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의 힘으로 범죄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가능성은 미지수지만 요즘 치안활동에서 무인로봇의 역할은 눈에 띄게 늘어나는 추세다. 24시간 쉬지 않고 경비구역을 순찰하는 보안로봇(Security Robot)은 도둑을 쫓는 수동적 경비를 능동적 경비로 전환시킬 차세대 무인경비 시스템의 주역으로 각광받고 있다.
2008년 8월 8일, 중국 원자바오 총리가 올림픽 개막을 선언하는 베이징의 ‘냐오차오’(鳥巢:새둥지) 스태디움. 성대한 개회식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수십대의 보안로봇들이 경기장 곳곳을 살피면서 테러징후를 체크하고 있다. 가파른 계단도 거뜬히 올라가는 이 ‘로봇공안’들은 수상한 조짐을 감지하면 즉각 영상을 전송하고 좁은 공간에 숨겨진 폭발물도 처리할 수 있다. 현지 언론매체들은 올림픽 열기에 들떠 로봇공안의 활약상을 대대적으로 소개한다. 하지만 중국의 올림픽 경기장을 지키는 로봇경찰들은 사실 메이드인 코리아, 한국산 로봇이다.
국내 로봇회사 DU로봇(대표 강정원)은 이같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 자체 제작한 보안로봇으로 올림픽을 앞둔 중국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이 회사는 독일의 로보워치사와 기술제휴로 생산하는 보안로봇 3종(제품명 오프로, 모스로, 어센드로) 200여대를 연말까지 양산할 예정이다. 특히 DU로봇이 제조할 보안로봇 ‘오프로’는 이미 2002년 독일 월드컵 경기에도 투입되는 등 운영사례가 많아 중국 보안당국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강정원 사장은 “올림픽을 앞두고 테러위험이 고조되는 중국과 동남아 국가에 보안로봇을 수출해 올해 100억원의 로봇매출을 달성하겠다”고 다짐했다.
현단계에서 보안로봇은 청소로봇에 이어 두번째로 열리는 지능형 로봇시장이다. 실제로 국내외 로봇업체들의 가정용 로봇제품을 살펴보면 방청소를 하거나 집을 지키는 보안기능을 채택한 사례가 대부분이다. 보안로봇이 상용화에 급물살을 타는 이유는 기존 무인경비시스템의 근본적인 취약점 때문이다. 건물 내에서 외부침입자를 감지하는 방범센서와 감시카메라가 한 곳에 고정돼 있어 감시가 어려운 사각지역이 존재한다. 로봇을 방범활동에 투입하면 실내외에서 자유로운 기동성을 갖기 때문에 전통적인 무인경비의 취약점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다. 건물 구석구석을 꼼꼼히 뒤지는 것도 가능하고 지하실에 내려가서 온수파이프의 누수유무를 확인한다던지 건물 유리창이 깨졌는지 점검하는 식의 입체적 경비 활동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언제 위험한 상황에 노출될지 모르는 경찰, 경비인력의 입장에서도 보안로봇의 확산은 환영할 일이다. 현장에서 범인과 직접 격투를 벌이는 대신 보안로봇이 전송한 영상정보를 바탕으로 예상 도주로를 차단하면서 추격하는 편이 훨씬 안전하기 때문이다. 전세계 보안시장은 장비, 서비스를 합쳐 매년 8% 이상 성장해 2010년까지 총 9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전문가들은 2013년까지 보안장비시장의 4∼5%를 로봇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잠재수요 덕분에 보안로봇은 여타 서비스 로봇에 비해서 성장속도가 훨씬 빠른 편이다.(도표) 우리나라는 잘 짜여진 IT인프라 때문에 방범활동을 위해 로봇기술을 적용하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춰 다양한 형태의 로봇기반 보안서비스가 준비 중이다.
◇보안로봇, 무인경비시스템의 새로운 이름.
