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T, KTF, SK텔레콤, SK네트웍스, LG텔레콤, LG데이콤…. 우리나라 통신 산업을 쥐락펴락하는 기업들이다. 자세히보면 모두 KT그룹, SK그룹, LG그룹 등 굴지의 대기업군에 속한 기업들이다. 그만큼 치열한 통신시장에서 그룹사라는 이른바 ‘빽’없이 독자생존 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라는 얘기다. 그런데 하나로텔레콤이 하늘의 별을 땄다. 변변한 그룹사 하나없이 치열한 통신판에서 10년이나 살아남아 존재감을 입증해보였다. 박병무 하나로텔레콤 사장은 이를 두고 “고아로 자라 대견한 일을 했다”며 늘 입버릇처럼 말한다. 이 회사의 생존법과 경쟁력은 바로 ‘속도’였다. <편집자주>
◆ 3가지 스피드가 경쟁력의 원천
하나로텔레콤의 기업 심볼은 벌새(허밍버드)를 형상화한 ‘하나버드’다. 벌새는 1초에 60회 날개짓을 하고 공중에서 헬리콥터처럼 정지할 수 있다. 작지만 빠른 기업을 지향한 하나로텔레콤의 비전을 그대로 녹여낸 상징이다. 위기의 순간을 신사업으로 돌파하면서 10년 만에 2조원 가까운 매출기업으로 성장한 하나로의 성공은 생각의 속도, 경영의 속도, 사업의 속도를 앞질러간 하나버드의 빠른 날개짓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제1의 스피드 ‘인터넷 속도’=하나로의 첫번째 성공요인은 ‘인터넷 속도’다. 97년 하나로의 출발은 사실 그다지 순탄하지 못했다. 탄생의 배경 자체가 제2시내전화사업자였으니 100년 넘게 독점체제를 구축한 KT(당시 한국전기통신공사)의 아성을 뚫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주목한 것이 ADSL 서비스. 전화선을 이용한 모뎀이 주류를 이루고 128Kbps급의 ISDN이 고속인터넷으로 각광받던 시절이었다. 지금이야 100Mbps 초고속도 흔하게 볼 수 있지만 당시 1Mbps 이상의 속도를 내는 ADSL서비스는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KT는 여전히 ISDN에 집착했다.
드디어 99년 4월 1일ADSL 상용 서비스를 시작한 하나로는 장비가 모자라 가입자를 유치하지 못할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2000년에는 고객들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왜 우리 아파트엔 안 들어오느냐’는 등의 항의성 문의도 쇄도했다. 서비스 1년만에 156만 가입자를 확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 제2의 스피드 ‘사업의 속도’=인터넷 속도가 시장 안착에 기여했다면 한걸음 앞선 사업의 속도는 지속적인 경쟁력을 부여했다. ADSL을 시작으로 2001년에는 VDSL 서비스로 앞서갔으며 2003년에는 20Mbps급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처음 선보였다. 50Mbps 서비스도 앞질러 시작하는 등 초고속 사업에서의 속도는 남들보다 한걸음씩 빨랐다. 물론 KT에 1위 자리를 내주기는 했지만 하나로는 여전히 360만명이라는 가입자 기반을 유지하며 초고속 빅2 사업자로 위상을 유지했다. 모두 속도감있는 사업 전개 덕분이다.
