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점 짜기로 소문난 교수
1966년부터 모교인 상과대학에서 강의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 우리 대학생들이 공부하는 양이 미국 대학생에 비해서 턱없이 적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컬럼비아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가르치는 과목 가운데 ‘비즈니스 이해론(Conceptual Foundation of Business)’이 있다. 시장 경제와 자본주의론을 토의하는 것으로 수강생은 일주일에 적게는 1권, 많게는 5권을 읽어야 한다. 하지만 한 학기에 5과목씩 수강해야 2년 만에 MBA를 마칠 수 있는 상황에서 일주일에 5권을 충실히 읽으려면 밤을 지새워야 가능한 일이다. 이 때문에 새벽 2시에 잠자리에 드는 것은 기본이고, 하루 종일 공부해야 겨우 따라갈 수 있는 지경이었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니 일 주일에 책 한 권은 고사하고 몇 십 페이지도 읽지 않고, 숙제도 적당히 형식적으로만 제출하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우리 학생들이 미국의 5분의 1이라도 따라가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열심히 가르치고, 출석 체크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결심이 서게 됐다. 이렇게 해서 한 학기 숙제 10개 중 2개 이상 내지 않거나 결석이 3회 이상, 학기말 시험에서 40점 미만을 받으면 F학점을 주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수강생의 최소 20%가 F학점을 받았다.
한 번은 대학 본부 학적과에서 연구실로 전화가 왔다. 성적을 컴퓨터에 입력하려고 하는데, 이 많은 학생들을 그대로 입력시켜도 괜찮겠느냐는 것이었다.
성적을 주는 또 다른 기준이 있었다. 나보다 훨씬 나아야 A학점이고, 그냥 학생으로서 열심히 공부한 학생은 B학점을, 보통은 C학점을 줬다. 이 외에는 D나 F학점을 줬다. 그러다 보니 지금도 어느 졸업생들은 “선생님, 저 B 맞은 학생입니다” 하며, 당시 반에서는 최고 학생에 해당한 학생임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곤 한다.
사실 나보다 나은 학생만 A학점을 줬으니, 나보다 나은 학생이 몇 명이나 눈에 띄었겠는가? 결국 대부분 학생은 C학점을 받고 만족해하는 과목으로 전락됐다. 당시 내가 가르친 과목이 생산관리(生産管理)였는데, 학점이 워낙 짜 학생들 사이에서는 ‘생사관리(生死管理)’로 불리기도 했다.
F학점을 받은 학생들은 재수강을 하면서 내가 원망스러웠겠지만 나로서는 우리 같은 후진국이 선진국을 쫓아가려면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할 것이라는 충정에서 나온 결과라고 지금도 이야기하고 싶다.
어느 해 정초에 35세 정도 된 젊은이가 신사복을 입고 세배를 하러 집에 찾아왔다. 그래서 세배를 받고는 “자네가 누구인가”하고 물었더니, 그 학생의 답이 자기가 생산관리에서 F학점을 받은 사람이라고 했다. 본인은 초등학교 때부터 수재로서 각광을 받았고, 경기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과대학에 들어와서 세상에서 똑똑한 학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일생 처음으로 F학점을 받았다는 것이다.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반성되는 것도 있고, 또 자기 자신을 처음으로 돌아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새해 정초가 되니, 졸업한지 오래 되었지만 내 생각이 나서 꽤 힘들게 집을 찾아 왔다는 일화도 있다.
skwa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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