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김문조 고려대 교수-필립 로즈데일 린든랩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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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일 오전 7시 14분, 김문조 고려대 교수는 필립 로즈데일 린든랩 CEO와 만났다. ‘세컨드라이프’(SL)라는 가상현실 공간에서다.

 만나기로 약속한 곳은 당초 ‘린든월드(Linden World)’였다. SL내 린든랩 사무실이다. 그러나 김 교수의 아바타가 네트워크 문제로 린든월드에 들어가지(텔레포트) 못했다. 그러자 로즈데일 CEO는 개인 사무실인 ‘린든 빌리지-필립의 숲(Linden World-Philip’s Forest)’으로 김 교수를 초청했다. 필립 로즈데일은 숲 한가운데의 공터에 서 있다가 김 교수를 맞이했다. 공터엔 의자 등 간단한 가구와 각종 아이템들이 놓여 있었다.

 

 로즈데일:안녕하세요.

 김:안녕하십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여러 일로 매우 바쁘다고 들었습니다.

 로즈데일:네, 그렇지만 괜찮습니다. 일단 앉으시죠, 의자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김 교수의 아바타가 안내에 따라 의자 하나에 앉자 로즈데일 CEO도 한가운데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김 교수의 질문을 시작으로 둘은 대화를 시작했다. 첫 만남인데도 김 교수의 물음은 공격적이었다.)

 

 ◇“우리는 가상현실로 가는 여정의 아주 초기에 있습니다.”

 김:사용자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지만 세컨드라이프도 결국 일종의 ‘거품’이라는 우려와 지적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2007년 9월 12일 현재 세컨드라이프 주민은 총 944만3211명으로 지난 1월 초 230여만명에 비해 네배 이상 늘어났다. 하지만 최근 두달간 이용자 수는 154만5613명 뿐이다. 이런 사실 때문에 SL을 논할 땐 항상 데드유저(Dead User) 문제가 불거진다. 데드유저는 호기심 때문에 아바타를 만들었지만 잠깐 둘러보고 더 이상 접속하지 않는 사용자다. 김 교수는 이를 지적했다.)

 로즈데일:실제로 중복 방문자를 제외한 순 방문자(유니크 유저)와 SL 사용 시간이 매월 늘고 있습니다. 물론 SL을 시작했던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SL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90년대 초 인터넷도 마찬가지였죠. 전 우리가 더 쉽게 SL을 사용할 수 있게 하면서도 SL을 더욱 매력적이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린 그런 여정(journey)의 아주 초기에 있는 것이죠.

 김:지금 주민 수가 얼마나 되나요.

 로즈데일:매일 약 20만명이 SL에 로그인합니다. 이런 수치는 전체 주민 수 말고도 SL 전체 커뮤니티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일 것입니다. 그들은 평균적으로 하루 네시간을 이 곳에서 보냅니다. 하루에 80만 시간이라는 건 정말 엄청나죠.

 김:사용자의 국적은 어떻습니까.

 로즈데일:SL이 국제적으로 되어가는 게 놀랍습니다. 모든 사람이 함께 하나의 가상 세계에 있어 국적은 더 이상 큰 이슈가 되지 못합니다. 예를 들자면 브라질 사람이 한국인에게 옷을 파는 식이죠. 그 결과 우리는 세계를 훨씬 작게 만들고 있으며 그 점에 매우 고무되었습니다. SL 사용자의 약 70%는 미국 밖에 있고 이 수치는 계속 높아지고 있지요.

 김:확실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국가 간, 혹은 문화 간 차이점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자면 한국인은 실제 삶에 기반한 가상현실보다 판타지 게임을 기반으로 한 가상현실에 더 관심을 갖는 것처럼 보입니다.

 로즈데일:그렇습니다. 문화적인 차이점은 확실히 존재합니다. 그래서 SL은 게임이 아니라 웹(web)처럼 하나의 플랫폼이라고 강조하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3D와 관련된 것을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더 게임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 때문에 한국에서 SL이 플랫폼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약간 더 어려운 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SL의 핵심은 사람들이 뭔가를 창조하고 부가적으로 돈을 벌 수 있도록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은 어디서나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한국에서도 (SL 관련 사업을) 잘 할 수 있길 희망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분명히 배워야 할 것이 많겠죠.

 

 ◇“세상은 유니버스에서 메타버스로 변하고 있습니다.” “개인화를 가중시키는 기술 트렌드를 역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저는 이 세상이 유니버스(universe)에서 메타버스(metaverse)로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의하시나요?

 로즈데일:물론입니다. 요새 우리가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은 사고(思考)와 아이디어의 결합에서 나온 것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상 세계는 현실 세계에 발전상(improvements)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점점 더 빠르게 메타버스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수천명의 IBM 직원이 SL에서 회의를 하는 것은 실제 세계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다니는 것보다 훨씬 낫죠.

