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프리미엄급 디지털 가전에 도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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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곧 기회다.’

최근 “생활가전 부문은 한국에서 할 만한 업종이 아니다”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발언은 ‘생활가전의 메카’를 꿈꾸는 광주에 메가톤급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지역경제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삼성전자 광주공장(삼성광주전자) 생산라인의 해외이전을 시사하는 이 회장의 발언이 전해지자 광주시는 진의를 확인하느라 부산을 떠는 등 발칵 뒤집혔다. 다행히(?) 3만원 미만의 저가 청소기 등의 생산설비는 해외로 옮기는 반면에, 로봇청소기 등 고급 제품은 계속 광주에서 생산하겠다는 방침이 전해지면서 일단 놀란 가슴은 진정됐지만 ‘충격파’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번 사태는 대기업 중심의 취약한 광주지역 경제구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대기업이 기침하면 중소기업은 고뿔에 걸린다’는 우스갯소리처럼 삼성광주전자의 구조조정은 곧 수많은 지역 중소기업의 흥망과 직결될 수밖에 없는 게 광주 전자산업의 현주소다.

이에 따라 지역 전자부품업계에서는 “언젠가는 이 회장의 발언이 현실로 나타날 것”이라며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나친 대기업 의존도에서 벗어나 자생할 수 있는 기술력과 경쟁력을 키우자는 것이다.

그중 전자부품연구원 광주지역본부는 최근 개최한 ‘대한민국 프리미엄급 디지털생활가전육성 전략 세미나’를 통해 광주 생활가전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프리미엄급 디지털 가전’을 제시하는 등 해법 찾기에 발빠르게 나섰다. 광주시도 지역 가전산업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장기 프로젝트 마련에 들어갔다.

◇왜 프리미엄급 디지털 가전인가=전품연 광주지역본부가 개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주택산업과 주거 및 주방 트렌드, 소비자의 변화로 앞으로 생활가전은 프리미엄급 디지털 가전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목적 공간과 발코니 확장 등 주거환경이 변화하고 고가 소비재 시장의 활성화 등으로 ‘프리미엄 빌트인 가전’이 대세를 이룬다는 것. 아울러 빌트인 가전은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쉬운 분야라는 주장이다.

장홍택 삼성전자 한국마케팅팀 부장은 “프리미엄 가전의 미래는 가구와 가전의 융·복합화를 비롯해 과학적 설계와 감성 디자인을 통한 빌트인 패키지 솔루션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라며 “중소기업이 활성화돼 빌트인 가전에 적합한 부품과 콘텐츠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인규 LG전자 경영기획팀 빌트인사업그룹장도 “향후 브랜드와 디자인, 가구와 조화를 이루는 빌트인 가전시장이 주도할 것”이라며 “빌트인 제품의 외관 표면처리 기술 등과 관련된 선진국가의 기술격차를 줄이기 위한 투자 등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차종범 전품연 부품소재연구본부장은 “미래 디지털 퓨전 기술방향은 에너지 절약과 웰빙, 친환경”이라면서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블루오션 시장을 창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광주 생활가전산업 현주소=삼성광주전자는 광주 전체 제조생산액의 24%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고용인원 4500여명에 매출 3조4000억원을 기록했으며 현재 광주에 83개의 협력사를 두고 있다. 지방세와 법인세로 각각 28억원과 110억원을 납부했다.

광주에는 삼성광주전자와 대우일렉트로닉스·캐리어 등 대기업은 극소수인 반면에 단순 조립·가공 위주의 영세 소기업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중소업체가 대기업에 의존하기 때문에 자생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확보한 기업은 전무한 실정이다. 이러다 보니 대기업의 생산라인이 해외 등 외부로 빠져나갈 경우 협력업체의 공동화-고용감소-이공계 기피-신산업 창출 미흡-성장잠재력 악화 등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광주시, 3200억원짜리 프로젝트 추진=시는 오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3200억원을 투입하는 ‘디지털 정보가전산업 육성 프로젝트’를 추진해 클러스터 구축과 연구개발(R&D) 인프라 완성, 인력양성 체계 등 3대 기본 목표를 실현할 방침이다. 또 △디지털 정보가전클러스터 △디지털컨버전스센터 기능 확대 △유망기업 연구소 유치 △인력양성 사업 △상업화 기술 △가전산업 육성 지원 등 6대 핵심사업을 추진하고 프리미엄 생활가전제품 등 9대 세계 일류상품도 개발할 계획이다.

이연 광주시 산업고용과장은 “광주지역 가전업체 대부분이 영세하기 때문에 원천기술 투자를 기피할 뿐만 아니라 기술력 부족으로 대외 의존이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프리미엄급 디지털 정보가전 상품화 기술개발을 강화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협력을 도모해 나가는 등 유망기업 육성에 적극 나설 방침”이라고 말했다.

광주=김한식기자@전자신문, hskim@

◆인터뷰-김강진 전자부품연구원 광주지역본부장

 “생활가전 산업을 프리미엄급 디지털 가전으로 격상시키느냐는 하는 것은 비단 지역과 기업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가전산업의 미래와도 직결돼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와 기업·학계·연구계에서 머리를 맞대 육성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김강진 전자부품연구원 광주지역본부장(53)은 “수개월간 기업을 찾아 뛰어다닌 결과 프리미엄급 디지털 가전산업은 국가 산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앞으로 산·학·연·관이 참여하는 세미나와 포럼을 지속적으로 개최해 프리미엄급 디지털 가전산업의 발전 방안을 모색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그동안 전통 생활가전분야는 우리나라 산업의 중심축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기업들의 투자가 저조해 비약적인 발전을 거두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면서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프리미엄급 디지털 생활가전 산업이 국가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분야라는 인식의 대전환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가전업체뿐만 아니라 주택 건설업체, 가구제조회사 등의 관계자들이 일제히 빌티인 가전과 정보기술(IT)·생명기술(BT)이 융합한 프리미엄급 퓨전 기술 제품이 주도할 것으로 공통된 전망을 내놓고 있다면서 이 분야를 구체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김 본부장은 “앞으로 광주지역의 주력산업인 디지털 생활가전산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대·중소기업 간 정보교류와 공동협력 방향을 공유할 계획”이라면서 “이번 삼성광주전자 생산라인의 해외이전 논란이 광주지역 가전산업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킬 수 있는 촉진제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광주=김한식기자@전자신문, h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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