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R&D센터 `옥석` 가려진다

 국내에 연구개발(R&D)센터를 설립한 다국적 컴퓨팅업체가 최근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생색내기용 R&D센터라는 비판에서 한발 비켜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국적 컴퓨팅업체는 그동안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시절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R&D센터 유치에 호응해 국내에 우후죽순으로 R&D센터를 설립했으나, 이후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하면서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최근 BEA시스템즈 등 일부 업체를 중심으로 R&D 성과물을 내놓고 글로벌 R&D센터와 협력관계를 강화하면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이와 함께 SAP 등 R&D센터 설립 이후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업체도 하루빨리 국내에 투자를 강화해 R&D센터 본연의 기능을 살려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말 국내에 R&D센터를 설립한 BEA시스템즈는 R&D센터 개소 8개월여 만에 차세대 통신 플랫폼 ‘서비스딜리버리플랫폼(SDP)’을 개발했다. SDP는 통신사업자가 서비스 가입자에게 기존 인프라와 IMS(IP Multimedia System) 인프라를 기반으로 다양한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신속하게 제공하는 차세대 플랫폼이다.

 김형래 BEA시스템즈코리아 사장은 “SDP와 같은 R&D의 개발 성과물을 파트너사와 협력해 실제로 시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SOA 리더스 랩’을 개설했다”며 “R&D센터로 실질적인 R&D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국내 주요 솔루션 기업 및 대학교와 정부 산하 연구 기관과의 협력 관계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IBM은 지난 2004년 설립한 유비쿼터스컴퓨팅랩(UCL)으로 텔레매틱스·임베디드SW·전자태그(RFID) 3개의 선도기반 기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국제 공동연구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정태 UCL 소장은 “UCL을 이용해 개발한 성과물을 u시티 등 국내 유수 업체와의 협업으로 발전시키고 있다”며 “최근에는 u헬스케어 분야의 연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한국오라클 첨단기술연구소’라는 문패로 R&D센터의 문을 연 오라클은 이를 통해 임베디드SW를 중점적으로 개발, 국내 제조업체는 물론이고 솔루션업체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또 삼성전자·이루온·인프라밸리·뉴로테크 등의 솔루션 업체와 통신 산업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솔루션을 네트워크 장비에 내장하는 데 협력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권기식 한국오라클 첨단기술연구소장은 “국내에 R&D센터를 설립한 다국적 컴퓨팅업체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면서 아시아·태평양지역 R&D 거점의 가능성을 높여가고 있다”며 “이는 외국계 컴퓨팅업계가 중국과 인도로 아·태지역 R&D의 무게 중심을 옮겨가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가 이들 국가와 경쟁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도 상당수 업체가 R&D센터를 거친 구체적인 성과물들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국내 R&D센터에 인적·물적 투자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SAP는 지난 2005년 국내에 R&D센터를 설립했지만 지금까지 어떠한 연구 성과물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간판은 R&D센터지만 속내용을 들여다보면 고객지원용 서비스센터에 가깝다. 한국HP도 본사 사옥에 한국 R&D 연구소와 전시장을 개소했지만, 아무런 성과물을 내놓지 못했다.

 익명을 요구한 다국적기업 R&D센터 고위관계자는 “간판만 R&D센터지 국내 고객 지원을 위한 서비스센터와 같은 R&D센터도 적지 않다”며 “특히 최근 인텔과 같은 대형 IT기업이 국내 R&D센터를 철수하면서 일각에서는 국내 R&D센터의 회의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R&D 유치뿐만 아니라 관리에도 신경써야 한다”며 “지사장도 본사와 커뮤니케이션으로 한국 시장에 메리트를 부각시켜 R&D 투자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익종기자@전자신문, i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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