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4년여 전부터 기업을 경영해 왔다. 창업 이전에는 대기업에서 연구개발 업무에 종사했기 때문에 기업경영에 관해서는 아직 전문가라 하기 어렵다. 그런데 기업을 경영하기 전에는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이 얼마나 효율적인지 피부로 느끼지 못했다. 시장경제가 공산권의 국가 계획경제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배우기는 했지만 그것은 하나의 주장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기업을 실제로 경영하면서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은 냉정한 도태의 위기감 속에서 조직의 비효율을 제거하고 무능한 조직을 실제로 도태시킴으로써 사회 전체의 효율을 크게 높인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문제는 이와 같은 완전경쟁 시장을 구축하거나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완전경쟁 시장은 정치에서 이상적인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참여자 각자가 어느 정도의 소양과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심리적으로 상대와 대등하게 경쟁해 보려는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또 공정하게 경쟁하는 문화와 제도가 있어야 한다. 이 중 어느 것도 쉽게 갖추어지는 조건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국가는 반독점법을 제정해서 경쟁 촉진이라는 과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 법의 핵심조항은 독점 기업을 강제로 분할하기까지 하는 권한을 포함하고 있다. 미국의 독점 기업 AT&T가 과거에 미국 법원의 명령에 의해 분할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글로벌 경쟁 하에서는 국가가 자국 내의 독점 기업을 오히려 보호함으로써 자국 기업이 승리하도록 유도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연방 지방법원에서 분할명령까지 받았다가 연방 항소법원에서 결정이 번복된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것을 종합할 때 적어도 세계적 차원에서 하나의 규제기구가 설립되기 전까지는 한 국가 내에서 독점 기업을 일관성 있게 규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현대의 개별 국가는 반독점법에 의한 시장경쟁 촉진을 포기해야 하느냐 하는 의문이 생긴다.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경쟁 대신 정글의 법칙을 허용해야 할 것인지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한 국가에서 특정 기업의 독점 자체를 막는 것은 어렵다 하더라도 독점 기업의 독점권 남용을 막는 일은 국가가 부지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부지런히 실천하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는 시간이 갈수록 자국 내의 산업의 경쟁력과 효율성이 완연히 달라질 것이다. 그 기업이 해당 국가에 소속되었든, 혹은 그렇지 않은 다국적 기업이든 관계없이 말이다. 또한 독점의 주제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점도 잘 주목해야 한다. 과거에는 제조업, 통신망과 같은 물적 인프라의 공정 경쟁 유지가 중요했다면 현재는 소프트웨어와 같은 지적 인프라의 공정 경쟁 유지가 중요하고 미래에는 콘텐츠와 같은 문화적 인프라의 공정 경쟁의 유지가 중요할 것이다.
최근 제작과 유통이 분리되는 뉴미디어 산업 추세에 맞춰 망사업자와 유통사업자, 콘텐츠사업자로 구분해 책임을 지우고 규제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이것은 콘텐츠 산업이 특정 망사업자나 유통사업자의 지배에 들어가서 완전경쟁 시장에서 멀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제안이다. 이 제안 역시 약점이 없지 않겠지만 그 취지에 공감을 표하고 싶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을 분리해 대기업이 은행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현행 제도와 같이 콘텐츠 자본을 망 혹은 유통 자본에서 분리시키는 제도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콘텐츠가 그 자체의 경쟁력으로 서로 경쟁하기보다는 어느 세력에 붙어 있느냐에 따라 경쟁력이 좌우된다면 콘텐츠 산업은 결국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다.
철학과 사상의 역사에서는 정신과 물질 중에 누가 더 강하냐 하는 논란이 결코 결론을 맺지 못하지만 현실에서는 경제가 더욱 발전할수록 문화(정신)가 경제(물질)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즉 문화가 발전하면 경제도 같이 발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문화의 핵심에는 콘텐츠가 있다. 그러므로 콘텐츠 산업의 경쟁촉진을 위한 국가의 합리적인 노력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임일택 넥스트리밍 사장 hiswill@nextream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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