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쇄`풀린 통신시장](4)기로에 선 후방산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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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통신규제 정책 로드맵’에 따른 통신서비스 시장 재편은 네트워크 장비·솔루션 등 후방산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네트워크 기술 자체보다는 고객 서비스나 애플리케이션, 콘텐츠, 매니지드 서비스 등 마케팅적 요인들이 전체 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통신 전문가들은 “앞으로 통신사업자 간 치열한 마케팅 경쟁 속에서 과감한 ‘설비투자’를 통한 신규 서비스는 후순위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며 “그 빈자리를 개방형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수평적 상품 개발과 서비스 혁신, 파트너십 등이 채우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미 예견된 변화=국내 통신산업이 설비기반 경쟁에서 서비스 중심으로 전환하는 추세는 사실 예견됐다. 이런 변화는 지난 1999년 이후 KT·SK텔레콤·KTF·LG텔레콤·하나로텔레콤 등 국내 통신 5개사의 설비투자 규모를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통신 5개사 설비투자는 2000년에 24조원으로 정점을 기록한 후 매년 급감했다. 지난해에는 8조1000억원까지 떨어졌다. 전체 매출액 대비 설비투자 비중도 지난 2000년 30%대에서 10% 수준으로 낮아졌다.

 KT경영연구소 측은 “새 통신규제 정책에 따라 국내 통신기업들은 가입자 유치를 위해 더 많은 마케팅 비용을 지출하며 성공 확률이 높은 특정 기술과 서비스에만 투자를 집중, 설비투자 규모는 계속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성장동력 상실 우려=정부 차원에서 신규 통신서비스로 공공 수요를 창출하고 네트워크 투자를 통해 국산 장비 개발을 유도하는, 이른바 ‘선순환 구조’를 이젠 기대하기 어렵다. 통신 설비투자 감소는 국내 제조업 경쟁력 약화를 불러와 국가적 성장동력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3·4세대(G)에 접어들면서 설비투자 부진으로 일본은 물론이고 유럽과 미국에도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통신전문가들은 “국내 IT산업 재도약을 위해 설비 기반과 서비스 기반 경쟁을 어느 정도 조화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며 “특히 통신·방송 융합형 서비스 도입 초기에는 설비기반 경쟁을 적용해 투자를 촉진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돌파구를 찾아야=장비·솔루션 업계로서는 기존 통신사업자(캐리어) 수요를 대체할 새로운 아이템과 시장을 찾는 것이 가장 확실한 대안이다. 시스코, 주니퍼, 알카텔-루슨트 등 세계 메이저 장비업체들은 이미 통신사업자 중심에서 탈피, 통·방 융합과 엔터프라이즈 및 홈 네트워크 분야로 사업 무게중심을 옮겼다. 국내 통신 장비업체들도 모바일 단말기, 셋톱박스 등 신규 사업 발굴에 적극적이다. 중국·동남아·유럽 등 해외 시장에 통신사업자와 공동 진출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궁극적으로는 장비·솔루션 업계가 새 통신 비즈니스 모델을 먼저 발굴, 제시함으로써 통신사업자의 설비투자를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통신사업자도 공감할 수 있는 새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고 관련 장비 및 솔루션 공급이라는 부산물을 챙기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양춘경 한국알카텔-루슨트 사장은 “차세대 통신 시장에서는 단순한 기술이나 장비 개발로는 한계가 있다”며 “알카텔-루슨트 산하 벨연구소가 올해 최고 핵심 연구과제로 잡은 것도 통신 분야의 새 비즈니스 모델 발굴”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러한 시도가 기술과 시장을 선도하는 일부 다국적 업체에만 국한된다는 점이다. 국내 업체들은 가능성이 있는 분야에 집중해 한 단계 더 도약하거나 아예 업종을 바꿔야 하는 결정의 기로에 섰다. 인수합병과 같은 몸집 불리기도 새삼 모색해볼 단계다.

주상돈기자@전자신문, sdj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