머쥐었다. AT&T가 경쟁체제에 돌입한 1984년과 10년 후인 1994년의 재무제표를 비교해보면 순이익, 주가 수익률은 두 배 이상 는 반면에 종업원 수는 10만명 이상 줄었다. 때마침 글로벌화가 가속화하면서 고부가가치 통신 수요도 급증했다.

 ◇대장주가 대장주를 잉태하는 아이러니의 패권사=미국 IT 대장주 20년사는 패권자가 ‘호랑이 새끼를 제 집에서 키우는’ 역사의 반복이었다. 민심을 잃어버린 패권자에 일격을 가하는 것은 ‘심복’인 경우가 많았다. 80년까지 절대강자였던 IBM이 그랬다. IBM은 개인용 컴퓨터(PC)를 만들면서 운용체계(OS)는 MS에, 마이크로프로세서(CPU)는 인텔에 주문생산(OEM)을 맡겼다. 이는 소프트웨어 산업과 반도체 산업이라는 새로운 국가의 패권자가 탄생하는 기회를 준 일이었다. MS와 인텔은 분산형 컴퓨터라는 전략을 들고 나온 선마이크로시스템스·컴팩 등과 함께 IBM 대형 컴퓨터(메인프레임)의 몰락을 재촉했다. 통신업체도 마찬가지다. 90년대 중후반 전 세계 통신업체는 출혈 경쟁을 감수하며 네트워크 투자에 뛰어들었고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산업을 잉태했지만, 정작 스스로는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통신이 만든 텃밭에 씨를 뿌려 거두는 것은 훗날 야후·구글 등이었다.

 ◇마침내 윈텔 제국 완성=98년 마침내 MS와 인텔이 미국 증시를 장악했다. IT업종뿐만 아니라 전체 시총에서도 MS와 인텔은 나란히 1, 2위에 랭크됐다. 두 회사는 ‘윈도98’과 ‘펜티엄’이라는 걸출한 제품으로 PC의 요체, 즉 OS와 CPU를 잡고 전 세계 소비자의 책상을 점령해나갔다. 이른바 ‘윈텔(윈도+인텔)’ 제국을 완성한 것이다. 이후 MS는 단 한 번을 제외하고 IT 기업 시총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그 한 번도 2000년 인텔이 시가총액 1위에 오를 때였으니 연합국으로 탄생한 윈텔 제국이 얼마나 공고한지는 짐작하고 남는다. 그러나 MS의 시장 독점화는 결국 오픈 소스 운동이 불붙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 오픈 소스 세력은 훗날 구글과 결탁해 구글의 세력을 키우는 빌미를 제공하니 이 역시 대장주가 대장주를 잉태하는 IT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니겠는가.

 ◇2008년 구글, 인터넷 천하 선언하나=2004년 11월 스티브는 의자를 집어던졌다. 구글이 핵심 인재를 빼간 직후다. 그 후에도 구글은 매년 매출이 두 배씩 늘며 고공행진을 거듭했다. MS는 닷넷이라는 자체 전략을 잠시 보류한 채 검색·광고·인터넷이라는 구글 전략을 모방하는 등 혼미한 상태에 빠져들었다. 2007년 10월 12일 현재 구글보다 시가총액이 확실히 높은 기업은 윈텔 제국 10년 내공을 자랑하는 MS와 SBC·벨사우스를 잇따라 합병하며 100년 전 거대 통신기업으로 몸집을 불린 AT&T 두 회사다. 공교롭게도 구글은 휴대폰과 모바일 OS 개발, 700㎒ 주파수 경매 입찰 등으로 MS와 AT&T 두 업체와 한꺼번에 중원에서의 대결을 신청한 상태다. 때마침 빌 게이츠 MS 회장은 내년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과연 웃으며 퇴진할수 있을까.

 

 <용어설명) 시가총액=주가에 주식 수를 곱한 것으로 기업 현재가치와 미래가치를 고스란히 나타낸다. 시가총액 상위 기업을 뜻하는 대장주는 업종의 패권이 어디 있는지를 보여준다.

◆제국이 낳은 깜짝 스타들

 IBM 왕국은 MS·인텔 외에도 오라클이라는 걸출한 스타를 배출했다. IBM에서 엔지니어로 잠깐 일했던 래리 엘리슨은 데이터베이스매니지먼트서비스(DBMS) 시장을 확신하고 오라클을 창업했다. 오라클은 현재 소프트웨어 3위 업체로 전 세계 소프트웨어 인수합병(M&A)을 주도하고 있다. 윈텔 제국은 ‘다이렉트 판매’와 ‘저가’를 앞세운 델의 부흥을 가져왔다. 델은 2003년 IT 시가총액 6위에 오르면서 최고의 영화를 누린다.

 99년, 2000년에는 시스코가 급부상했다. 단숨에 IT업종 시총 1, 2위를 다툴 정도. 통신제국이 낳은 스타다. 골드러시 때 돈 번 사람은 청바지·곡괭이 상인이라고 했던가. 닷컴 버블은 꺼지고 출혈경쟁에 나섰던 통신업체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길목에서 네트워크 장비를 팔았던 시스코는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제국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융성한 문화를 가꾼 국가도 있었다. 바로 애플이다.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를 내놓았다가 윈텔 제국에 밀려 추락을 거듭하는 비운을 겪었지만, 2004년 ‘아이팟’으로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한다. 스티브 잡스 애플 CEO는 애플 시총이 델 시총을 넘어서자 97년 자신의 애플 복귀를 폄하했던 델 CEO를 향해 한마디 한다. “델, 당신이 틀렸어!”

  류현정기자@전자신문, dreams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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