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자산업의 발전과 맥을 같이해 온 한국전자산업진흥회가 ‘제2 도약을 위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아쉽게도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급변하는 주변환경에 자신의 몸을 맞추기 위해서다.
전자분야 협회의 가장으로서 다수의 ‘자식들’(협의회 및 품목별 부서)을 두고 있던 전자산업진흥회는 91년 반도체산업협회와 전자부품연구원, 94년 자동판매기공업협회, 2000년 전자산업환경협회, 2003년 전자회로산업협회, 2004년 커넥터산업협회 등의 자식이 새 살림을 차려 나가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그나마 전자산업진흥회의 버팀목이었던 자식인 디스플레이 분야까지 새 살림을 차려 분가를 서두르고 있다. 아비 진흥회는 속이 상하지만 가장이자 맏형으로서 ‘내가 살아야 하니 너 나가면 안 돼’라고 하기에는 처지가 옹색하다. 특히 디스플레이 쪽은 품 안에 두고 있는 자식 가운데 머리가 클 만큼 다 커 버린 장성한 놈이어서 곁에 두기에도 부담스럽다.
이 세상 가장들이 다 그렇듯이 전자산업진흥회도 자식에게는 나쁜 소리 안 듣고 베풀 수 있는 위치가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봐도 모아놓은 재산이 없다. 그래서인지 전자산업진흥회는 옆집인 섬유산업연합회를 보면 부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초기에 물려 받은 재산이 있어, 임대료만으로도 잘 먹고 잘살고 있을 뿐 아니라, 분가시킨 자식들에게 용돈까지 챙겨줄 정도다. 그러니 어느 자식 하나 부자 가장을 무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난한 가장인 전자산업진흥회는 이번에 디스플레이를 분가시키면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용돈을 챙겨주는 것은 고사하고 자식에게 손을 벌려야 할 신세다.
‘부모가 늙으면 자식들(품목별 단체)로부터 어느 정도 용돈(회비)을 받아 생활하는 거 아니냐’라며 동네사람들이 위로하지만, 자식들이 싫다고 한다면 체면을 구겨가며 달라고 하기가 부담스럽다. 자식들이 “옆집 섬유산업연합회는 안 그러는데 아버지는 왜 그러세요?”라고 하면 더 비참해지기만 할 뿐이다.
최근 정부와 전자업계가 이 같은 문제를 둘러싼 ‘전자업계 협력 강화 방안’을 마련 중이다. 부디 가난한 가장이지만 위신을 지킬 수 있는, 분가한 자식도 자신의 가정을 잘 꾸려 갈 수 있는, 그런 솔로몬의 방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심규호기자·디지털산업팀@전자신문, khs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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