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전기통신기초기술연구소(ATR)
인간과 로봇이 서로 이해하고 공존하려면 어떤 형태의 로봇이 가장 유리할까. 일본 교토 인근에 위치한 국제전기통신기초기술연구소(ATR)는 이 같은 질문에 근접한 답을 찾기 위해 인간과 로봇을 연결하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왔다.
일본 관서지방 과학연구의 중심지인 게이한나(京阪奈) 과학도시는 지명을 각각 따온 교토·오사카·나라의 중간지점에 있다. 국제전기통신기초기술연구소(ATR)는 지난 89년 당시 게이한나 과학도시에 처음 입주한 이후 IT 기초연구 분야에서 국제적 명성을 쌓아왔다. ATR은 본래 일본의 기간통신업체인 NTT산하의 민간 연구소로 출범했지만 현재는 일본정부 지분이 70%에 달해 정부출연연구소의 성격도 함께 갖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KT연구소와 KIST를 합쳐놓은 형태의 연구조직이라고 볼 수 있다. ATR는 총 8개 연구센터에서 330여명의 연구인력이 활동하고 있다. 이곳 연구원의 24%는 세계 각국에서 온 외국인이란 점도 특징이다. 일본 연구원의 글로벌화를 촉진하고 해외 과학기술계에 지일파를 양성하겠다는 포석인 셈이다. ATR가 추진하는 각종 연구계획은 모기업인 NTT의 영향을 받아 첨단 정보통신분야의 원천기술 확보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ATR은 기계적인 접근보다 IT기반의 정보 미디어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곳의 로봇연구는 ‘지능로봇 커뮤니케이션 연구센터(IRC)’가 총괄하고 있다.
*ATR의 대표적 로봇프로젝트
◇로보비= 지난 98년 ATR은 인간, 로봇 상호작용과 사회적 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로보비’라는 로봇플랫폼의 개발에 착수했다. 최신버전의 4세대 로보비는 대화기능과 부드러운 제스처는 물론 상대방과 눈을 직접 마주치며 각종 신체접촉에 민감히 반응하도록 센서까지 내장하고 있다. 또한 부드러운 실리콘 피부와 따뜻한 체온까지 갖추는 등 기계 로봇을 넘어 인간과 유사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실제 로보비를 접해본 사람들은 온갖 바디랭귀지를 적절히 구사하는 인간형 로봇의 대화능력에 크게 놀라곤 한다. 비록 기계지만 상대방에 관심을 갖고 아는 척 하는 로보비의 존재를 쉽게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정된 대화능력만 갖춘 기존 지능형 로봇과 크게 차별화되는 대목이다. 로보비는 이미 초등학교에 배치되어 학생들과 사귀고 전시장에서 불특정 다수와 대인관계를 넓히는 등 로봇도 사회적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 바 있다. IRC부문을 총괄하는 하기타 노리히로 센터장은 ‘로봇은 물리적으로 현존하는 미디어’라고 정의한다. 커뮤니케이션도구로서 로봇의 특성을 강조한 말이다.
◇제미노이드=지난해 IRC가 개발한 ‘제미노이드(Geminoid)’는 커뮤니케이션 로봇의 궁극적 형태로서 큰 주목을 끌었다. IRC의 히로시 이시구로 수석 연구원은 외모와 행동이 자신과 똑같은 복제판 로봇을 만들고 ‘제미노이드 HI-1’이라 명명했다. 이 로봇은 원격조정으로 입술과 뺨, 눈동자 등 미세한 얼굴근육은 물론 팔과 다리까지 움직이며 히로시의 육성까지 그대로 전달한다. 말하자면 제미노이드는 특정한 사람의 완벽한 분신(아바타)인 셈이다. 히로시 연구원은 “이 로봇은 마치 내 자신처럼 나의 존재를 대신할 것”이라며 “자신과 꼭 닮은 로봇을 직장에 배치하고 주인은 먼 곳에서 쉬는 상황도 가능해진다”고 장담했다. 로봇기술을 이용한 자기복제는 사이버공간에서 또 다른 삶을 사는 세컨드라이프처럼 언젠가 자아의 확대를 가능케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뇌-기계 인터페이스(BMI)=로봇과 인간을 연결하려는 ATR의 연구활동은 음성대화, 바디랭귀지를 넘어 생각만 해도 서로 통하는 이심전심의 경지를 가능하게 했다. 지난해 ATR산하의 컴퓨터 신경과학 연구센터(CNS)는 뇌신호로 로봇을 제어하는 제어시스템(BMI:Brain Machine Interface)을 개발해 국제적 관심을 끌었다. 이 기술의 원리는 특정한 생각을 할 때 뇌 혈관에 일어나는 혈액흐름의 변화를 MRI로 파악해서 로봇에 전달하는 것이다. 이미 뇌와 기계간의 동작인식률은 85%에 달한다. 머지 않아 생각만으로 움직이는 자동차, 휠체어, 키보드 입력장치도 등장할 수 있다. ATR은 뇌 정보를 읽는 장치를 크게 줄이는 한편 이족보행로봇 아시모를 생각으로 조종하는 제어기술도 올해안에 완성할 예정이다. 마징가를 조종하는 쇠돌이처럼 로봇과 사람이 일심동체가 되어서 함께 느끼고 움직이게 만드는 기반기술이 등장한 셈이다.