 김:정말 그렇습니다. 진보된(advanced) 메타버스의 특성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듣고 싶습니다.

 린든:네, 전 지금 아직 배포되지 않은 SL의 새 버전으로 당신과 대화하고 있습니다. 구름이나 수면의 빛 반사 등이 이전보다 훨씬 더 실제적이죠. 지금 말하는 도중에도 전 정말 아름다운 석양을 보고 있습니다. 머잖아 가상 세계는 현재 최고 수준의 영화들처럼 현실감이 높아질 겁니다.

 이제는 가상 세계가 실제 세계보다 여러 면에서 훨씬 더 나아질 수 있는 ‘초현실(hyper-real)’이 될 것이라는 점에 가상세계의 가치를 부여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SL에서 실제 세계와 조금 더 쉽게 소통할 수 있게 하는 많은 훌륭한 작업을 진행중이지요. 곧 제가 손에 들고 있으면 저의 팔동작을 그대로 아바타가 따라하게 하는 기기도 나올 것입니다.

 김:맞습니다. 제 나이가 쉰 일곱이지만 SL을 정말로 즐기고 있습니다.

 로즈데일:사실 나이가 많으신 분들도 점점 더 SL을 많이 사용하고 계시죠.

 김:인간 상호작용의 주요 패턴이 직접적인 면대면(Face to Face)에서 간접적인 ‘컴퓨터를 매개로 한 의사소통(Computer-Mediated Communication, CMC)’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른바 ‘아바타 매개 커뮤니케이션(avatar-mediated communication)’의 확산으로 그런 현상이 역전되는 징후를 보고 있진 않으신가요.

 로즈데일:그렇습니다. 저는 SL이 개인화(alone)를 가중시키는 기술 트렌드를 역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혼자 사용하는 웹이나 아이팟과 달리 가상 세계는 항상 다른 사람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교수님 말에 정말로 공감합니다.

 김:SL의 가장 뛰어난 점은 간접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을 (직접적인 상호작용으로) 역전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SL에 ‘속삭이기’와 ‘외치기’ 같은 거리 개념이 있는 게 아주 마음에 듭니다. (SL내에서 주변 사람과 대화하는 방법은 속삭이기, 말하기, 외치기 등으로 나뉜다. 속삭이기는 사용자 반경 10m까지 전달되며 말하기는 20m, 외치기는 100m까지 들린다.)

 로즈데일:네, 실제 세상에는 없는 미묘한 의사소통 옵션이 SL에는 존재하지요.

 

 ◇“여러 가지 도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실제 세계와 가상 세계의 융합(convergence)이 점점 강화되고 있습니다. 그런 하이브리드(hybrid) 세상에선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습니까.

 로즈데일: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김:기술적인 문제나 기존의 사회 제도가 융합 세계를 쫓아가지 못하는 현상, 윤리적이거나 심리적인 문제를 예로 들수 있겠지요.

 로즈데일:여러 가지 도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가상 세계의 완전한 가능성을 아주 천천히 이해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SL의 최종적인 단계에서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가?

 로즈데일:네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많은 점진적인 변화의 단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욱 현실감이 높아진 그래픽, SL내부에서의 웹과의 통합 등이 그런 예들이겠죠. 일단은 버그를 줄이고 플랫폼을 안정화시켜야 합니다. 현재로선 그게 우리의 최우선 과제입니다.

 김:알겠습니다. 앞으로 있을 의욕적인 작업을 기대하겠습니다.

 로즈데일:감사합니다.

 (로즈데일 CEO는 이후 김 교수와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접속을 끊고 눈앞에서 사라졌다. 김 교수는 눈앞에서 아바타가 바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전에 사람이 사라져버렸다”며 “가상 세계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것도 다른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리=최순욱기자@전자신문, choisw@

 ◆대담에 등장한 주요 개념◆

 1. 메타버스(Metaverse)와 유니버스(Universe)

 온라인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메타버스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아바타나 소프트웨어를 통해 사회적·경제적인 인간 상호 작용이 이뤄지는 환경이다. 메타버스는 물리적인 한계를 상정하지 않는다. 닐 스테프슨의 1992년작 소설 ‘스노우크래시(Snow Crash)’에 처음 등장했다. 최근엔 워크래프트 온라인, 세컨드라이프 등 몰입도가 높은 3차원(3D) 게임, 가상현실의 이상적인 형태로 비유된다. 닐 스테프슨은 메타버스를 △많은 사람이 접속하기 위해 대기하며 △개인에 따라 접속 수준이 다르고 △아바타를 통해 면대면 수준의 의사소통을 할 수 있으며 △특정 프로토콜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된 △현실 세계의 권력구조를 재편한 공간으로 묘사했다.

