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철 미리넷솔라 회장(54)은 마음 한 구석에 미심쩍게 자리 잡고 있던 부담을 요즘 완전히 털어냈다. 그는 지난 2001년 남들이 생각도 하기 전에 태양광 연구를 시작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어온 ‘뜬구름 잡는 이야기’란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제 더 이상 이런 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 태양광이 무엇인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고 또 더 이상 ‘봉이 김선달’이라는 시선도 감수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가 일찍 도전장을 낸 태양광 산업은 지금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잇는 차세대 유망산업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인정한다. 너도 나도 태양광 관련 사업을 한다고 난리다.
“태양광을 향한 관심은 매우 우연히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산꼭대기에 서 있는 안테나와 중계기를 봤는데 저런 지역에는 전기를 끌어들이기가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저런 곳에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태양광을 도입하면 경제적인 측면에서 매우 유용할 것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습니다.”
이 회장은 정통 IT맨이다. 주변에서는 정보통신 분야에서 첨단 미래산업 분야로까지 눈을 돌린 최고경영자(CEO)라고 평가하지만 실은 이처럼 한 번 머리에 꽂히면 바로 행동에 들어가는 성격 탓에 미개척 분야에서 사서 고생을 시작한 셈이다.
한국의 IT산업은 세계 기술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이 회장은 항상 외국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한 수 가르치는 위치에만 서 있었다.
“IT와 태양광 분야는 상황이 정반대입니다. 해외 태양광 분야 전문가나 기업인은 기술 유출을 우려해서인지 미팅 요청을 해도 잘 안 만나 주더라구요. 그래서 마음가짐부터 다시 했습니다. 한 수 배우는 자세로 정성을 기울여 인간관계를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미리넷솔라는 초고속인터넷(VDSL)장비업체인 미리넷의 자회사다. 미리넷솔라는 2005년 법인이 설립됐지만 미리넷의 태양전지 고효율충전시스템 연구는 2001년부터 시작됐다.
“미리넷솔라를 설립에 앞서 약 3∼4년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시장 조사를 했습니다. 독일·일본에 비해서는 많이 뒤져 있었지만 아직 늦지 않았고 시장성에도 확신을 가졌습니다.”
고유가 행진이 계속되면서 일본·EU·미국 등 각국은 환경오염이 전혀 없는 자연친화적 에너지인 태양전지 산업 육성에 팔을 걷어 붙이고 있다. 선진국은 물론이고 중국까지 시장에 가세했다. 세계 태양광 시장규모는 지난해 67억달러에서 2012년에는 230억달러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하지만 막상 법인을 설립하고 보니 국내에서는 태양광 산업의 인식이 매우 낮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반도체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생산국이지만 같은 실리콘 재료를 쓰는 태양전지의 생산능력은 세계 생산능력의 1% 수준에 불과했고 투자 환경은 전혀 조성돼 있지 않았습니다.”
이 회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주변 설득이었다. 태양광발전은 태양에너지를 직접 전기에너지로 변환시키는 기술이다. 따라서 사무실에 실제로 전기를 발생시키는 장비와 시제품을 직접 설치해 놓고 눈으로 확인시켰다.
“눈으로 보면서도 성능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태양광이 무엇인지는 막연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사업성에 의문을 품는 것 같았습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도 이 회장은 미리넷솔라 설립 첫해에 독일 슈미트사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200만유로의 투자 유치에 성공하는 계가를 올렸다. 또 지난해에는 해외투자자들로부터 총 650만달러의 외자를 유치했다. 현재 상용화된 최고 수준의 다결정 태양전지 변환효율(15∼16%)을 낼 수 있는 양산설비를 도입해 놓았으며, 연구개발체제도 확립했다. 또 지난 9월에는 해외 유력 실리콘 제조사와 5년간 태양전지용 실리콘을 장기구매하는 계약을 했으며 지난해 9월 착공에 들어간 대구 성서공단 내 국내 최대 100㎿급 태양전지 공장의 생산라인 설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늦어도 연말에는 제품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한 달 전쯤에 중국의 태양광 원재료 회사를 방문했습니다. 중국 정부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태양광 산업을 강력하게 육성하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자금이나 전략 면에서 앞서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우리 산·관·학·연이 힘을 모으지 않으면 반도체·디스플레이분야에서 거뒀던 결실은 모두 다른 나라의 몫이 될 것입니다.”
이 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과 이병철 회장을 존경한다. 돈을 좇아 부를 축적한 분들이 아니고 황무지 속에서 새로운 산업을 좇아 일가를 이룬 분들이기 때문이라는 게 이 회장의 설명이다.
“미약한 힘이지만, 두 분처럼 산업을 창출하고 이끌어가는 새로운 도전에 쏱아 붓고 싶습니다. 부는 그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축적되는 것이고요. 태양광 산업이 매력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대기업조차 투자 결정을 망설이는 태양광 분야에 한발 먼저 출사표를 던진 미리넷솔라 이상철 회장. 그의 과감한 도전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심규호기자@전자신문, khsim@
◇프로필
1953년 출생.
<학력>
1995년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최고경제과정 수료
2002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정보통신방송정책과정 수료
2007년 영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경력>
1972년 체신부 대구체신청
1979년 동아건설
1981년 동아엔지니어링(주)
1993년 미리넷(주) 대표이사
2004년 (현) 미리넷(주) 회장
2005년 (현) 미리넷솔라(주) 회장 겸임
2007년 (현) 재경울진군민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