지난해 8월 시작한 하나TV 서비스는 스피디한 사업의 성공 전형을 보여줬다. 방송통신 융합 서비스의 새 모델을 제시했을 뿐만아니라 최단기간 50만명 가입자를 확보하는 등 드라마틱한 성장세를 입증했다. KT가 1년이 지난 올해부터 메가TV 마케팅을 본격화한 것도 하나TV의 성공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 제3의 스피드 ‘경영의 속도’=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신속한 의사결정을 이룬 경영의 속도다. 하나로는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 결재 절차 및 직무권한 위임을 대폭 간소화했다. 불필요한 결재행위를 줄이는 것은 물론 책임을 가진 조직내에서 의사결정을 바로 할 수 있도록 했다. 팀장의 권한이 높아지자 책임감도 높아졌고 속도감있는 의사결정이 가능해졌다. 하나로의 품의서는 1장이내로 작성해야한다. 업무 효율성 이외 다른 형식적인 것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박병무 사장은 “지난 10년동안 생각의 속도를 앞질러온 혁신적인 노력이 지금의 하나로를 있게 했다”며 “향후 10년도 하나버드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기업으로 지속적인 변신을 거듭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인혜기자@전자신문, ihcho@
◆ 2010 컨버전스 리더를 향해
‘총매출 2조 7000억원, 순이익 4100억원 달성’
하나로텔레콤의 2010년 경영 목표다. 지난해 1조 7233억원의 매출에 860억원의 순이익 적자를 본 이 회사가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임직원들의 자신감은 대단하다. 규모의 경제에 밀려 2003년 유동성 위기까지 겪었지만 체질개선과 외자유치, 신규사업 추진으로 쌓은 내공과 상반기에 적자폭을 대폭 줄이면서 생긴 자신감이다. 하반기에 흑자 전환으로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2010년 비전 달성의 키워드는 ‘혁신적 컨버전스 리더’. 초고속인터넷 역사를 열었듯 앞으로도 남들보다 먼저 혁신적 컨버전스 서비스를 선보이며 시장을 선도한다는 전략이다. 통신 인프라 사업자를 넘어 우수한 네트워크를 통해 콘텐츠와 솔루션을 유통하는 종합미디어기업으로 발전한다는 포부다.
중심에는 IPTV 시대를 여는 ‘하나TV’가 있다. 지난해 7월 선보인 후 1년 만에 50만 가입자를 돌파하며 전세계 IPTV 업계를 놀라게 했다. 남들이 하지 않을 때 과감하게 추진하는 하나로텔레콤의 강점을 보여줬다. 1년 만에 500억원 매출을 창출해내는 하나TV는 분명 기업가치 상승의 주역이다.
기업영업 강화는 또 다른 핵심 전략 축이다. 물량 공세에 좌우될 수 밖에 없는 일반 소비자 대상 영업과 달리 기업영업은 사업 아이디어와 서비스 품질 유지로도 성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전국 3000여개 새마을금고 점포에 하나TV를 제공키로 한 것은 하나로텔레콤의 실력을 보여준다.
박병무 사장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하나TV’만으로는 도약을 보장받지 못 한다”며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노력을 계속하자”고 강조한다. 지난 10년간 변화와 혁신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장을 선도해온 전략으로 제2, 제3의 ‘하나TV’를 발굴해내자는 것이다. 기업매각 작업 등 외부요인이 유일한 변수일뿐 하나로는 언제나 혁신을 준비하고 있다. 정진영기자@전자신문, jychung@
◆하나로가 없었다면...
“좀 더 잘했더라면”,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은 가끔 과거를 뒤집어보는 상상을 한다. 대부분 당시 자신의 행동이나 조건이 아쉬울 때다. 그런데 이같은 가정(假定) 놀이에 ‘하나로가 없었다면’을 대입해볼까. ‘그때 하나로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하나로가 없었다면’ 우리는 한동안 64Kbps 속도의 종합정보통신망(ISDN)에 갇혀서 살았겠지. 모든 가정에서 초소속인터넷을 누리는 시기도 훨씬 늦었을 거야. 100Mbps 속도의 광랜은 꿈도 꾸지 못했을걸.
‘하나로가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법과 규정의 틀 속에 갇혀 IPTV 비슷한 것도 구경하지 못 했을 거야. 어쩌면 몇 년 후에도 고품격 IPTV를 즐기는 외국 가정을 부러워하며 부처간, 업계간 영역다툼만을 보고 있을지도 모르지.
새 시장을 선도하고도 정상에 오르지 못 하는 하나로텔레콤 입장에서는 이같은 가정조차 서글픈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아로 살면서 10년 동안 꿋꿋하게 살아남은 통신업체는 우리밖에 없다”는 박병무 사장의 말처럼 ‘새로운 서비스 선도’는 하나로텔레콤의 숙명이자 10년을 끌어온 원동력이다. 우리나라 정보통신 산업을 발전시킨 공로는 인정받기에 충분하다. 하나로의 미래 과제를 거창하게 말할 필요도 없다. 10년, 20년후 “그때 하나로가 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의 생활은 훨씬 무료할거야.”라는 평가만 얻으면 된다.
정진영기자@전자신문, jych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