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칼럼]청와대 과기보좌관의 딜레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대체로 그렇다. 하지만 그 반대도 간혹 있다. ‘자리’가 사람을 제약하는 경우다.

 청와대에는 많은 사람이 근무하면서 대통령의 국정을 돕고 있다. 청와대는 권력의 핵심부다. 청와대 비서실에 정보과학기술 보좌관이 있다. 대통령이 정보기술(IT)이나 과학기술 직무를 수행할 때 자문이나 보좌기능을 하는 역할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시절 대선 공약사항으로 IT수석 신설을 약속했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IT수석 대신 정보과학기술 보좌관을 만들었다. 당시 IT업계는 실망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과학기술 부총리를 도입했다. 획기적인 조치라고 할 만했다. 초대 과기 보좌관에는 현 김태유 서울대 공대 교수가 임명됐다. 그는 노 대통령이나 그 측근들과 교류가 없었지만 참여정부가 인터넷 공모 등을 통해 추천받은 인물 중에서 적임자로 인정돼 발탁됐다고 말했다. 그는 재직하면서 과기 부총리제 도입과 이공계 공직 진출 확대, 차세대 성장동력 등의 굵직굵직한 정책을 추진했다. 그 뒤를 박기영 순천대 교수가 넘겨 받았다. 그는 여성 최초의 대통령 보좌관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특유의 섬세함과 부지런함, 성실성을 바탕으로 차세대 성장동력 육성과 이공계 살리기 등에 힘썼다. 그러다가 황우석 파문으로 하차했다. 이후 4개월여의 공백기를 가졌으나 세 번째 보좌관으로는 김선화 순천향대 공대학장이 임명됐다. 그 역시 부지런함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과학기술 입국 및 IT산업 재도약에 주력하고 있다. IT산업은 한국의 대표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이 해외에 나가 자랑하는 것 중의 하나가 한국의 IT, 인터넷 강국 등이라고 한다.

 참여정부는 임기 1년여를 남겨두고 있다. 하지만 IT분야에서 매듭지어야 할 일이 많다. 유비쿼터스 시대, 방송과 통신의 융합기구 발족을 비롯, 성장동력 육성, 과학기술입국 구현, 부처 간 현안 조정, 디지털콘텐츠 육성 등이다.

 그런데 지금의 보좌관이 이런 현안을 제대로 추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대통령의 IT 철학과 비전을 각 부처에 전파하고 집행을 독려하기도 쉽지 않다. 아쉬운 대목이나 현실이 그렇다. 대통령의 자문역이다 보니 역할이 모호해 부처에 대한 장악력이 없다. 이견을 보이는 부처 간 정책조율에 나서기도 어렵다. 인력도 몇 되지 않는다. 권한이 없으니 부처 일에 적극 관여할 수도 없다. 그동안 과기 보좌관을 거쳐간 이들도 이런 점에 동의한다. 같은 차관급이지만 경제 수석이 경제 부총리와 긴밀한 호흡을 맞춰 경제정책을 알차게 추진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더욱이 하반기 이후 대선정국에 들어서면 대통령이 IT나 과기분야에 관심을 갖기 어렵다. 이럴 때 대통령을 대신해 권한과 책임을 갖고 IT와 과기정책을 챙겨야 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 역할을 지금의 보좌관은 효율적으로 할 수 없다. 그래서 IT 수석으로 바꿔야 한다. 사람을 적재적소에 앉히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자리에 앉은 사람이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관리하는 것도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다.

 ‘자리’가 일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데도 그대로 둔다면 행정의 낭비다. IT 수석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

이현덕주간@전자신문, hd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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