◇네트워크 로봇=ATR는 지능을 갖춘 유비쿼터스 환경이 확산되자 지난 2004년 4월 일본 총무성 지원으로 로봇과 주변의 컴퓨팅 자원을 하나로 연결하는 ‘네트워크 로봇 프로젝트(NRP)’ 5개년 계획을 시작했다. 네트워크 로봇은 보이는 로봇과 보이지 않는 로봇(감시카메라·센서망), 가상로봇(사이버 캐릭터)의 3가지 로봇들을 유비쿼터스 네트워크 상에서 연결한 개념이다. IRC가 주관하는 NRP사업은 로봇자체보다는 빌딩, 마을 단위의 유비쿼터스 컴퓨팅 환경을 구축하는데 주력하는 것이 특징. 또한 네트워크 로봇의 연구개발, 표준화를 위한 산업체와 연결고리로 네트워크 로봇포럼(NRF)까지 설립되어 현재 100여개 기업, 10개 연구기관이 참여 중이다. 네트워크 로봇기술이 완성되면 로봇과 휴대폰, 로봇, 감시카메라 등이 하나로 연계해 인간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ATR는 설명한다.
요즘 지능형 로봇개발에서 정보통신기술의 비중은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ATR는 오랫동안 IT기반의 로봇연구에 역량을 집중한 덕분에 괄목할 연구실적을 쏟아내지만 여타 일본 연구소처럼 로봇기술의 상용화 실적은 영 신통치 않다. 반면에 한국은 단기간의 성과창출을 위해 원천기술보다 지능로봇의 상용화에 역량을 집중하는 모습이다. 차세대 로봇시장에서 한일 양국 중 어느 쪽이 주도권을 잡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인터뷰-하기타 노리히로 ATR센터장
“로봇은 인간과 소통하는 정보 미디어의 단계를 넘어 인간 자체를 반영하는 존재로 진화 중입니다. ”
하기타 노리히로 ATR 센터장은 지난 2002년 로봇과 연결된 주변 감시카메라, 센서망, 가상캐릭터까지 로봇시스템의 일부로 보는 ‘네트워크로봇’의 개념을 최초로 제안한 인물이다. 로봇본체의 성능만 개량하는 기존 연구방식으로는 로봇시장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정통 로봇공학의 입장에서 외부 센서, 통신망까지 로봇의 일부로 간주하는 네트워크 로봇은 확실히 별종입니다. 하지만 로봇이 인간에게 더 유용한 존재가 되려면 눈에 안보이는 요소까지 하나로 묶어야 겠다고 결심했죠.”
그는 현재 진행 중인 네트워크 로봇사업에 따라 빌딩과 역사, 마을 전체가 거대한 로봇시스템처럼 작동하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장담한다. 또 우리나라에서 추진하는 유비쿼터스 로봇 컴퍼니언(URC)과 일본의 네트워크 로봇이 쌍둥이처럼 닮은 사업이라며 차세대 로봇부문에서 한일간 협력을 강조했다. 하기타 센터장은 소심한 일본기업들이 서비스 로봇의 출시를 주저하는 동안 정부가 직접 나서 서비스 로봇을 일반가정에 보급하는 한국의 로봇지원책이 부럽다고 말했다.
“서비스 로봇의 성공여부는 실험실이 아니라 대중들의 검증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신속하고 과감한 결단이 요구되는 차세대 로봇시장에 대단히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어요.”
그는 요즘 관심을 끄는 차세대 로봇 킬러앱의 전제조건으로 싸고 사용이 쉬우며 다른 대체재가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소로봇처럼 대체재(일반 청소기)가 있는 경우 니치상품을 넘어 킬러앱이 되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휴대폰 시장이 지금처럼 커지리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지요. ATR는 네트워크와 연동하는 로봇기술에 미래를 걸었습니다.”
히카리다이(일본)= 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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