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혁명은 시작됐다]4부 요소기술이 관건이다⑤로봇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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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로봇이란 새로운 산업의 탄생시점에 와 있다.” 올초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회장의 로봇예찬이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SW기업이 왜 로봇을 띄우는지 사람들은 어리둥절했지만 의문은 금새 풀렸다. 빌 게이츠의 눈에는 로봇이 컴퓨터를 대체할 거대한 SW시장으로 보였던 것이다. 

 로봇의 정의에 대한 가장 교과서적인 모범답안을 하나만 골라보자. 과반수 로봇전문가들은 ‘다양한 작업 수행을 위해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다기능 매니퓰레이터’(Schlussel, 1985)라고 답할 것이다. 즉 SW로 제어되는 다기능 기계가 로봇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SW의 탑재여부는 지능을 갖춘 로봇과 일반 기계장비를 구분하는데 중요한 기준이다.

 로봇을 제어하는 SW는 현대 로봇의 역사와 함께 시작됐다. 초창기 산업용 로봇은 로봇팔의 위치·속도·타이밍을 적절히 맞추기 위해 어셈블리나 C언어로 일일히 프로그램을 짜는 성가신 작업이 필요했다. 그나마 로봇제조사마다 제어방식이 다른 까닭에 로봇SW도 호환성이 떨어졌다. 당연히 서로 다른 회사의 로봇장비를 혼용하기란 매우 어려웠지만 각 로봇회사의 기술자들이 밤새워 프로그램 작업을 해준 덕택에 자동화 생산라인은 그럭저럭 돌아갔다.

 많은 로봇연구실에서 새로운 로봇 플랫폼을 개발할 때도 SW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연구용 로봇이란 한두대 만들어서 기술력만 인정받으면 됐기에 로봇SW를 어떻게 짜든지 확장성이나 호환성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결국 로봇SW의 종류는 세상의 로봇기업 숫자만큼 꾸역꾸역 늘어났고 로봇산업의 발전에 심각한 걸림돌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중소 로봇기업들은 갈수록 복잡해지는 로봇SW수요를 따라잡는데 인력과 시간, 예산의 한계에 부딪혔다. 새로운 로봇제품을 개발할 때마다 다른 회사에서 이미 완성한 SW코드를 사용 못하고 처음부터 프로그램을 다시 하는 악순환이 거듭됐다. 마치 각 개인이 인터넷 접속을 위해 직접 웹브라우저를 개발하고 문서작성을 하려고 워드프로그램까지 만들어야 하는 듯한 상황이었다. 이같은 SW부문의 비효율성 때문에 가끔 TV뉴스에서 나오던 신기한 로봇제품의 상용화는 극히 지지부진했다. 반면 SW표준이 마련된 PC와 인터넷은 지구차원의 폭발적 성장세를 거듭했다. 결국 2000년 이후 로봇분야에서도 새로이 통합된 SW플랫폼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외국의 로봇SW 현황=일본과 유럽의 경우 정부주도의 로봇SW 개발이 활발하다. 문제는 산업용을 제외한 지능형 로봇의 출시가 활발하지 못해 수준 높은 로봇SW 규격이 개발돼도 산업계 파급속도가 느리다는 것. 미국은 거대한 로봇시장과 R&D수요를 바탕으로 Saphira, TCA, Player/Stage 등 다양한 로봇SW플랫폼이 일찍부터 개발돼 상용화되고 있다.

 이중 미국의 에볼루션 로보틱스(ER)사는 지난 2004년 ERSP라는 모바일 로봇SW개발툴을 선보여 로봇개발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ERSP는 그동안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했던 비전기반의 모바일로봇 제어를 간단한 프로그램작업으로 구현해 지능형 로봇개발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MS는 지난해 12월 윈도 전용의 로봇SW 개발툴인 ‘MS 로보틱스 스튜디오(MSRS) 1.0’을 발표하면서 로봇시장에 진출했다. MSRS는 PC시장에 이어 로봇시장에도 윈도OS를 보급하려는 MS의 전략적 포석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MSRS의 기술수준이 생각보다 높지 않고 미국, 한국기업을 제외하면 채택사례도 거의 없다며 냉소적이다. 그러나 과거 MS-DOS, 윈도OS도 꾸준한 성능개선과 마케팅 공세로 결국 세계시장을 석권한 전례를 볼 때 MSRS가 로봇SW시장의 표준을 주도할 가능성은 적지 않다.

