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한국전자전]내년부터 전자산업대전으로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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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한국전자전 2006’을 찾은 관람객들이 삼성전자의 52인치 풀HD LCD ‘파브 모젤’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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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자전’이 올해 38회를 맞는다. 38이라는 숫자가 말해주듯 우리나라 디지털 산업은 한국전자전과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올해는 금성사가 진공관라디오 ‘A-501’의 개발이라는 쾌거를 올린 지난 59년으로부터 48년째이자 한국전자전이 시작된 지 38년째다.

 한국전자전은 지난 69년 1월 시행된 ‘전자공업진흥법’의 제정에 따른 대외 이벤트의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로부터 매년 10월에 개최되는 한국전자전은 역대 대통령이 직접 개막 테이프커팅 행사에 참여함으로써 전자산업에 대한 국정 최고 책임자의 의지와 관심을 표명하는 행사로서 자리잡았다(단, 70년은 한 해 쉬었다). 현재까지도 국내 최대 규모의 종합전자전시회로서 명성을 자랑하고 있다.

 69년 제1회 때는 한국전자산업진흥회의 전신인 한국정밀기기센터가 정부의 8개년 전자진흥기본계획 수립과 다가오는 수출 1억달러(1971년) 달성이라는 목표를 위해 개최됐다. 덕수궁 옆 국립공보관 자리에서 8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된 개막행사는 금성사의 흑백TV, 남성흥업의 라디오를 비롯해 스피커, 콘덴서 등이 중심을 이뤘으며 63건의 기술상담, 25건의 거래상담등 실질적인 성과를 거뒀다.

 덕수궁 석조전에서 열린 72년 제3회 때는 처음으로 거래상담액이 1000만달러를 돌파했고 컬러TV도 최초로 공개됐다. 특히 3회 행사는 이듬해인 73년의 컴퓨터전시와 더불어 향후 전시회의 방향이 첨단기술 전시에 있음을 알려주는 방향타 구실을 하기에 이르렀다.

 76년 7회 때부터는 한국전자공업진흥회가 설립돼 최초로 참여하게 됐다. 이때부터 한국전자전의 여의도 시대가 시작됐다. 78년 9회때까지 계속된 여의도전시장 시절에는 국내에서 직접 조립한 컴퓨터와 태양전지 응용기기, 컴퓨터 응용기기, 전자의료기기 등을 선보이면서 거래상담액도 76년 1억달러 돌파, 77년 2억달러, 78년에는 3억달러를 돌파하는 쾌거를 올렸다.

 79년 3월에는 행사 주최자였던 한국정밀기기센터의 전자공업업무를 흡수통합한 한국전자공업진흥회에 관련업무가 이관됨으로써 이때부터 주최자가 한국전자산업진흥회로 바뀌었고 여의도시대도 끝났다. 80년 11회 때에 비로소 국산 반도체와 컴퓨터가 전시됐고 이때 처음으로 거래상담액이 5억달러를 넘어섰다. 이후 한국전자전은 한국종합전시장에서 현재까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 한국 최대의 전자전으로 성장했다.

 80년대는 ‘TDX-1’과 PC 개발(82년), 64K D램 개발(83년), 전자수출 100억달러 달성(87년), 29인치급 브라운관 개발(89년) 등 국내 전자산업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일들을 담고 있다. 행사 거래상담액도 80년 5억달러를 돌파하고 86년 8억달러를 기록한 뒤 89년부터는 10억달러 시대로 접어들었다.

 한국전자산업은 이 같은 저력을 바탕으로 90년대부터 세계적인 첨단기술을 속속 쏟아냈다. HDTV수상기 시제품 개발(93년), 세계 최초 256MD램 개발(94년), CDMA시스템 세계 최초 상용화(95년), 1GD램 개발(98년), 고선명 대화형 디지털방송 세계 최초 시연(2000년), 50㎚급 트랜지스터 개발(2000년) 등은 국내 전자산업뿐 아니라 세계 전자산업지도에도 기록되고 있다.

 지난 2005년부터는 전자전이 서울 삼성동 코엑스가 아니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로 자리를 옮겨 열리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전자의 날’을 만들어 전자 업계 관련자들의 큰 자긍심을 이끌어내게 됐다.

 그러나 정부는 내년부터 ‘한국전자전’에 관련 전시회를 통합해 ‘전자산업대전’으로 확대·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최첨단 IT산업부터 멀티미디어, 정보통신제품 등 완제품과 이와 관련된 전자부품을 종합해서 전시하는 행사를 통해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대표 전자전시회로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 골자다.

김승규기자@전자신문, se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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