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LPL의 아량

 “이제 고스란히 앉아서 죽을 판입니다.”

요즘 장비업계는 한마디로 비상이다. 반도체·LCD업체들이 당초 투자계획을 축소하면서 연일 대책회의가 한창이다. 설비투자가 바로 매출로 직결되는 이들은 투자계획 철회가 ‘사형선고’나 다름없다고 하소연 한다.

지난 주 설마했던 LG필립스LCD의 5.5세대 투자 철회가 현실화되자 위기감은 정점에 달했다. 특히 지난해 구두 발주를 받고 장비를 미리 만든 업체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미 만든 장비들이 고철 덩어리로 전락할 신세에 놓였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몇몇 관계자는 전화와 e메일로 ‘대기업의 횡포’를 흥분된 목소리로 고발하기도 했다. ‘영원한 을’일 수밖에 없는 이들은 제3자에게 불만을 털어놓는 것 말고는 아무런 대안이 없다고 고백했다. 5.5세대 대신 차세대 설비투자에서 일종의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자위할 뿐이었다.

LPL의 투자 철회는 장비업체뿐 아니라 이들에게 부품을 공급하는 2차, 3차 벤더에도 미치고 있다. 장비 대금을 받지 못한 장비업체들이 대금 결재를 미루면서 영세한 부품업체들은 그야말로 생사의 기로에 놓인 상태다.

LPL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5.5세대와 관련해 정식 발주(PO)를 낸 곳은 단 한곳도 없다. PO를 받지 않은 장비업체들이 자의적으로 판단해 미리 장비를 만들어 놓아 벌어진 사태다. LPL로서는 법적 의무나 책임은 없지만 자칫 비난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세계 LCD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글로벌 기업에 지워진 굴레다.

어려울때 일수록 나누라는 말이 있다. 진정한 상생도 위기에 발휘된다. 지금은 서로 한 발씩 양보해 나중에 더 큰 떡을 나눌 수 있는 힘을 모을 때다. ‘상생’의 모범으로 꼽혀온 LPL과 협력사들이 이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지혜를 발휘할지 궁금해진다.

장지영기자@전자신문, jya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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