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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조선 제일의 유도선수였다. 부친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체격이 건장해 많은 선배들이 운동선수가 되라고 권했다. “안 된다. 너는 공부를 하거라” 아버지는 단호히 반대했다.
연희전문의 유도부 주장을 맡으며 못된 일본 깡패들을 수없이 매쳤지만 학업에 소홀했던 젊은 시절의 아쉬움을 자식까지 되풀이하기를 원치 않았다. 아들은 결국 운동선수의 꿈을 포기하고 서울 상대에 진학했고 잘 나가는 은행원이 됐다.
하지만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 아들은 경찰조직 다음으로 많은 6000명의 출동경비인력을 거느린 대형 경비업체의 수장으로 변신했다. 이래서 타고난 피는 못 속이는가. 박철원 에스텍시스템 부회장(63)은 은행원 출신이 어쩌다 보안경비사업을 하게 됐는지 스스로도 신기하다며 껄껄 웃는다.
◇유도선수의 피와 은행가의 DNA=박 부회장의 부친은 연희전문 상대를 나와 해방이후 30대 젊은 나이에 은행 지점장까지 지냈다. 덕분에 어릴 적부터 집안살림은 풍족한 편이었다. 4남 2녀의 차남으로 누나, 형, 동생 사이에서 부대끼며 자란서 모나지 않은 품성도 갖췄다.
“국민학교에 처음 갔을 때는 다른 반에 가서 앉을 정도로 고문관이었어요. 그래도 중학교 때부터 마음 잡고 공부를 시작했죠.” 중고교 시절에 그렇게 눈에 띄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수학에 탁월한 소질을 보여 결국 서울 상대에 들어가게 됐다. 박 부회장을 포함한 4형제는 모두 서울상대 동문이다. 그는 부친으로부터 스포츠맨의 투지와 은행가의 냉철한 DNA를 함께 물려 받았다.
1968년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외환은행에 입사했다. “당시 은행은 신의 직장으로 불릴 정도로 대우가 좋았어요. 그러다 1975년 종합상사 1호였던 삼성물산으로 옮겼습니다. 금융계 인력을 산업계로 보내라는 정부의 압력이 대단했거든요” 삼성맨으로 변신한 그는 금융계 인맥을 십분 활용해 삼성그룹이 신규투자하는 반도체, 조선사업 등의 자금조달을 담당했다. 그는 이후 승진을 거듭해 삼성물산 부사장까지 올라갔다. 샐러리맨의 꿈을 거의 달성한 셈이었다.
◇경비보안사업으로 제 2의 인생=인생의 절정과 위기는 흔히 함께 다가온다. 갑자기 찾아온 IMF 외환위기와 함께 많은 삼성그룹의 임원들이 자리를 떠났다. 박철환 부사장도 속칭 물을 먹게 됐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보안경비사업을 해보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삼성물산의 돈줄을 관리하던 금융전문가에게 도둑을 쫓는 경비사업을 하라니 황당한 노릇이었다. “제가 보안경비사업을 한다니까 주변에서도 의아해 했지만 사회안전을 지키는 보안사업이 왠지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물론 자기 사업을 해보고 싶은 욕심도 컸었죠.”
그는 1999년 에스원에서 인력경비사업을 분사된 에스텍시스템의 수장을 맡았다. 삼성그룹의 그늘을 벗어나 보안사업을 확장하기란 만만치 않았다. 다행히도 에스텍은 분사 직후에 마이클 잭슨의 잠실 콘서트 경호업무를 수주하는 호재를 만났다. “검은 양복을 입고 대통령 경호를 하듯이 마이클 잭슨을 호위하는 우리 회사 직원들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운대가 맞았던 거죠.” 이후 민간경비수요는 매년 크게 늘어나 회사매출은 99년 380억원에서 지난해 1837억원으로 4배 이상 늘어났다. 회사 총직원은 9000명에 달하고 이중 70%가 현장에 출동하는 경비인력이다.
이같은 성과는 삼성그룹에서 22년간 쌓은 박부회장의 방대한 인적 네트워크와 친화력도 큰 역할을 했다. 그를 만나보지 않은 사람들은 최대 보안경비업체 CEO라는 직함만으로도 그 옛날의 포도청 대장처럼 터프한 이미지를 연상한다. 하지만 박 부회장의 실제 인상은 영 딴판이다. 체격은 건장해도 얼굴은 부드럽고 온화하기가 그지없다. 그를 아는 주변에서는 인간미 넘치는 영국신사로 통할 정도다. 에스텍의 직원수가 4000명을 넘었을 때 그가 직원들에게 보낸 e메일 ‘사천명(思天命)’은 인간 중시의 경영철학을 담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인간을 위한 토털 서비스업체 꿈꾼다=사람 좋아하는 박 부회장은 직원들의 목소리와 아이디어에도 귀를 귀울인다. 덕분에 에스텍시스템은 보안경비분야의 선두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니치마켓을 줄기차게 공략하고 있다. 고객기업을 찾아가 각종 기밀문서를 직접 파쇄해주는 문서폐기 대행 사업, 무인택배시스템인 ‘이지로커’은 박부회장이 요즘 심혈을 기울이는 신사업이다. “보안경비업을 하다보니 중요한 기업문서를 소홀히 다루는 문제점이 보이더군요. 내년초에는 문서폐기 뿐만 아니라 기업체의 중요한 문서자료를 맡아서 안전하게 보관해주는 신규 사업도 시작할 예정입니다.”
그는 또한 고령화 사회를 대비한 방문 간병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보안과 택배, 건강사업 등 출동인력이 필요한 거의 모든 전방위 분야로 사업영역을 넓힌다는 계획이다.
에스텍시스템은 청소년 폭력예방재단을 통해서 폭력에 시달리는 왕따 학생들에게 무료 경호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조선사람을 괴롭히던 일본깡패를 혼내주던 부친의 의협심을 물려받은 탓도 있을 것이다.
박 부회장은 평생 저녁시간에 일찍 집에 들어간 경우가 손으로 꼽을 정도다. CEO는 어떤 장소든, 어떤 이유로든 많은 사람을 계속 만나야 한다는 신조 때문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이상 인간관계 구축이야 말로 사업성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원, 고객들과 끊임없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은 CEO로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
◇프로필
1944년 서울 출생.
서울중, 서울고, 서울상대 졸업,
삼성물산 입사, 이사, 상무이사, 전무이사(기획실장)
삼성물산 부사장.
삼성SDS 상근 감사
(주) 에스텍시스템 대표이사 사장(1999년 1월)
(주) 에스텍시스템 대표이사 부회장(2007년 9월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