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 20일은 측정의 날이다. 이날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측정의 날이 정해진 때가 비교적 최근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국제도량형국이 총회를 열어 1875년 파리에서 미터 협약에 17개국이 서명한 날을 기려 이날을 측정의 날로 정하기로 결의했다. 우리나라는 1959년 서른 여섯 번째로 가입했다. 지난 1월 기준 회원국은 51개, 준회원국은 22개로 거의 모든 주요 국가들이 서명, 참여하고 있다.
이 협약에 의해 국제도량형국이 파리에 세워졌고 4년마다 국제도량형 총회가 열리고 있다. 올해 23차가 예정돼 있으며, 각국 대표가 참석해 측정의 단위와 관련된 주요 사항을 논의하고 결정한다.
사실 측정이라고 하면 대다수의 일반 사람은 도량형을 떠올린다. 도량형의 도는 길이, 량은 부피 그리고 형은 무게를 뜻하는 것이다.
도량형과 관련된 역사를 살펴보면 초기에는 상거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잣대를 통일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또 다른 목적은 조세의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오랜 옛날에는 동서양의 교역이 그렇게 활발하지 않아 도량형의 차이로 인한 불편이 그렇게 크지 않았으나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국제적인 교역이 활성화되자 전 세계적인 단위의 통일이 필요하게 됐다. 여기에는 야드-파운드 단위가 십진법이 아니라는 불편함도 같이 작용했다. 이것이 미터 협약이 체결된 배경이다.
사실 측정학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도량형의 통일은 첫걸음에 불과하다. 20세기에 들어서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함에 따라 얼마나 정확하게 잴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주요 관건이 되면서 측정은 정밀도와 정확도를 따지게 됐다. 정확한 측정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일찍부터 산업화를 이룬 나라들은 국가측정표준을 담당하는 표준기관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설립했다.
대체로 선진국의 표준기관은 그 역사가 100년 안팎이 된다. 우리나라는 1975년에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설립되면서 국가측정표준을 담당하는 기관이 탄생했으니 선진국들보다는 족히 75년 정도 늦은 것이다.
측정표준기관들의 역할은 주로 물리표준, 즉 기본단위라고 일컬어지는 7개 단위의 측정표준을 확립하고 이를 자국 내에 보급함으로써 측정의 국가적 일관성을 이루는 데 있었다. 7개 단위는 길이(m)·질량(㎏)·전류(A)·시간(s)·온도(K)·몰(mol) 그리고 광도(㏅) 단위로서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정문의 7개 기둥이 이것을 상징한다. 이 단위 체계는 국제적으로 SI 단위계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기술과 학문의 발전에 따라 측정 수요가 확장되면서 환경, 보건 및 의료 그리고 안전 등의 분야에서 측정의 신뢰도가 중요해지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이 분야의 측정표준을 확립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증가했다. 이러한 경향은 이미 국제도량형국의 활동이나 국제도량형 총회의 의결사항에서 읽을 수 있다. 올해 측정의 날 주제가 ‘환경과 측정’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측정은 과학의 최전선이다. 과학의 영역에 들어오는지 아닌지를 가름하는 경계는 측정이 되는지 안 되는지에 달려 있다.
과학의 연구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은 없다. 다만 방법이 과학적이냐 아니냐에 따라 그 관찰 결과를 믿을 수 있는지가 판가름난다. 그 첫걸음이 측정이다.
실제로 미국의 표준기관인 NIST는 21세기 1분기에 가장 큰 기술 혁신을 가져올 나노 기술의 성패가 측정기술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측정 신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임무를 띠고 있으므로 과학의 첨병인 셈이다.
측정의 날을 맞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미션 또한 국민의 행복과 복지 지향이다. 물리 표준 중심이던 조직체계를 삶의 질과 관련한 영역의 측정 표준으로 바꾼 이유다.
측정 표준이야말로 삶의 질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방건웅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국제협력실장 gwbahng@kriss.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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