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사장단 인사 의미와 전망

 삼성전자가 이건희 회장이 제시한 경영화두인 ‘창조경영’ 실현을 위해 ‘기술’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대대적인 변신에 나선다. 삼성전자의 주력사업인 정보통신총괄의 이기태 사장을 기술총괄 부회장으로 전격 승진·임명함으로써 사실상 실세 사장이 이끄는 세계 최고의 기술기업으로 거듭나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급성장을 거듭해온 삼성전자는 ‘관리형’으로 상징되는 기존 경영기조도 이번 사장단 인사를 시작으로 크게 바뀔 것으로 예상되며, 조만간 단행될 임원급 인사와 전사 조직개편에서도 이 같은 기류가 반영될 전망이다.

 ◇기술은 창조경영의 핵심=이기태 기술총괄 부회장 체제는 이건희 회장이 장고한 끝에 창조경영의 해답을 바로 ‘기술’에서 찾겠다는 메시지다. 신임 이 부회장은 애니콜 신화를 창조한 주역이자 삼성전자를 국내 기업이 아닌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낸 주인공이다. 불과 10년 만에 정보통신 사업을 세계 3위로 끌어올린 강력한 리더십과 경영능력을 전사적인 기술경영 실현에도 그대로 발휘하라는 주문인 셈이다.

 따라서 지난 30년가량 유지돼온 삼성전자의 경영관행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시스템의 삼성’에서 ‘창조의 삼성’으로 레일을 바꿔 타는 것이다. 사업총괄 단위끼리 벌였던 경쟁 관행은 2000년대 들어 눈부신 성장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했지만 이제 매출 100조원대를 바라보며 창조경영을 외치는 삼성전자에는 또 다른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셈. 신임 이 부회장은 기술경영을 통해 디지털미디어·정보통신·생활가전·반도체·LCD 등 사업총괄 사이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데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신임 이 부회장은 특유의 탁월한 리더십과 저돌적인 돌파력으로 기술과 창조경영을 접목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최지성 사장의 부상=지난해 보르도 TV로 대박을 터뜨렸던 최지성 사장은 이번 인사에서 숨겨진 ‘키 포인트’다. 최 사장은 수익성 하락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세계 디지털 가전 시장에서 지난해 사상 최대의 외형과 수익을 기록함으로써 자신의 역량을 입증했다. 이번 인사에서 정보통신총괄 사장을 맡게 됨으로써 반도체·가전에 이어 삼성전자의 주력 사업 전부를 줄줄이 관장하게 됐다. 과거 사장단 인사의 전례를 봐도 사업총괄 단위를 넘나들며 사장을 역임한 경우는 사실상 최 사장이 유일하다. 삼성전자 사업총괄 사장들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자리를 굳혔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최 사장이 이끄는 정보통신총괄 사업도 적지 않은 변화를 겪을 전망이다. ‘외형’보다는 수익성을 강조하며 ‘프리미엄 전략’을 고수해왔던 삼성전자 휴대폰 사업 전략은 신임 최 사장의 지휘 아래 일정 부분 방향을 수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휴대폰 시장 경쟁이 갈수록 격화되면서 올해는 이른바 5대 제조사 간의 싸움에도 긴장감이 한층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적 구도 대규모 변화 예상=이번 사장단 인사를 계기로 조만간 있을 임원급 인사와 다음달에 단행될 조직 개편도 대대적인 ‘쇄신 기조’가 점쳐진다. 당장 눈에 들어오는 조직은 생활가전 총괄이다. 이번 인사에서는 이현봉 전 생활가전총괄 사장이 서남아총괄 사장으로 옮기는 대신, 총괄사장 자리를 공석으로 남겨뒀다. 사장급 승진·보직인사에서 생활가전총괄 사장 보직을 제외했다는 것은 결국 생활가전 사업을 디지털미디어 등 여타 사업총괄에 합치겠다는 뜻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매출 정체와 수익성 악화에 두고두고 시달렸던 생활가전 사업에 축소·구조조정 등 적지 않은 수술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다음달로 예정된 조직 개편에서는 지난 2000년 이후 유지돼왔던 2개 총괄, 5개 사업총괄의 조직구조도 함께 개편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지난 2004년 반도체사업총괄에서 LCD사업총괄이 분리, 독립한 지 3년 만의 변화다.

 신임 디지털미디어총괄 사장으로 등극한 박종우 사장도 돋보인다. 박 사장은 지난해 세계 최소형 컬러레이저 프린터를 히트시키며 프린터를 미래 수종사업으로 일궈냈고 삼성전자의 영업 방향을 일반 소비자와 기업고객(B2B) 양대 축으로 변화시킨 주역이다.

 이번 인사에서는 그동안 소문이 끊이지 않았던 ‘포스트 윤종용’ 후계 경쟁구도에도 눈에 띄는 신호가 감지된다. 윤종용 부회장 본인의 의지는 물론이고 회사 안팎의 관심은 차기 삼성전자 CEO에 대한 것이다. 그동안 윤 부회장의 후임으로 거론돼온 이기태·최지성·황창규 등 이른바 삼두마차 가운데 이번 인사에서는 가정 먼저 이 부회장이 영전했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실적성장에 반도체총괄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황 사장이나 이번에 선임급 총괄사장으로 부상한 최 사장 모두 강력한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총괄 사장 가운데 유일하게 승진했지만 근접성 면에서 최 사장과 황 사장 또한 만만치 않다. 기술로 ‘창조와 혁신’을 향해 변신하려는 회사나 주요 경영진의 새로운 자리에 주변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서한기자@전자신문, h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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