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위대한 산업을 향해](4)미래로 눈 돌려라(중)혁신DNA로 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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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이 ‘혁신 마인드 회복’을 주제로 자체기획해 무대에 올린 뮤지컬 ‘일어나’에서 배우들이 열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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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만큼 통신판이 침체 분위기였던 시기는 없었습니다.” 최근 만난 한 통신업계 관계자가 만사가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툭 던진 말이다.

 이상하다. 겉으로 보기에 통신은 여전히 우리 IT산업 중에 가장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분야가 아닌가. “치열하면 뭐합니까. 새로운 게 없는데”란 이유를 듣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나라 정보통신 산업을 눈부시게 발전시켜온 주역, 통신 업계의 ‘혁신DNA’가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다.

 ◇포화상태 통신시장, 멈춰버린 혁신=ISDN에서 ADSL로 가는가 싶더니 VDSL을 거쳐 어느새 100메가급 광랜 시대를 연 초고속인터넷 시장. 지하철에서 통화가 된다며 신기해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휴대폰으로 음악을 듣고 TV도 보는 이동통신 시장. 이처럼 통신 산업이 걸어온 길에는 ‘혁신’이라 부를 만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러나 4000만 가입자를 돌파하면서 정점을 찍은 이동통신 시장과 이미 1400만 가구에 보급된 초고속인터넷 시장에서 이제 과거의 ‘혁신과 도전’을 찾아보기 힘들다. 포화상태에 이른 시장에서 타사 가입자를 빼앗아오기 위한 ‘치열한 쳇바퀴 돌리기’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마이너스 성장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유선전화 시장은 KT의 말 못 할 골칫거리다.

 통신업계는 포화한 시장이라는 바꿀 수 없는 주변 상황 탓이라고 항변하기도 한다. 반면에 그러한 시장 상황을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보면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를 때까지 별다른 대책 없이 흘러왔다는 것은 업계의 안일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혁신DNA’가 제 기능을 했다면 시장포화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여전히 절실하지 않다=통신사업자는 저마다 내부 혁신이나 신규사업 전개를 위한 조직을 만들어 운영중이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물을 내놓은 곳이 없다. 국내시장에서 가입자 유치를 위해 펼치는 기상천외한 전략창출 노력의 10%만 신규사업 쪽에 투입했어도 뭔가 새로운 먹거리가 나왔을 법 하다.

 수요 포화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길인 해외 사업 추진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SK텔레콤이 베트남·중국·미국 등지에서 가장 활발하게 해외사업을 전개 중이지만 아직 시장 탐색전의 느낌이 강하다. 여타 후발사업자는 해외진출 자체를 고려하기조차 힘들다. 한 이동통신사 고위 임원은 “아직까지 내수에서 수익이 크다 보니 해외사업에 많은 자원을 투입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절실하지 않다는 의미다.

 통신 사업권 자체가 ‘황금알 낳는 거위’로 여겨지던 시절까지는 아니더라도 매출 10조원에 1조4000억원의 순익을 내는(SK텔레콤 기준) 통신 사업은 여전히 할 만하다. 치열했던 초기 시장 전쟁에서 승리하고 얻어낸 전리품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전리품으로만 살 수는 없다.

 ◇잘 나갈 때 미래를 준비해야=지난 1983년 미국 최대 통신회사 AT&T는 무선전화사업을 지역회사가 맡도록 했다. 무선전화의 성장 가능성을 제대로 짚지 못했다. 당시 잘나가던 유선사업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작용했다. 하지만 AT&T는 이후 부침을 거듭하던 중 2005년 미국 2위의 지역 통신업체인 SBC 커뮤니케이션에 인수되고 만다.

 물론 AT&T는 이후 뼈를 깎는 혁신전략으로 2006년 말 858억달러에 이르는 벨사우스와의 초대형 합병을 성사시키면서 화려하게 돌아왔다. 하지만 만약 1983년 당시 잘나가던 AT&T가 좀 더 미래를 예측해 적절하게 준비했다면 화려한 컴백의 시기는 훨씬 더 빨라졌을 것이다. ‘혁신’ 대신 ‘현실 안주’를 택한 AT&T의 몰락은 당시 우리나라 통신업계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줬다.

 일찌감치 신시장 개척에 나선 통신업체도 있다. 영국 보다폰은 90년대 후반 포화된 영국 시장을 벗어나 M&A 등을 적극 활용하면서 20여개국에서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보다폰 전체 매출의 80% 이상이 해외에서 나올 정도다. 싱가포르텔레콤 역시 인구 400만명에 불과한 내수시장에서 벗어나 9000만명의 해외 가입자를 확보했다.

 혁신이론의 권위자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는 올 초 국내 모 그룹 임원진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한국이 새로운 경쟁에서 이기려면 ‘파괴적 혁신 전략’을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 고객을 만족시키는 ‘존속적 혁신’이 아니라 새로운 개념의 상품과 서비스로 새로운 시장에 진입한 뒤 전체를 장악해나가야 한다는 조언이다. 우리나라 통신업체에는 바로 지금이 그 순간이다. 먹고 살 만할 때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아차”라고 외칠 때 이미 늦어버리고 만다.

 정진영기자@전자신문, jychung@etnews.co.kr

◆뮤지컬로 ‘혁신 마인드’ 되살린 SK텔레콤 

 지난 7월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는 이색적인 뮤지컬 한 편이 무대에 올랐다. ‘기업 내 혁신 마인드 회복’을 주제로 SK텔레콤 직원들이 자체기획하고 연기한 ‘일어나’라는 작품이다.

 이 뮤지컬의 주인공은 SK텔레콤에서 꿈을 펼치겠다는 열정과 패기로 똘똘 뭉친 신입사원이다. 그러나 그 생각도 잠시, 형식적으로 반복되는 업무와 안정적이고 실질적인 것만 추구하는 회사 분위기, 부서 이기주의 등을 겪으면서 주인공은 입사 10년 만에 의욕을 잃고 현실에 안주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그러던 어느 날 후배를 보며 자신이 과거에 부정했던 선배들의 모습을 닮아 가고 있음을 깨닫고 입사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조직문화의 변화를 위해 이성적인 접근을 앞세우기 쉽지만 아는 것만으로 구성원의 마음이 움직여지지는 않는 게 사실이다. 방성제 SK텔레콤 미래경영연구원장과 직원들은 동료 90여명을 인터뷰하면서 회사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조직 변화에 필요한 점을 도출하고 이를 이야기 형태로 꾸밈으로써 현실과의 접점을 극대화하는 데 성공했다. 실제로 이 뮤지컬을 감상한 SK텔레콤 직원들은 자신의 현재 상황과 비교하면서 “변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후문이다.

 ‘혁신 마인드’는 옆에서 누가 강요한다고 심어지는 게 아니다. 각자가 스스로 느끼고 변화하려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SK텔레콤이 뮤지컬을 매개로 시도했던 감성적 경영은 밑에서부터 공감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냄으로써 전사적으로 ‘혁신 마인드’를 되살리는 데 기여한 독특한 사례로 기억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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