 MS는 특히 한국을 가장 중요한 로봇SW 해외시장으로 보고 우선 다음달부터 국내 MS개발자 10만여명에게 MSRS를 보급시켜 1인 1로봇 개발시대를 앞당긴다는 계획이다. 김영준 MS로보틱스 사업부 수석은 “2010년경이면 미니홈피를 관리하듯 일반인도 MSRS로 손쉽게 로봇기능을 짜맞추는 시기가 온다”면서 “로봇SW개발의 대중화는 국내 로봇산업 활성화에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국내 로봇SW 개발 현황=우리나라 최초의 로봇SW 개발은 지난 2001년 산자부 주도로 처음 시작돼 경쟁국과 비교해도 앞선 편이다. 또한 로봇의 주요 기능을 외부서버로 분산시키는 네트워크 로봇이 등장한 덕택에 로봇과 서버간 통신방식, SW플랫폼 등의 표준을 하나로 통합시킨 ‘RUPI(Robot Platform Unified Initiative)’개발사업을 정통부가 진행 중이다. 정통부는 RUPI의 소스코드를 공개해 누구나 자유롭게 로봇SW를 개작하도록 허용하고 민간기업의 참여를 유도할 예정이다. 산자부도 SPIRE(SW Platform Initiative for Robotics Engineering)란 로봇SW 플랫폼 사업의 하반기 추진을 검토하는 상황이다. 현재 정통부와 산자부는 서로 비슷한 로봇SW 개발사업을 벌인다는 우려를 씻기 위해 사업계획을 상호 조율 중이다. 이밖에 정부의 연구과제로 생기연과 KIST가 로봇SW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로봇SW분야는 미국, 일본도 최근에야 본격적인 사업화를 시작했기 때문에 한국과 기술격차가 크지 않다. 완성도 높은 국산 로봇SW플랫폼이 등장할 경우 로봇산업이 서비스, 콘텐츠 중심으로 바뀌면서 외국에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로봇개발시 중복투자와 시간, 사업리스크도 크게 줄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박홍성 강원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한국 로봇SW분야의 최대 취약점으로 전문인력의 부족을 지적한다. 로봇 공학자들은 로봇을 제어하는 고급 SW 개발에 흥미가 없고 SW 전문가는 여러개의 로봇모터를 실시간 제어하는데 익숙치 않다는 것. 빌 게이츠의 예언이 맞다면 로봇과 SW기술을 모두 이해하는 전문가 집단이 새로운 골드칼라로 부상할 날도 머지 않았다.

 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

[인터뷰]서일홍 한양대 교수

 “앞으로 SW가 지능형 로봇산업의 향방을 좌우하게 될 겁니다.”

 서일홍 한양대 정보통신학부 교수(52)는 한국이 로봇SW에 일찍 뛰어들었기 때문에 미국, 일본에 비해 뒤질 것이 없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만든 로봇SW도 완성도만 높다면 세계 로봇업계의 표준을 이끌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정통부의 RUPI사업을 총괄하는 그는 “RUPI는 로봇과 컴퓨터를 연결하는 네트워크 로봇을 위한 SW플랫폼 개발에 촛점을 맞췄습니다. 미국과 달리 로봇의 통신의존도가 높은 한국상황에 들어맞는 로봇SW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특히 MS가 로봇시장 진출에 대해 너무 국수적으로 배척할 필요도 없지만 맹목적 추종도 곤란하다고 지적한다. “MS와 같은 공룡기업이 로봇SW시장에 진출하면서 PC시장에 이어 로봇분야도 독과점이 우려됩니다. 외산 로봇SW의 장점은 취하고 우리가 앞설 수 있는 분야에 개발역량을 집중시켜 로봇SW의 국제경쟁력을 높여가야 합니다.”

 서 교수는 과거 PC와 인터넷 보급에서 SW표준이 미친 영향을 거론하면서 한국이 로봇SW표준을 신속히 확립하는 것이 지능형 로봇시장을 선점하는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HTTP, HTML이란 SW표준이 없었으면 인터넷의 폭발적 확산이 불가능했듯이 전세계의 지능형 로봇을 묶는 로봇SW의 표준플랫폼을 만들면 우리도 로봇시장을 선도할 수 있어요.” 그는 로봇분야에 뛰어드는 후배들에게 시연효과에 유리한 HW개발에만 쏠리지 말라고 당부한다. “로봇은 지능을 갖춘 기계이기 때문에 SW와 HW기술의 조화가 중요합니다. 로봇SW 전문인력의 체계적 양성을 시작할 때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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