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IT코리아 2.0](2부)M2M을 향해­⑦공간 확장

 해외 출장을 간 남편이 휴대폰으로 백화점에 진열된 속옷을 보여주며 서울에 있는 아내에게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라며 통화한다. 서울에서 파리, 뉴욕, 런던 등 세계 곳곳의 친구들과 익살스럽고 은밀한 동영상을 1 대 1로 주고받는다.

 3세대 이동통신서비스(WCDMA)가 활성화되면서 TV에 등장한 광고 그대로 할 수 있다. 아직 2세대 음성통화(CDMA)처럼 일상적이지는 않지만, 회사 임직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신기한(?) 동영상 통화기능을 주변에 자랑하는 조영주 KTF 사장과 같은 이들의 노력으로 상황은 조금씩 바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얼굴 마주보며 통화하는 장면은 지난 93년 ‘정보통신 고속도로’ 개념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IT 정책입안자들과 산업계가 품은 꿈이자 목표였다. 이 같은 목표가 ‘2010년 광대역융합망(BcN) 구축’으로 구체화했고, “무선통신 인프라를 통해 공간적 제약에서 풀려나야 한다”는 게 현직 정보통신부 장관의 시각이다. BcN을 통한 공간 확장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추진할 것인가.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휴대인터넷(와이브로) 등이 공간 장벽을 없애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정보통신부가 IT 정책 화두로 끌어안은 ‘디지털 희망 한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무선통신 인프라를 갖춰 유무선 통신을 통합하기 전에는 진정한 ‘언제 어디서나’를 구현할 수 없으며, 무선통신을 통해 공간적 제약에서 풀려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참여정부가 넘길 IT 정책 바통과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게 정해진 상태다. ‘IT로 국가 아젠다를 해결하자’는 정책적 비전도 바통에 한 꾸러미로 묶일 것이다.

 우리나라 IT 정책 주파수는 ‘2010년 BcN 구축 계획’에 맞춰져 있다. 노준형 정통부 장관은 이와 관련, “지난 2005년 시작된 BcN구축 계획이 아직까지는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며 “이 계획이 마무리되는 2010년부터는 국민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초고속 통신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통부는 이를 위해 매년 7조원 이상(민간 투자유치 포함) 쏟아부을 계획이다. 그 투자의 중심에 무선통신 인프라가 있다. 3.5세대 이동통신서비스(HSDPA), 와이브로, DMB 등이 일종의 도약대인 셈이다.

 정통부는 이 같은 IT 정책 나침반을 손에 든 채 언제 어디서나 일할 수 있기 때문에 공간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 즉 정보화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게 시대적·획기적 변화를 이루어낼 것으로 확신한다. 이 확신을 향한 길에 건너야 할 징검다리들이 바로 △통신방송융합 현상 대응 △디지털TV 방송 활성화 △통신시장 규제 완화 △DMB와 와이브로의 세계 확산 등이다. 궁극적으로 통신·방송서비스 사업자들이 융합 현상에 대응할 기간을 주고, 정부의 규제를 예측 가능토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정통부의 ‘예측 가능한 정부 규제’는 시장 자율성을 높이되 공정 경쟁을 촉진하겠다는 정책적 의지로 연결된다. 치열하지만 공정한 경쟁을 통해 질서를 스스로 잡아가는 시장환경을 조성하되 시장 지배력을 악용한 ‘소비자 약탈’이나 ‘가격 담합’ 등을 감시·응징하겠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자동차 기술이 발전한 것은 ‘아우토반’이라는 속도제한 없는 고속도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우토반을 일상적으로 이용하다 보니 빠르면서도 안전도가 뛰어난 자동차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IT 경쟁력도 다른나라에 앞서 보급한 초고속인터넷망과 같은 인프라 차별화로부터 비롯됐다.”