사람들은 흔히 보안로봇을 건물에 배치하면 알아서 방범활동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로봇이 보안분야에서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극히 제한적이다. 상황 판단력이 미숙한 로봇에게 스스로 침입자를 식별하고 총기나 물리력을 사용할 권한을 주는 것은 미친 짓이다. 잘못하면 야근을 위해 밤늦게 회사로 들어가던 직원이 경비로봇에게 봉변을 당할 수 있다. 보안로봇은 우선 침입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경고하고 긴급상황을 재빨리 신고하는 ‘바퀴달린 보안센서’로 작동할 때 범죄예방에 가장 효과를 발휘한다. 무인로봇이 인간에게 직접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은 법적 정당성 여부를 떠나서 대중들의 반감을 살 수 있어 쉽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보안로봇의 단계별 대응조치에는 반드시 인간의 주관적 판단이 요구된다. 보안로봇시장에서 가장 주목할 변수는 로봇자체의 성능보다 기존 무인경비업체들과 연계성이다.
이는 지난 70년대 무인센서기술이 민간경비시장에 처음 도입되던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 당시에도 경비용역업체들은 국가공권력(경찰)이 독점해온 보안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값비싼 무인센서망을 깔고 24시간 원격감시체제를 구축했다. 오늘날 무인경비 내수시장의 규모는 1조1000억원으로 늘었고 매년 두자리 숫자의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요즘 무인경비업체들은 인건비부담을 낮추고 범죄위협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기존 보안센서망에 로봇기술을 접목시키는데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경비인력과 보안로봇, 센서망을 하나로 연계된 유비쿼터스 보안체제가 등장하는 셈이다. 미국과 일본의 무인경비업체인 타이코, 세콤, SOK 등은 다양한 보안로봇을 현장에 투입하고 있다. 국내 1위의 무인경비업체 에스원도 삼성테크윈과 함께 국가 주요시설을 보호하는 ‘사회안전로봇’ 3개 모델을 오는 2011년까지 개발하기로 했다. 사회안전로봇은 여러 대의 로봇이 상호 위치정보를 공유하며 침입자의 예상도주로를 조직적으로 차단하는 집단로봇 제어기술을 구현할 계획이다. 또 일부 모델은 항만, 아파트 등 야외를 돌아다니는 순찰기능도 지원하게 된다. 이제 관공서, 대형빌딩에 무단 침입했다가는 떼로 달려드는 보안로봇에 포위되서 낭패를 겪을 수 있다. 에스원의 한 관계자는 “하루 3교대를 하는 경비인력을 무인로봇으로 일부 대체할 경우 직원들의 근무환경개선은 물론 가격대비 성능면에서도 충분한 메리트가 있다”면서 보안로봇시장의 미래를 낙관했다. 무인경비 2, 3위 업체인 ADT캡스와 KT텔레캅도 로봇을 이용한 보안서비스를 검토 중이다. 한편 보안로봇의 수요확산을 위해서는 제도적 걸림돌부터 치워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호길 로봇종합지원센터장은 “기동성을 갖춘 보안로봇은 작동 중에 예기치 못한 사고를 일으킬 수 있어 별도 보험가입이 필수적이다”면서 “무인로봇을 경비업무에 투입하는데 맞춰 경비용역법을 개정하는 등 제도적 보완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로보캅의 꿈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우리 곁에 현실로 다가오는 중이다.
*보안로봇은 심각한 방범활동 외에 일상 속의 사소한 안전을 지키는데도 요긴하게 쓸 수 있다. “출근하면서 냄비에 불은 껐던가.” “아이들이 추운 날씨에 창문을 열어두지 않았나.” “손님이 올텐데 집안 청소가 제대로 됐나.” “우리 강아지 밥은 제대로 먹었나.” 가사일을 제대로 챙길 수 없는 상황에서 보안로봇으로 집안 곳곳을 모니터링한다면 꽤 유용하다. 최근 ETRI가 선보인 보안로봇 ‘로미(ROMI)’는 가정내 모니터링 용도로 쉽게 쓸 수 있는 보급형 로봇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로미는 3세대 HSDPA모듈을 내장해 전국 어디서나 초당 10프레임 이상의 고화질 전송이 가능해 화상 휴대폰으로 집안을 모니터링하는 용도로는 그만이다. SKT는 화상휴대폰의 사용을 촉진하기 위해 HSDPA기반의 보안로봇인 로미를 대당 100만원 이하에 판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 감시용 CCTV가 설치된 보안 사이트 중에서도 로봇의 기동성과 연계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를 추가로 골라볼 수 있다. 실외주행기능을 갖춘 보안로봇이 대중화되면 불법주차단속이나 학교의 후미진 구석에서 벌어지는 교내폭력을 감시하는 용도로 꽤 효율적이지 않을까.
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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