‘메타(상위)’라는 접두어가 나타내듯 현실 세계 외 다층적인 세계도 의미한다. 세계는 하나가 아니라는 가정 하에 각 세계의 총체를 메타버스라고 부른다. 워쇼스키 형제의 영화 1999년작 ‘매트릭스’의 매트릭스, 장자 ‘제물론’ 편의 ‘호접몽’ 개념과 유사하다.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는 머리에 꽂은 전극으로 네트워크에 접속, 현실과는 다른 나를 구현한다. 낮잠에서 깬 후 장주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꾼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는 것도 하나가 아닌 다층적인 세계를 암시한다.

 유니버스는 메타버스와 반대되는, 하나의 세계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유니버스에서 한 개체는 하나의 삶을 영위한다.

 

 2. 면대면 커뮤니케이션, 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CMC), 아바타 매개 커뮤니케이션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은 대화, 손짓·발짓 등 인간 사이에 직접적으로 이뤄지는 의사소통 형태다. 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상태의 의사소통이라고 본다. 일부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은 봉화, 편지, 전신, 전화 등 모든 기술, 통신수단의 발전이 시공간의 장애를 극복하고 면대면 커뮤니케이션과 같은 수준의 의사소통을 달성하는 것으로 본다.

 CMC는 컴퓨터, 혹은 정보통신기술을 통해 인간 간 의사소통의 핵심 과정이 이뤄지는 것을 뜻한다. 좁게는 실제 인간 사이의 정보 교환만 의미하며 넓게는 데이터베이스·웹·인터넷 접속 등 모든 종류의 컴퓨터 관련 정보조작을 포함한다.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에 비해 시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는 장점이 있다. 인간 간 상호작용 외 인간과 컴퓨터 사이의 상호작용도 의사소통 결과의 중요한 요인이 된다. 익명성·사회적 맥락의 부재도 특징이다.

 ‘아바타 매개 커뮤니케이션’은 아바타를 사용한 의사소통 형태다. CMC는 간접적인 의사소통이지만 아바타 관련 기술이 발전해 현실감이 더해질수록 직접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 김문조 교수는 “아바타 매개 커뮤니케이션은 간접적인 의사소통 형태를 직접적인 형태로 전환시킬 잠재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김문조 교수의 대담 후기

 필립 로즈데일 CEO는 상당히 기술 지향적인 사람이다. SL이라는 세계에 지속적으로 신기술을 적용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디스토피아(Distopia)보다 유토피아(Utopia)를 지향했다. 가상 현실과 실제 현실의 융합이 불러올 문제점에 대해선 방어적이었다. 우리 둘이 약간의 의견 충돌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이야 단순한 대화만 나눴지만 e러닝·원격진료 등에 가상 현실의 가능성이 무한할 것이라고 느꼈다. 대화할 때 그의 나이와 같이 현실 세계의 선입견을 전혀 가질 수 없었다. 아바타를 통해 오히려 선입견을 배제하고 진솔한 인간 대 인간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것 또한 가상현실의 가능성이다.

 가상현실이 현실 세계를 완벽히 대체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맛과 같은 인간의 감각을 기계가 대체할 수 있겠는가. 가상현실에 대한 인식을 현실세계에 대한 인식과 완전히 동질화시키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많은 미디어가 SL의 경제적 가치에 초점을 맞추지만 가상현실은 분명히 사회·문화적인 변화도 일으킨다. 경제적인 가치 외에도 관심을 갖고 지켜 봤으면 한다.

◇필립 로즈데일(Philip Rosedale) 린든랩 설립자 겸 CEO

 1968년생. 어렸을 때부터 전자 기술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컴퓨터를 조립했다. 고교 재학시엔 데이타베이스(DB) 회사도 차렸다. UC샌디에이고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1995년에 개발한 프리뷰(FreeVue)라는 웹컨퍼런싱 SW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듬해 스트리밍 솔루션 업체 ‘리얼네트웍스’에 회사를 넘기고 부사장 겸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일했다. 리얼비디오, 리얼시스템 등 각종 스트리밍 솔루션을 개발했다.

 1999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린든랩을 설립해 가상현실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2006년엔 IT전문잡지 와이어드로부터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어 낸 사람에게 주는 ‘레이브 어워드(Rave Award)’를 받았다. 2007년 타임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100인’에도 뽑혔다.

 ◇김문조 고려대학과 사회학과 교수

 1951년생.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했으나 사회현상과 변화로까지 관심 영역을 확대해 석사 전공을 사회학으로 바꿨다. 1982년 미 조지아대에서 산업사회론으로 박사를 취득해 줄독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사회조사연구실장, 언어정보연구소 연구부장, 나라정책연구회장 등 다양한 직책을 역임하며 한국 사회학의 석학으로써 맹렬하게 활동하고 있다.

 2000년대를 전후해 사이버 시대의 특성과 동학·삶의 질 등 디지털 기술과 사회변화의 관계를 집중 탐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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