 노준형 정통부 장관의 지론이다. 그는 유럽국가들이 2세대 이동통신서비스(GSM)에 안주하고 있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다음 단계인 2.5세대망(cdma 1x)을 광범위하게 깔았던 정부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유럽과 일본이 WCDMA 서비스에 매달릴때 우리가 한발 앞서 HSDPA 서비스를 시작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를 통해 선진국 뒤통수만 바라보며 따라잡으려 안간힘(catch-up)을 쓰던 데서 벗어나 와이브로, DMB 등을 세계에 처음 내보이고 먼저 뛰어나갈 수 있게 됐다는 것. 하지만 노 장관은 “지금까지 해온 것은 전환기에 해당한다. 이제부터는 IT가 수출·성장·고용 등 경제발전의 밑거름일 뿐만 아니라 정치·사회·문화로 영역을 넓혀 더욱 크고 중요한 역할을 할 때”라고 힘주어 말했다.

 노준형 장관은 “이미 휴대폰·인터넷을 빼면 거의 일을 할 수 없게 됐을 정도로 IT가 생활 깊숙이 들어왔다”며 “방송통신 융합과 같은 변화를 잘 이해하고 대응해야 하며,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변화하는 IT 역기능에 대처할 정책 과제를 수립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은용기자@전자신문, eylee@

◆메가트렌드-휴대전화로 고삐풀린 공간

: 황주성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jshwang@kisdi.re.kr

 스위스계 글로벌 금융회사의 한 TV광고에는 뉴욕 중심가의 상점이 4시간마다 베이커리-부티크-까페 등으로 비즈니스모델을 바꾸는 미래상이 나온다. 아직은 낯선 이러한 다중적 공간을 우리는 이미 매일 경험하고 있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3G·와이브로의 보급으로 이동통신은 우리의 삶을 보다 다이내믹하게 만들고 있지만, 휴대전화는 이미 인간사회에 획기적 변화를 주었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공간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전기통신의 발달 이후 인간은 거리를 초월하여 교통과 정보를 주고받아 왔지만 통신 사각지대를 피할 수 없었다. 휴대폰의 등장은 ‘이동 중의 연결성’을 제공함으로써 인간이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시공을 관리하게 되는 모바일 사회를 도래시켰다.

 우선 시공을 조직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대략의 지역 또는 시간대만 정하고도 이동 중에 통신을 통해 접점을 정해가는 ‘유연한 만남’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지하철에서 “전역이거든, 이번 열차 2-3칸에 타”라는 007식 랑데뷰도 이미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사전 약속에 구애받지 않고 순간순간의 상황에 따라 우선순위를 변화시키고 이에 따라 일정을 조정해나가는 ‘실시간 생활양식’이 보편화되고 있다.

 핀란드의 사회학자 코포마는 이동통신에 의한 미시적 조정이 고도화될 경우 일상생활의 여러 부분들이 마치 한편의 매스게임처럼 ‘끊임없는 연속적 흐름’으로 짜여질 수도 있다고 했다.

 이동통신이 인간을 공간으로부터 해방시킨 또 다른 측면은 근대적 공간 개념을 해체한 것이다. 근대화는 특정한 기능이나 활동을 위한 전용공간을 분화시켰다. 집·사무실·식당·커피숍 등은 그 속에서 특정한 활동과 상호작용을 요구함으로써 장소성을 띠게 된다. 하지만 이제 공간의 장소화가 원격에서 이루어짐으로써 동일한 공간에서 서로 다른 장소성이 발현될 수 있게 되었다. 레스토랑은 친구와의 통화중에는 사교 배경장소가 되고 커피숍은 무선랜으로 회사에 접속하는 동안에는 일종의 위성사무실로 전환될 수 있다. 미래에 뉴욕의 도심상점이 보여줄 다중적 공간을 우리는 이미 이동통신에 접하는 순간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사회관계 형성에서도 휴대폰의 영향은 적지 않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연고에 의존하는 전통적 관계 못지 않게 언제든 필요에 따라 즉각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모바일 친구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있다. 특히 문자메시지는 일상생활 중 통신을 하기 어려운 시간, 즉 이동·회의·영화관람 중과 같은 통신의 공백기에도 연락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숨·미소·눈짓 등 이모티콘이나 간단한 단어를 통해 연결도 단절도 아닌 ‘가상적 공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나날이 발전하는 이동통신은 인간에게 보다 많은 자유와 풍요로움을 주고 있다. 개인정보의 유출 등 부작용에 대비하면서, 모바일사회가 일구어 나갈 미래사회상에 대해 보다 입체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해나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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